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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육개장이 중단시킨 휴대전화 간담회

[취재파일] 육개장이 중단시킨 휴대전화 간담회
그제(4일) 오후 문자메시지가 날아왔습니다. 방송통신위원회가 출입기자들에게 보낸 메시지입니다. 단말기 유통구조 개선법과 관련한 조찬 간담회를 한다는 겁니다. 팽팽하게 맞서온 정부와 휴대전화 제조사, 이동통신사, 소비자 단체가 모두 참석한다고 했습니다. 법안의(이동통신 단말장치 유통구조 개선에 관한 법률안) 이해관계자가 한 자리에 모이는 흔치 않은 자리입니다. 주무부처 수장인 최문기 미래부 장관과 이경재 방송통신위원장도 나온다고 했습니다.

단말기 유통법 간담회 자체가 처음이기도 했지만, 형식도 평범하지는 않았습니다. 문자메시지는 간담회 일정을 전부 공개한다고 알려왔습니다. 모든 대화를 언론에 전부 공개하는 간담회가 많지는 않습니다. 참석자들이 말을 스스로 제어하기 때문입니다. 여러 대의 카메라가 돌아가는 앞에서 속내를 털어놓기는 쉽지 않습니다. 그래서 상당수 간담회는 인사말 정도만 공개하고, 이해 관계자들끼리 속 깊은 대화를 나누게 마련입니다. 취재진은 모두 나갑니다. 그런데 간담회를 전부 공개한다니, 좀 이상했습니다.

막상 지켜본 간담회는 예상대로 생소했습니다. 왜 전부 공개한다고 했는지 이해할 만 했습니다. 최문기 장관의 인사말, 이경재 방송통신위원장의 인사말, 그리고 소비자단체와 삼성전자 등 휴대전화 제조사, SK텔레콤 등 이동통신사 수장이 돌아가면서 한 마디씩 했습니다. 삼성전자 이상훈 사장은 미리 준비한 원고를 읽었습니다. 국내와 해외 사업자간 장려금에 차이가 있어서, 국내 장려금 지급률이 알려지면 심각한 손실을 입을 수밖에 없고, 이건 사업에 사활이 걸린 문제라고 말했습니다. 정부 측은 보조금 자료가 외부에 유출될 일이 없으니, 안심하라고 답했습니다.

간담회 중간에는 육개장 때문에 촬영이 중단되는 일도 벌어졌습니다. 카메라 좀 잠시 빠져 달라고, 일부 참석자가 요구한 겁니다. 옆에서 진지한 얘기를 하는데, 자기만 육개장을 먹는 것처럼 촬영되는 것이 부담스럽다는 이유입니다. 취재진은 할 수 없이, 회의장을 나가서 잠시 기다려야 했습니다. 육개장이, 조찬이 조찬 간담회를 중단시켰습니다. 카메라가 돌아갈 때는 말하기 부담스러워서, 식사할 때는 또 식사 때문에 대화는 여의치 않았습니다. 다들 묵묵히 육개장만 드셨습니다.

식사가 끝나고, 한 마디씩 발언이 끝나자, 진행자가 장관 일정 때문에 더 이상 간담회를 진행하기 힘들겠다고 했습니다. 어? 서로 얘기 안 하나? 질의응답 없나? 합의는 아니어도 접점은? 공감대는? 모두 실종됐습니다. 간담회는 맥없이 끝났습니다. 간담회가 아니라 발표회였던 겁니다. 대화라고 할 만한 것을 굳이 복기한다면, 앞서 삼성전자의 “우리 타격 받는다”와 정부의 “걱정 말아라” 정도입니다. 최 장관은 간담회 말미에, “단말기 유통 개선법에 반대하시는 분은 없는 것 같다”고 자평했습니다. 그러고 다음 일정을 위해 자리를 떴습니다. 유필계 LG유플러스 부사장은 앞서 "법이 시장 경쟁을 억제하면 궁극적으로 이용자한테도 불이익이 될 것"이라고 걱정했는데, 최 장관의 자평에 붕 뜬 발언이 됐습니다.

법안은 지난 5월 국회에 제출됐습니다. 미래부는 정부 입법이 번거로우니까, 국회의원을 통해 법안을 제출했습니다. 그러고 삼성전자 등 일부 반발이 잇따르면서 법안 진척이 안 되니까, 이런 언론 플레이를 시도했습니다. 법안에 제동을 거는 사람들을 카메라 앞에 앉혀놓고 입장을 발표하되, 서로 자유로운 대화는 하지 않기로 약속한 간담회 자리를 만들었습니다. 이 법은 소비자 보호라는 대의에 서 있어서 그걸 대놓고 반대하기 힘들다는 점을 노린 것입니다. SK텔레콤 이형희 부사장이 “소비자 중심의 단어와 논리 앞에서 다른 얘기를 하기엔 힘든 부분”이라고 말한 게 그런 뜻입니다. 어떤 돌발 상황이 생길지 모르니까, 취재진은 이런 자리의 목적을 알면서도 갈 수밖에 없습니다. 미래부는 간담회를 가장한 이벤트를 조직할 것이 아니라, 취재진은 좀 몰라도 되니까, 서로 몰래 만나서 속 깊은 대화 좀 나눴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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