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SBS 뉴스 상단 메뉴

[취재파일] '내' 밑으로 '너' 위로 집합! 그리고 '갈굼의 증폭'

‘군대 민주주의’가 필요한 이유

[취재파일] '내' 밑으로 '너' 위로 집합! 그리고 '갈굼의 증폭'
최근 한 이등병의 죽음에 대해 보도했습니다. 허약한 체력 때문에 적응에 어려움을 겪고 스스로 목숨을 끊었던 손 모 이병의 사연이었습니다. 뭐가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일까요. 한 부적응자의 잘못된 선택이기만 할까요. 방송 기사란 게 길어봤자 2, 3분이라 취재한 내용을 제대로 전해드리지 못했습니다만, 사연을 취재하면서 변태적이리만큼 가학과 피학을 반복하는 우리 군 문화를 날 것 그대로 보는 것 같아 아쉬움이 컸습니다.

조직이 문제일까, 정신력이 문제일까

손 이병이 자대에 배치 받고 난 직후, 부대에서 전술훈련 평가가 있었습니다. 전술훈련 평가는 부대별 전투력을 측정하는 일종의 중간고사입니다. 서울의 명문대를 다니며, 집안의 기대를 한 몸에 받았던 손 이병이었지만 군대에선 달랐습니다. 수전증과 다한증, 심한 난시 탓에 사격이 쉽지 않았고, 동료들에 비해 체력이 약했습니다. 부대 전술훈련 평가의 방해 요인이었던 셈이죠.

하지만 군대는 손 이병을 포용할 만큼 관용적인 조직이 아니었습니다. ‘안되면 되게 하라.’는 군대의 신화 속에서 ‘갈구면 할 수 있다.’는 훈육방식이 동원됐습니다. 그리고 그 방식은 철저히 위계에 의존해 있었습니다. 손 이병은 ‘내 밑으로, 너 위로, 다 집합’이란 말을 자주 들었습니다. 선임을 대신 혼내 정신적 압박감을 주는, 군대 특유의 훈육 방식입니다.

‘갈굼’은 세분화된 계급 선을 따라 내려오면서 더욱 증폭됐습니다. 3월 군번은 4월 군번을 갈구고, 4월 군번은 다시 5월 군번을 갈굽니다. 이 과정에서 갈굼의 정도는 커졌고, 갈굼이 손 이병에게 도착할 때쯤이면 언어 폭력을 넘어 구타와 가혹행위가 됐습니다. 수 백 차례의 팔굽혀펴기, 계속되는 야간근무, 취사장과 화장실 청소 전담 등도 계속됐습니다. 불과 한 달 사이, 손 이병은 극도의 스트레스로 10kg이 넘는 체중이 빠졌습니다. 결국, 스스로 버틸 힘을 잃어버렸던 손 이 병은 사격장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었습니다. 청천병력 같은 소식을 듣고 부대를 찾은 손 이병의 부모님 눈앞에는 ‘부대전술훈련평가 1위 달성’이란 플래카드가 걸려있었습니다.

뭐가 잘못된 걸까요. 제 기사에 달린 수많은 댓글처럼, 손 이병의 정신력이 문제였을까요. 상명하복이 핵심인 군대에선 ‘어쩔 수 없다.’고만 말할 수밖에 없을까요. 정말 손 이병에 대한 배려와 관심은 특수 집단인 군대에서 고려 대상이 되면 안되는 걸까요.

베트남 전쟁 ‘사병들의 반란’

군대 문화에 대한 취재를 하면서 베트남 전쟁과 관련된 흥미로운 자료를 봤습니다. 미국의 시민운동가이자 사회학자인 조너선 닐의 ‘미국의 베트남 전쟁’이란 책이었습니다. 닐은 이 책에서 베트남 전쟁 실패의 원인으로 3가지를 꼽는데, 베트남 민중의 저항, 미국 내의 반전운동, 마지막으로 사병들의 반란을 꼽습니다. 마지막 ‘사병들의 반란’은 베트남 현지에 파병된 군인들의 저항, 즉 상관 살해를 뜻합니다.

당시 상당수의 병사들은 전투를 거부했다고 합니다. 당연히 상관들은 전쟁을 강요했고요. 이 때문에 병사들은 일부 장교나 하사관, 선임들에게 현상금까지 걸었는데, 보통은 몇 십 달러에서 몇 백 달러였지만 악독한 선임에 대해서는 최고 1만 달러의 현상금을 걸었습니다. 문제는 이게 한 두 건이 아니었다는 점입니다. 보통 상관 살해는 막사 안에 수류탄을 던지는 식으로 이뤄졌는데, 이런 행동을 프래깅(fragging)이란 신조어로 부를 정도로 일반화됐습니다. 베트남 전쟁 당시 미국 정부에 상관 살해 혹은 살해 시도 보고가 올라온 것만 1500건에 달했습니다. 드러나지 않은 것까지 합치면 엄청났을 겁니다.

극한 전쟁 상황, 여기서 사람 하나 더 죽인다고 가책이 더 커질리 없습니다. 적을 죽이는 과정 속에서, 동시에 자신을 괴롭혔던 선임을 너무나 쉽게 죽일 수 있는 방법을 배웠습니다. 전쟁이란 이런 겁니다. 적이던 아군이던 사람 목숨 파리 목숨이 되는. 전우를 위해 자신의 목숨을 걸고 허리춤에 수류탄 매고 지뢰밭을 달려가는 감동적인 장면은 군대 홍보 영화에서나 자주 있는 일일 테지요. 결국 전쟁은 실패로 이어졌습니다.

인간의 개별성을 과도하게 말살하고 있는 우리 군대, 만일 전쟁이 터진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요. 지금의 군 문화가 계속된다면 베트남 전쟁에서 있었던 잔혹한 일이 우리 군대에서 벌어지지 말란 법 없습니다. 군의 전투력을 위해서라도 군 민주화는 필요합니다. 이건 인권단체가 아니라, 오히려 전투력을 강조하는 군 관련 보수 단체에서 주장해야 합니다.

‘군대 사회학’이 필요하다

여담입니다만, 이번에 군대 관련 자료를 모으면서 다소 놀랐습니다. 정신 건강, 신병 관리, 관심 사병 문제 등 군 부적응 문제에 그나마 가장 관심이 많았던 학문은 여성 학문으로 치부되는 ‘간호학’이었습니다. (간호학 전공자 상당수가 여성이란 점 때문에 여성 학문이란 말로 표현했을 뿐이니 오해 없으시기 바랍니다.)

남성들이 군대 문제를 논할 때, 여성 혹은 군대에 다녀오지 않은 남성을 소외시키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번 기사에 달린 댓글 중에서도 ‘너 군대 다녀왔냐.’는 내용도 많았습니다. 방송으로 제 목소리를 듣지 않고 인터넷으로만 기사를 보신 분들은 아무래도 제 이름이 중성적이다 보니 여성이라고 생각하신 분들도 있는 것 같습니다. 제가 군대를 다녀왔는지, 안 다녀왔는지가 뭐 그리 중요한 문제인가요. (참고로 저는 육군 현역 복무를 마쳤습니다.) 제가 군대를 다녀오지 않았으면, 군대 얘기 꺼내지도 말라는 얘기인가요.

군대 담론 자체가 얼마나 폐쇄적으로 이뤄졌는지 단적으로 보여주는 겁니다. 그런데 그렇게 말하던 남성들은 정작 제대로 된 군대담론을 만들어 냈을까요. 아니, 안했다는 표현이 맞을 것 같습니다. 저 역시 술자리에서 군대 이야기를 많이 하지만, 보통 악독했던 고참 이야기나 고문관 때문에 마음 고생했던 이야기 등을 하며 껄껄 웃고 맙니다. ‘폭력’을 ‘추억’으로 미화시켜 이야기하는 태도죠.

정작 군 담론에서 소외되고, 무시당했던 여성들이 군 병리를 연구해줬다니 참 고마운 일입니다. 다만 아쉬운 건 군 조직 문제를 사회학적으로 분석하는 학문이 전무했다는 겁니다. 군대 문화를 비판하는 칼럼이나 기고는 참 많은데, 학문적 연구는 별로 없었습니다. 대한민국 인구의 절반이 극도의 긴장 속에서 2년에 가까운 시간을 보내는 데, 누군가가 이를 치밀하게 연구하지 않았다는 사실은 참 의외입니다. 군 조직에 대한 냉철한 분석과 비판적 의심이 있어야 본질적인 문제가 해결됩니다. 군대 사회학이 절실합니다.

손 이병의 명복을 빕니다.

기사가 나가고 손 이병의 부모님 전화를 받았습니다. 댓글 봤냐고, 우리 애 욕하는 거 봤냐고, 댓글 때문에 밤잠을 설쳤다고…. 너무 괴로웠습니다. 안 그래도 인터뷰 요청을 드리면서 아픈 부분을 다시 건드린 것 같아 너무 죄송스러웠는데, 결과물마저 이렇게 돼버리니 자괴감이 컸습니다. 정교하게 기사를 못 쓴 제 잘못이 가장 크겠지만, 고인의 명예를 욕보인 일부 누리꾼들도 원망스럽습니다. 생각은 다를 수 있습니다만, 생각 없이 뱉은 말 때문에 누군가 밤잠을 설칠 수 있다는 것 아셨으면 좋겠습니다. 손 이병의 명복을 빕니다.   
Copyright Ⓒ SBS.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재배포 및 AI학습 이용 금지

스브스프리미엄

스브스프리미엄이란?

    많이 본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