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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미 국가안보국은 왜 한국을 감시했을까 (상)

[취재파일] 미 국가안보국은 왜 한국을 감시했을까 (상)
(미국 국가안보국 NSA가 세계 각국과 정상들을 상대로 불법 정보수집을 해왔다는 폭로가 몇 달째 이어지고 있다. 이미지 출처 www.thehackernews.com)

 미국 국가안보국 NSA가 한국을 감시 대상으로 삼았다는 문건이 드디어 공개됐습니다. 지난 6월 초 NSA가 미국 시민 수백만 명의 통화기록을 무단으로 수집했다고 영국 가디언이 처음으로 보도한 지 150여일만입니다. 무차별적인 정보 수집으로 뉴욕타임스로부터 ‘전자 잡식동물(electronic omnivore)’이라는 별명까지 얻은 NSA가 한국에서도 정보 수집활동을 벌였으리라는 것은 사실 어느 정도 예견된 것이었습니다. 유럽연합의 수장인 메르켈 독일 총리와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까지 도청한 NSA가 동아시아의 전략 거점 가운데 한 곳인 한국을 감시대상에서 제외했을 가능성은 높지 않기 때문입니다. 유엔 사무총장부터 독일 총리에 브라질에서 한국까지, ‘편식’하지 않고 열심히 일하는 NSA에게 뉴욕타임스가 별명을 제대로 지어준 것 같습니다.
미 국가안보국 NS
(뉴욕타임스가 보도한 NSA 기밀문서 '2007년 1월 전략임무 목록'. 한국을 주요 감시 대상국으로 지정해 정보 수집활동을 해왔다는 내용이 담겨있다)


**여러모로 궁색한 오바마 대통령의 해명

 지난 6월 불법 정보수집 논란이 처음으로 불거진 직후 미국은 지금까지 같은 입장을 반복해왔습니다. ‘정보기관이 정보를 수집하는 것은 국가 안보를 위해 당연한 일’이라는 해명입니다.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도 같은 취지로 불법 정보수집 논란에 대한 의견을 밝혔습니다. 아래는 오바마 대통령이 며칠 전 한 언론과 가진 인터뷰 내용입니다.
미 국가안보국 NS
"The national security operations generally have one purpose and that is to make sure that the American people are safe and that I'm making good decisions, and I'm the final user of all the intelligence that they gather. But they're involved in a whole wide range of issues. And we give them policy direction, but what we've seen over the last several years is their capacities continue to develop and expand and that's why I'm initiating now a review to make sure that what they're able to do doesn't necessarily mean what they should be doing."
(10월 29일 오바마 미 대통령 인터뷰 中)
 

 오바마 대통령의 말은 한 마디로 '미국 정보기관이 테러 등의 위험에서 국민들을 지키기 위해 정보 수집을 했다'는 겁니다. 다만 그 범위가 매우 넓고 제한이 없었다는 것입니다. 상식적으로 어느 정도 수긍이 가는 해명입니다. 다른 나라도 아니고 안방에서 9.11 테러를 겪은 미국이니 정보 수집에 목을 매는 것도 무리는 아닙니다.
 
 그러나 문제는 NSA가 불법으로 정보를 수집한 목적이 비단 자국민 보호를 위한 것만은 아니라는 점입니다. 무차별적인 정보 수집으로 정보 우위를 유지해 미국의 패권을 지키는 것이 가장 본질적인 목적이라는 지적이 나오고 있습니다. 세계 시장에서 미국 기업이 다른 나라 기업과의 경쟁에서 이기도록 돕는 것도 불법 정보수집의 목적 가운데 하나라는 지적도 있습니다. 오바마 대통령의 원론적인 해명이 궁색해지는 대목입니다. 더욱이 다른 나라 정상들까지 도청해놓고 자국민의 안전 때문이라고 설명할 수는 없는 노릇입니다. NSA에 의해 통화내용을 도청당하고 이메일까지 해킹당한 것으로 지목된 각국 정상들은 이미 미국 정부에 항의를 표시했습니다. 브라질의 지우마 호세프 대통령은 브라질 대통령으로서는 18년 만에 이뤄질 계획이었던 미국 국빈방문을 취소했습니다. 멕시코는 미국 대사를 불러 우려를 전달하고 미국 정부에 항의 서한을 발송했습니다. 브라질 정부는 NSA가 브라질 국영에너지회사인 페트로브라스의 네트워크를 감시한 데 대해 ‘미국의 안보를 위한 것이 아니라 산업 스파이 활동’이라고 비난했습니다.


 **NSA에게는 중국이나 독일이나 똑같은 감시 대상

 '전자 잡식동물'의 멈추지 않는 식성이 브라질과 멕시코에만 머무르지는 않았습니다. 독일 슈피겔지는 NSA가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를 무려 10년 동안 감청했다고 보도했습니다. 독일은 미국의 든든한 우방이자 유럽연합의 맹주 역할을 하고 있는 국가입니다. 그리고 메르켈 독일 총리는 유럽연합을 이끌고 있는 실질적인 유럽연합의 대표입니다. 10년 전이면 메르켈 총리가 독일 기민당의 첫 여성 당수로 주목을 받고 있던 시기인데, 우방국의 차기 리더가 될 인물을 야권 정치인 시절부터 도청했다고 하니 NSA의 불법 정보수집 활동이 얼마나 뿌리 깊은지 놀랄 정도입니다.

 여기에 더해 독일 언론 빌트 암 존탁은 오바마 대통령이 메르켈 총리에 대한 감청 사실을 이미 3년 전부터 알고 있었다고 보도했습니다. 키스 알렉산더 NSA 국장이 오바마 대통령에게 도청내용을 보고해왔다는 겁니다. 독일 국민들과 메르켈 총리가 분노한 것은 당연합니다. 백악관은 오바마 대통령이 메르켈 총리에 대한 감청 사실을 보고 받은 적이 없으며 올해 여름에 메르켈 총리에 대한 감시 프로그램을 끝냈다고 주장했지만 독일은 이 해명을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현재 미국에는 도청 의혹과 관련해 메르켈 총리의 특사단이 워싱턴을 방문한 상태입니다. 스페인에서는 6천만 건, 이탈리아에서는 4천600만 건의 전화를 감청해왔다는 보도도 잇따라 이어지면서 미국과 유럽연합과 관계는 급속히 냉각됐습니다. 미국과 유럽연합이 추진해오던 자유무역협정에도 영향을 미칠 거란 분석이 나오고 있을 정도로 이번 파문은 쉽게 가라앉지 않고 있습니다.
정윤식 취재파일_5

(영국 가디언지가 공개한 NSA의 '첩보감시 세계지도'. NSA는 우방인 독일에서 중국만큼이나 많은 감시 활동을 벌이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한국에 대한 감시 수준은 상대적으로 낮은 것으로 나타났다)

 그렇다면 미국은 왜 독일과 메르켈 총리를 감시했을까. 이유는 독일과 메르켈 총리가 유럽연합의 리더 역할을 하고 있기 때문인 것으로 분석됩니다. 미국, 중국과 함께 세계에서 가장 큰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는 유럽연합이 NSA에게는 주요 감시 대상일 수 밖에 없습니다. 과거 냉전시대 세계 2대 강국이었던 미국과 소비에트 연방이 어마어마한 규모의 첩보전을 벌인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가디언이 보도한 위 지도를 봐도 NSA는 중국과 독일에서 비슷한 수준으로 정보를 수집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납니다. 미국 입장에서는 중국과 유럽연합 모두 반드시 감시해야만 하는 대상인 것입니다.

 미국은 특히 영국 정보기관인 정보통신본부, GCHQ와 협력해 메르켈 총리를 도청했다고 영국 인디펜던트지는 보도했는데 이 때문에 영국도 현재 난처한 입장에 놓였습니다. 특히 GCHQ가 베를린에 있는 독일 연방의회와 메르켈 총리 관저의 바로 앞에서 도청 시설을 운영했다는 구체적인 내용까지 보도돼 영국 정부는 물러설 곳이 없는 상황입니다. 독일 정부는 이에 대해 영국 정부에 해명을 요구한 상태입니다. 사실 미국과 영국은 아주 오랜 '정보 교류국' 관계인데, 이런 오랜 관계가 이번에 함께 곤경에 처하게 된 상황입니다.


**NSA는 한국을 왜 감시했을까

 유럽연합의 맹주인 독일은 그렇다고 해도 미국이 한국을 주요 감시대상국으로 삼은 이유는 무엇일까. 이번에 공개된 문서에는 NSA가 한국을 네 가지 측면에서 주요 감시 대상국으로 삼아야 한다고 나와있습니다. NSA는 우선 '한국의 군사 무기기술 등이 급속히 발전하는 것'을 주요 감시 대상으로 꼽았습니다. NSA는 이 부분을 'Emerging Strategic Technologies : Preventing Technological Surprise'로 명시했습니다. 이 항목에는 스텔스 능력 보유 등 경계해야 할 구체적인 군사기술 목록도 포함돼 있습니다. NSA는 또 한국의 대외 정책도 주요 감시 대상이라고 명시했습니다. 'Foreign Policy : Ensuring Diplomatic Advantage for US'라고 쓰여진 이 항목에는 한국을 포함해 북한의 대외정책까지 미국에 이로운 방향으로 유지될 수 있도록 감시해야 한다는 내용이 담겨 있습니다.
미 국가안보국 NS
(NSA 문건에 담긴 '한국을 주요 감시 대상국으로 삼아야 하는 이유'. 네 가지 항목에서 한국이 언급됐다)

 다음으로는 한국의 정보기관 활동이 NSA의 주요 감시 대상에 포함됐습니다. 이 항목은 'Foreign Intelligence, Counterintelligence : Denial & Deception Activities'라는 이름으로 표현됐습니다. 다른 나라의 정보를 수집하는 입장에서 NSA가 한국의 정보기관 동향을 살피는 것은 필수적이라는 내용입니다. 마지막으로 미군이 파견돼있는 지역의 안전 상태를 늘 주시해야 한다고 NSA는 명시했습니다. 'U.S. Forces at Risk(Military Support) : Proteting U.s. Military Forces'라고 명시된 이 부분에는 한국을 비롯해 미군이 파견돼있는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 등 중동 지역과 필리핀이 언급돼있습니다. 눈에 띄는 건 한-미 연합군의 전시작전계획인 '작전계획 5027'이 따로 명시돼있다는 겁니다. NSA는 이 항목에서 '작계 5027을 지원하는 군사 계획과 전략을 마련한다'고 명시했습니다. 북한과 대치 상황을 벌이고 있는 한국이 NSA 문건에서도 주요 전략 거점으로 나타나있는 겁니다.

 NSA가 한국을 주요 감시 대상국으로 지정한 이 네 항목을 보면 한국은 여전히 전략적으로 중요한 나라로 여겨지고 있다는 점을 알 수 있습니다. 군사적으로나 외교적으로나 여전히 미국의 중요한 파트너로 인식되고 있다는 점은 한국의 안보 측면에서는 든든하게 여겨질 수도 있는 부분입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이 문건이 군사·외교적인 협력 관계를 나타내는 문건이 아니라는 점입니다. 이 문건의 이름은 'United States SIGINT system - January 2007 Strategic Mission List'. 즉, '미국 감시 시스템의 2007년 1월 전략임무 목록'이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SIGINT라는 말이 중요한데, SIGINT는 Signal과 Intelligence를 합친 단어로 전자장비를 사용한 정보 수집활동을 의미하는 단어입니다. 비슷한 의미로 첩보원 등 사람이 주축이 돼 직접 정보를 수집하는 활동은 HUMINT(Human Intelligence)라고 합니다. 쉽게 이야기하자면 영화 007 시리즈에서 나오는 정보요원들의 수집 활동이 바로 이 HUMINT에 속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결국 NSA의 SIGINT 임무 목록에 한국이 주요 감시 대상국으로 선정됐다는 말인데, 여기서 한국이 어떻게 감시를 당했는지를 예상할 수 있습니다. 한국 주요 인사들의 전화가 도감청됐을 가능성과 국내 인터넷 이용자들의 개인 정보가 해킹당했을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는 배경이 되는 겁니다. 그렇다면 NSA는 과연 어떻게 한국을 감시했을까. 현재 거론되고 있는 구체적인 감시 방법들에 대한 이야기는 다음 취재파일에서 이어가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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