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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드리포트] '고이즈미'의 변신은 무죄?…'원전제로'의 설득력은?

'원전제로'에도 전력난 없는 일본

[월드리포트] '고이즈미'의 변신은 무죄?…'원전제로'의 설득력은?
2001년부터 2006년까지 일본 총리를 역임했던 고이즈미 준이치로 전 총리의 변신이 일본 사회의 화제가  되고 있다. 고이즈미 전 총리는 매년 야스쿠니 신사를 참배했던 대표적인 우익 정치인이지만, 일본인들에겐 역대 총리 평가 2위에 오를 정도로 여전히 대중적인 영향력이 막강한 은퇴 정치인이다. 여기에다 총리 시절 당시 아베 의원을 관방장관으로 발탁해 총리로 가는 길을 열어줬던 만큼 아베 총리의 '사부'에 해당하는 정치인이기도 하다. 그런 고이즈미 전 총리가 최근 일본 곳곳을 돌며 아베 총리의 방침에 반대되는 '원전 제로' 주장을 줄곧 펼치고 있다. 자신의 강연을 언론에 공개하지 않다가, 최근에는 TV 촬영까지 허용했고 신문에도 자신의 주장을 기고하기도 했다. 고이즈미 전 총리의 주장을 간단하게 요약하면, "원전은 절대 싸지 않고, 일본은 원전 쓰레기를 묻어 둘 땅이 없는 만큼 원전 철폐에 나서야 한다."라는 것이다.

그럼, 총리 재직시절 '원전 찬성론자'였던 고이즈미 전 총리가 마음을 바꾼 이유는 뭘까?

역시 '후쿠시마 원전 사고'가 근본적인 이유이다. 하지만, 일본 언론이 거론하는 보다 직접적인 계기는
지난 8월 핀란드의 '고준위 방사성 폐기물 최종처분장'견학이다. 당시 학자, 원전 관계자들과 함께 세계 유일의 최종처분장을 방문했는데, 여기서 "플루토늄의 반감기는 2만 4천 년이고, 생물에 해가 없어지려면 10만 년간 묻어둬야 한다."라는 얘기를 듣고, 원전 반대 입장을 굳혔다고 한다. 이후 고이즈미 전 총리는 일본으로 돌아와 "일본은 10만 년간 원전 쓰레기를 묻어둘 만한 땅이 없다", "원전은 쓰레기 처리 비용과 안전 비용을 고려하면 결코 싸지 않다", "정치인이 나서 패러다임을 전환해야 한다. 자민당만 방침을 바꾸면 모든 정당이 원전 반대에 찬성한다."라고 주장하고 나섰다.

고이즈미 전 총리의 주장에 대해 야당 지도자들이 찬성의 뜻을 나타내는 등 파문이 이는 이유 가운데 하나는 현재 일본의 전력 사정에 있다. '후쿠시마 원전 사고'이전, 일본 원전은 모두 54기가 가동되며, 전체 발전의 29%를 담당했다. 현재 일본은 가동 중인 원전이 하나도 없는 '원전 제로' 상태이다. 한 때 원전 2기가 가동되기도 했지만, 검사를 위해 가동이 중단된 상태이다. 그런데도 일본은 전력난을 겪지 않고 있다. 한여름철에도 에어컨을 충분히 틀고 있고, 특별히 절전 캠페인도 벌이지 않고 있다. 일본 정부와 전력회사들도 전력에 여유가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있다. 원전 가동이 중단된 후, 놀고 있던 화력발전 시설과 기업의 자가발전 시설을 최대한 가동하면서 원전을 충분히 대체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원만한 전력 사정이 '원전이 꼭 필요하다는 생각'을 바꾸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아베 정권은 '원전'을 성장전략의 하나로 간주하고 있다. '원전 재가동 방침'에는 아직 아무런 변화가 없다. 아베 정권은 고이즈미 전 총리의 발언에 대해 '한 민간인의 발언일 뿐'이라며 애써 무시하고 있다. 그러면 고이즈미 전 총리는 자신의 제자인 아베 총리와 원전 문제를 두고, '한판 승부'를 벌이려는 것일까? 일본 정치평론가들의 말을 종합하면 그런 것 같지는 않다. 오히려 고이즈미 전 총리가 아베 총리를 돕기 위해 나섰다는 것이다. '원전 마피아'에 둘러싸인 아베 총리에게 원전과 관련한 '운신의 폭'을 넓혀주기 위해 서라는 것이다. 또 만약 후쿠시마 원전의 오염수 등 안전문제에 대한 해결책이 보이지 않을 경우, 원전 반대로 정책을 쉽게 전환할 수 있게 미리 안전장치를 마련해 놓기 위해 행동하고 있다는 것이다. 평론가들의 얘기가 맞는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고이즈미 전 총리의 원전제로 주장은 같은 정치적 이념을 가진 스승과 제자의 동상이몽이란 점에서 쉽사리 파문이 가라앉을 것 같지는 않다.

원전반대운동을 펼치고 있는 활동가들을 만났다. 이들은 '고이즈미 전 총리의 원전제로' 발언을 매우 반기고 있었다. 이들은 고이즈미와 아베를 비교하며, "이념은 비슷하지만, 격이나 차원이 다른 정치인"이라고 까지 얘기했다. 그만큼 고이즈미 전 총리의 영향력이 만만치 않다는 뜻이다. 이들은 "일본은 분명히 다른 원전국가들과 다르다."라고 얘기했다. 기자가 보는 일본도 첫째, 언제 대지진이 발생할지 모르는 나라, 둘째, 원전이 없어도 전력난에 대처할 수 있는 나라, 셋째 원전이 결코 싸지 않다는 것을 직접 경험한 나라이다. 후손들에게 어려운 과제를 떠넘기기 보다, 현 세대가 결단을 내리는 게 일본의 안전과 이익에도 맞으리라고 판단된다. 고이즈미 전 총리는 요미우리 신문 기고를 통해, 일본이 '쇄국에서 개국으로' 대전환을 이뤄 발전했듯이, 동일본 대지진을 계기로 다시 '원전의 패러다임 전환'을 이루자고 제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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