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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정보밀거래 (2) 당신의 스마트폰 정보를 노리는 사람들

[취재파일] 정보밀거래 (2) 당신의 스마트폰 정보를 노리는 사람들
악몽. 고3 수험생이었던 지난해 김 모양이 겪은 고통을 김 양이 표현한 말입니다. 시험공부가 힘들었기 때문이 아닙니다. 휴대전화에 저장해 뒀던 자신의 사생활이 담긴 동영상 때문입니다. 김 양은 지난해 5월 휴대전화를 분실했습니다. 분실신고를 했지만 찾을 수 없었습니다. 결국, 휴대전화를 새로 샀습니다. 다 끝난 일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몇 달이 지난 뒤 이상한 메시지가 도착했습니다. 000톡을 통해 말을 걸어온 남성은 김 양의 신상을 거론하며 동영상을 가지고 있다면서 협박을 시작했습니다. 김 양이 휴대전화에 남겼던 동영상은 친구들에게 살쪘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목욕을 하면서 찍은 것입니다. 스마트 폰이 생긴 뒤 하는 장난인지는 모르지만 김 양과 친구들은 여고생의 치기 때문인지 이런 장난을 했다고 합니다. 친구 1명에게 이 동영상을 보낸 적도 있어서 처음에는 친구가 장난을 치고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이 남성은 동영상을 미끼로 김 양에게 자위행위를 하는 영상을 찍어서 보내라고 계속 협박을 했습니다. 김 양이 경찰에 신고한 뒤에도 두 달 동안 이런 협박은 계속됐습니다. 한창 중요한 시험공부를 해야 할 시기에 김 양은 큰 정신적 고통을 받아야 했습니다. 수험생이라며 사정도 했고 자살을 하겠다고 말도 했지만, 협박은 그치지 않았습니다. 집요한 협박의 목적은 김 양처럼 일반인이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음란물을 동영상 사이트에 올려서 조회 수를 높이겠다는 것이었습니다. 이 남성은 협박에 견디지 못해 요구한 영상을 찍었다는 여성의 동영상을 보내기도 했습니다. 김 양의 이야기로는 자세히 보니 영상 속 그 여성의 얼굴에는 눈물 자국이 있었다고 했습니다. 김양은 두려움이 커졌다고 합니다. 이 남성은 차명 전화를 사용하고 다른 사람 명의의 계정을 쓰면서 경찰의 추적을 피해오다가 결국 두 달 만에 붙잡혔습니다. 경찰이 조사하면서 보니까 김 양뿐 아니라 다른 사람의 사진과 영상이 컴퓨터에 꽤 많았다고 합니다. 이 남성은 중고 휴대전화를 구해서 수출하는 업자에게 넘기는 일을 하는데 중고 휴대전화를 구하면 일단 기록을 복원해서 다른 사람의 은밀한 사진이나 영상을 찾았던 것입니다.

왜 이런 일을 했을까? 취재 도중 만난 한 인터넷 사이트 운영자를 통해 궁금증이 어느 정도 풀렸습니다. 거래의 목적은 역시 돈이었습니다. 이렇게 휴대전화에서 유출된 것으로 보이는 동영상이 주로 올라오는 사이트에는 하루에 수십 개씩 새로운 동영상이 올라옵니다. 조회수는 한 건 당 수만 건이 넘습니다. 전문 성인물처럼 보이는 영상들도 있지만, 자신이 찍어 휴대전화에 넣어둔 것으로 보이는 평범한 사진과 장난스런 영상들도 많습니다. 이 영상 뒤에 얼굴이 노출되지 않은 음란물 붙여놓다 보니까 앞서 얼굴이 공개된 사람들은 자신도 모르게 음란물 사이트에 영상을 올린 주인공이 돼 있었습니다. 이런 영상들은 누가, 어디서 구해오는 걸까?

"분실 휴대전화나 중고 휴대전화가 생각보다 엄청 많아요. 이걸 전문적으로 매입하는 애들도 있는데 잘 하는 선수들은 하루에 200대씩 매입하기도 해요. 이런 일반인들이 등장하는 영상을 만들어 가장 먼저 올리면 조회수가 늘어나는데 그러면 돈을 받을 수 있어요. 이런 영상만 있으면 돈 벌 방법이 아주 많아요." <인터넷사이트 운영업자 A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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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씨의 설명을 듣다 보니까 뭔가로 뒤통수를 맞은 기분이었습니다. 대부분 당사자도 모르게 이런 영상들이 음란물로 유포되고 있는 상태일 것이고, 당사자가 이 사실을 알 때쯤이면 이미 걷잡을 수 없게 퍼진 상태여서 어떻게 손 써볼 틈이 없습니다. 그런데 한 가지 이상한 점은 분실한 휴대전화라면 모르겠지만, 중고 휴대전화는 사진이나 영상, 문자 등을 삭제하고 판매를 할 텐데 어떻게 이런 개인적인 비밀을 구할 수 있느냐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찾아보니 인터넷에는 휴대전화 사진이나 영상, 연락처 등을 복원해 준다는 업체들이 많았습니다. 취재진은 한 복원 전문가를 만나서 휴대전화 데이터 복원 과정을 살펴봤습니다. 의외로 방법은 간단했습니다. 인터넷에서 구할 수 있는 소프트웨어를 가지고 휴대전화를 연결해 작동만 시키면 삭제됐던 대부분의 자료가 복원이 됐습니다. 놀라웠던 점은 휴대전화에 저장돼 있던 자료뿐 아니라 휴대전화 사용기간 동안 검색했던 인터넷 자료, 사진 등도 모두 복원이 된다는 것이었습니다. 여행사에 보내고 바로 삭제했던 여권사진, 은행 업무 때문에 보냈던 주민등록증, 통장사본 등도 복원이 됐습니다. 스마트 폰 보안 전문가인 김승주 고려대 정보보호대학원 교수의 설명으로는 스마트 폰은 메모리의 특성 때문에 컴퓨터보다 훨씬 쉽게 복원이 되고 휴대전화에 내장된 기능으로는 데이터를 완전히 삭제할 수 없다고 했습니다. 중고 휴대전화 업자들이 어떻게 다른 사람의 사진과 영상 등을 모두 가지고 있었는지에 대한 의문이 풀리는 순간이었습니다.  

문제는 사진과 영상만이 아니라 연락처, 문자 등도 복원되기 때문에 무엇을 하던 사람인지 자료만 복원되면 금세 알 수 있다는 겁니다. 여기에 휴대전화 사진 촬영을 할 때 무심코 켜놓은 위치정보기능(GPS)으로 인해서 촬영된 사진이 어디서 찍은 것인지 정확한 위치까지 나왔습니다. 2년 전 일본에서는 이렇게 사진에 내장된 위치정보 때문에 유괴범이 정확한 집 주소와 위치, 아이들 얼굴을 알고 아이를 유괴했던 일까지 있었습니다. 해외뿐 아니라 국내에서도 사진의 위치정보가 범죄에 이용되기도 했습니다. 휴대전화의 개인정보가 복원돼 입을 수 있는 피해를 조금이라도 줄이려면 현재로서는 삼성전자, LG전자, 팬택 등 제조회사 서비스센터를 찾아가 '공장초기화'를 요청해야 합니다. 일부 최신 업그레이드 소프트웨어의 경우 휴대전화에 설치된 초기화 기능으로도 정보를 어느 정도 지울 수 있지만 완벽하지는 않습니다. 휴대전화 분실에 대비해 통신사에서 무료로 제공하는 원격 데이터 삭제 서비스를 신청하거나 분실휴대전화서비스를 신청할 수도 있는데 서비스가 제공되는 모델이 제한적인데다가 모두 휴대전화가 켜져 있는 상태여야 한다는 한계가 있습니다.

그래서 좀 더 손쉬운 방법은 휴대전화 사용자가 아니라 제조사에서 마련해야 합니다. 휴대전화에 공장초기화와 같은 효과를 내는 기능을 내장해 둬 사용자가 원할 때면 언제든 지울 수 있도록 해 두면 됩니다. 위치정보 기능 역시 처음부터 작동되도록 할 것이 아니라 기능이 필요한 사람만 작동을 시켜서 사용하도록 초기 설정은 off로 해 두면 됩니다. 기업들이 마케팅 목적으로 위치정보를 수집하는 데 집중해서 그런 기능을 제공하지 않는 것뿐이지 기술적으로 어려운 일은 아니라고 합니다.

무엇보다 아직 처리지침조차 없는 스마트 폰 데이터 삭제에 관해 정부나 기업이 서둘러 규정을 마련할 필요가 있습니다. 이미 미국은 PC 내 정보 삭제 지침을 준용해서 스마트 폰 데이터 처리 지침을 마련해 시행 중이고 일부 정부 기관이나 기업은 중국 등을 출장 갈 때 쓰던 디지털 기기를 가져가지 못하도록 하는 곳도 있습니다. 점점 스마트 폰으로 업무를 처리하는 비중이 늘어나고 있고, 금융거래도 스마트 폰을 통해 이뤄지고 있는 현실에서 자료 복원이 상대적으로 더 쉬운 스마트 폰의 데이터 처리 보안지침조차 없다는 것은 심각한 문제입니다. 우리가 지금처럼 손을 놓고 있다가는 앞으로 어떤 피해를 더 당할지 알 수 없는 것이 현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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