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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소문 두려워" 여교사 지망생 10대 살해사건의 전말

[취재파일] "소문 두려워" 여교사 지망생 10대 살해사건의 전말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으로 잘 알려진 밀란 쿤데라. 하지만, 숨은 대표작으로 「불멸」을 꼽는 이가 많습니다. 말 그대로 사라지지 않는 것. 쿤데라는 '불멸'하는 그것은 바로 '소문'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불멸」은 소문을 만들지 않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인물과 그들이 만드는 희비극입니다.

  '인천 과외교사 제자 살해사건'으로 불린 지난 6월 한 10대의 죽음 역시, 시작은 소문에 대한 두려움이었습니다. 20대 피의자 3명 가운데 1명은, 이 '불멸'로부터 도피를 꿈꾼 것처럼 보입니다.

공범이 2명 더 있었다

  지난 6월 말, 인천의 한 원룸. 29살 이 모 씨가 동거하며 과외 교습을 하던 16살 권 모 군에게 끓는 물을 붓는 사건이 발생합니다. 전신에 3도 화상을 입은 권 군은 끝내 숨졌습니다. 

  이 씨는 검거 즉시 범행을 자백했지만, 성폭행을 피하기 위한 정당방위라고 주장했습니다. 그 근거로 친구가 촬영한 동영상까지 제출했습니다. 증거까지 갖춘 정당방위로 보이던 그녀의 범행은 그러나, 수사가 진전될수록 거짓말이란 게 밝혀집니다. 동영상은 권 군이 자신을 성폭행한 것처럼 옷을 벗게 하고 찍은 것이라고 털어놓았고, 공범 2명이 더 있었다고 자백한 겁니다. 

  인천지방검찰청 조사결과를 토대로 재구성한 이번 범행의 실체는 이렇습니다.
  먼저 붙잡힌 이 씨와 28살인 또 다른 이 모 씨(이하 공범 이 씨)는 임용고시 준비생입니다. 강원도에 있는 한 4년제 대학교 사범대학을 다녔습니다. 지난해 5월 강릉에 있는 한 고등학교에 교생실습을 나갔습니다. 여기서 공범 이 씨는 1학년 권 모 군을 알게 됩니다. 공범 이 씨는 두 달 뒤 권 군과 연인관계로 발전했습니다.

  이들 2명은 대학을 졸업했고, 고향인 인천으로 돌아왔습니다. 그런데 그 사이 권 군은 학교를 자퇴합니다. 공범 이 씨는 검찰에서 "사귀던 권 군을 강릉에 혼자 두고 오면, 권 군이 자신과 사귄 사실을 주변에 말할까 염려됐다"고 진술했습니다. 이때부터 공범 이 씨는 고등학교 때부터 알던 친구 이 씨를 끌어들입니다. 권 군을 인천으로 데리고 와 과외공부를 시키자고 제안하며, 검정고시에 합격할 수 있도록 도와주라고 부탁을 한 겁니다.

공부 시험


검정고시 그리고 체벌

  이번 사건엔 공범 이 씨의 남자 친구 안 모 씨(29)도 등장합니다. 안 씨는 "권 군이 검정고시에 합격하지 못하면, 강릉으로 돌려보내지 못하는 상황이었다"고 검찰에 진술했습니다. 남자친구인 그는 권 군과 공범 이 씨를 하루라도 빨리 떼어놓고 싶었을 겁니다. 그리고 권 군이 공부를 열심히 하지 않자, 일은 잘못되기 시작합니다. 공부에 게으르다는 이유로, 이들 3명이 권 군에게 가혹한 체벌을 가하기 시작한 겁니다.

  체벌은 지난 5월부터 시작됐습니다. 벨트와 골프채가 동원됐다고 검찰은 전했습니다. 인천 연수동 원룸에서, ‘번갈아가며, 지속적으로, 피가 나도록’ 피해자의 머리와 전신을 구타한 겁니다. 병원에 데려가 달라는 권 군의 요청은 무시한 걸로 조사됐습니다.

  결국, 6월 26일 처음 붙잡힌 이 씨가 권 군의 몸에 끓는 물까지 붓고 구타하는 일이 터집니다. 권 군은 사흘 뒤 숨을 거둡니다. 사망 원인은 전신 감염에 의한 패혈증이었습니다.

  처음 검거된 이 씨는 6월 29일 새벽 4시, 119신고를 했고 곧바로 인천 연수경찰서에서 조사를 받기 시작합니다. 당시만해도 참고인이던 공범 이 씨와 안 씨는 정당방위라며 먼저 붙잡힌 친구의 말에 힘을 실어줍니다. 안 씨는 자신이 동영상을 직접 촬영했다며, 오히려 그녀가 성폭행당할 뻔 했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경찰은 두 사람의 휴대전화에 저장되어 있던 메시지를 토대로, 세 사람을 각기 추궁하기 시작합니다. 그 결과 처음 검거된 이 씨가 권 군을 폭행한 사실을 확인한 경찰은 우선, 그녀부터 상해치사 혐의로 구속, 인천지검에 사건을 송치합니다.

  사건을 넘겨받은 검찰은 시신의 온몸에서 수많은 상처가 발견되었고, 그 상태가 매우 심각했다는 사실에 주목했습니다. 끓는 물을 부은 뒤 이틀간, 공범 이 씨와 안 씨가 원룸에 드나든 사실도 확인했습니다. 그런데도 시신은 방치됐고, 공범이란 의심은 커졌습니다.

  공범 이 씨와 안 씨의 휴대전화 메시지를 복원하자 혐의는 더욱 짙어졌습니다. 지난 5월부터 6월까지 대화 내용엔 세 사람 모두 폭행에 가담한 정황이 담겨 있었던 겁니다.

  검찰은 메시지 내용을 토대로 먼저 구속된 이 씨를 추궁하고 설득했다고 합니다. 단독범행을 주장하던 이 씨는 결국, 공모 사실을 시인합니다. 지난달 22일 두 참고인 역시 상해치사죄의 공범으로 구속됩니다.

  검찰은 범행 동기를 확인하기 위해 프로파일링을 했습니다. 그 결과 구속된 두 여성은 "보통 사람들과 다른 성격적 장애가 있을 수 있다"는 분석 결과를 얻었다고 밝혔습니다.
거실

먼저 붙잡힌 이 씨의 범행 동기

  이번 사건의 시작은 숨진 권 군과 공범 이 씨의 교제였습니다. 그럼 먼저 붙잡힌 이 씨는 왜 극단적인 범행을 저지른 걸까요. 검찰에서 이 씨는 "권 군과의 원룸 생활에 불편함을 느꼈다"고 말했습니다. 하지만, "친구이자 공범인 이 씨 때문에 권 군을 강릉으로 돌려보낼 수도 없는 상황이어서 많은 스트레스를 받았다"고 진술했습니다.

  먼저 붙잡힌 이 씨는 "그 상황에서 벗어나려면 권 군이 검정고시에 합격하는 수밖에 없었다"고 말했습니다. 권 군의 검정고시 시험은 8월이었습니다. 그런데도 권 군의 실력은 좀처럼 향상되지 않았다고 합니다. 결국, "성적을 올리려고 체벌을 시작했고, 자신의 힘만으로는 권 군이 말을 듣지 않아서 체벌을 부탁했다"고 범행 동기를 밝혔습니다. 

  그런데 끓는 물까지 뿌리고 단독 범행의 주인공으로 몰린 그녀가, 극도의 스트레스를 받은 데는 다른 이유도 있었습니다.

  이 씨는 공범 이씨로부터, "권 군의 성적이 안 오르면 '원이'의 가족이 피해를 본다는 얘기를 자주 들었다"고 진술했습니다. 그녀는 '원이'란 인물이 자신의 남자친구라고 검찰에 진술했습니다. 그런데, 교제는 문자메시지로만 이뤄졌다고 말했습니다. 만난 적은 없고 대화로만 교제해 온 일종의 '사이버 연인'이었던 겁니다.

  그런데 검찰이 통신 기록을 조사했더니 뜻밖의 사실이 드러납니다. '원이'는 가상의 인물이었던 겁니다. 그를 소개해 준 건 공범 이 씨였습니다. '원이'는 바로 공범 이 씨가 다른 휴대전화 번호를 이용해 만든 가상의 남자친구였습니다. 문자메시지를 주고받은 것 역시 공범 이 씨였던 걸로 조사됐습니다. 친구이자 공범인 이 씨가 '원이'였던 겁니다.

  더 놀라운 건 먼저 구속된 이 씨가 가상의 원이를 소개받은 게 2009년이란 사실입니다. 무려 4년간이나 그녀는 정말 친구에게 속은 걸까요. 검찰 수사결과로는 일단, 이 씨는 '원이'의 존재를 믿었고, 권 군의 성적이 오르지 않으면, 그의 가족이 해를 입는다는 공범 이 씨의 말을 믿었던 걸로 보입니다.

공범 이 씨의 범행 동기

  사건을 취재하면 할수록, 이 비극의 한가운데 공범 이 씨가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습니다. 그녀는 검찰에서 뭐라고 말하며 범행을 시인했을까요.

  검찰은 그녀가 강릉에서 권 군과 사귄 뒤, 인천으로 돌아온 뒤엔 권 군에 대한 흥미를 잃은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권 군이 검정고시라도 합격해야 소문이 나지 않을 거라고 믿은 걸로 결론지었습니다. 권 군이 자퇴를 결심한 데는 공범 이 씨가 인천으로 온 게 원인으로 보입니다. 소문을 막기 위해 검정고시 합격을, 합격을 위해 폭력을 쓴 겁니다. 그리고 안타까운 죽음이 남은 겁니다.

  결국, 가장 먼저 붙잡힌 교사 지망생 이 씨는 사건 전반의 주인공이 아닌 셈입니다. 친구이자 공범인 또 다른 이 씨로부터 비극이 시작됐기 때문입니다. 고등학생과 사귀고, 그 소문이 두려워 그를 검정고시에 합격시키고 싶었던 의도는 감금 폭행 사태로 번졌습니다. 이 의도의 연결고리는 결국, 준엄한 법의 심판으로 귀결했습니다. 교사 지망생과 대학생 등 20대 젊은이 3명은 상해치사 혐의로 구속돼 재판에 부쳐졌습니다.

  고등학생과 사귄 여자 교생. 교육자를 꿈꾼 그녀에겐 치명적인 불멸의 소문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도피의 방식은 끔찍했고, 세 젊은이에겐 돌이킬 수 없는 운명만이 남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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