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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허벅지 사이 틈'??

[취재파일] '허벅지 사이 틈'??
'Thigh Gap'이라는 말 혹시 들어보셨나요? 요즘 미국을 비롯한 해외 소셜미디어에서 가장 '핫한' 단업니다. thigh는 허벅지, gap은 틈을 뜻하는 영어단어니까 우리말로 번역하면 '허벅지 사이 틈' 정도가 되겠네요. 아래 사진을 보시면 특별한 설명 없이도 바로 이해가 되실 겁니다.

김영아 취피ㅏ용
김영아 취피ㅏ용



'허벅지 사이 틈'은 너무 말라서 두 발을 붙이고 섰을 때 허벅지가 닿지 않는 몸매를 일컫는 말입니다. 트위터와 텀블러, 인스타그램을 비롯한 해외 소셜미디어 사이트에는 요즘 이 '허벅지 사이 틈'이라는 제목의 사진들이 쉴새 없이 올라오고 있습니다. 마른 몸매를 꿈꾸는 여성들, 특히 청소년들 사이에서 '완벽한 몸매'의 상징처럼 여겨지는 탓입니다.

아래는 구글에서 'Thigh gap'으로 검색한 결과입니다.
김영아 취재파일 구
미국의 abc방송, 허핑턴 포스트 같은 유수 언론의 기사들이 줄줄이 나옵니다. 그런데 상당수 제목에 따라다니는 단어가 있습니다. 'obsession', 즉 '강박'입니다. 사실, 이 글을 읽으시는 분들 가운데 상당수는 공감하시겠지만, 웬만큼 마르지 않고선 허벅지 사이에 틈이 생기기는 쉽지 않습니다. '허벅지 사이 틈'에 대한 열광은 결국 '마른 몸=예쁜 몸'이라는 잘못된 인식 때문에 강박적으로 살 빼기에 매달리는 풍조를 보여주는 가장 최근의 현상입니다.

'가장 최근'이라는 표현을 사용한 건, 마른 몸이 예쁜 몸이라는 잘못된 인식이 어제오늘의 일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허벅지 사이 틈' 이전에 가장 유행했던 표현으로는 '제로 사이즈'라는 게 있었죠. '현실에서 존재하기 힘든 날씬한 사이즈'라는 뜻입니다. 비슷한 개념으로 우리나라에서는 '연예인 몸무게'라는 단어가 널리 쓰이고 있습니다. 의사들이 건강의 척도로 꼽는 '적정체중'의 상대 개념으로, '미의 척도'로 쓰이는 체중을 뜻하는 단어입니다.

실제 지난 5월 질병관리본부의 조사 결과를 보면 우리나라 여성 청소년들 사이에 '마른 몸'에 대한 강박이 얼마나 심한지 여실히 확인됩니다. 질병관리본부가 전국 남녀 중고등학생 7만 2천여 명을 조사한 결과 81%가 의학적인 '정상체중'이었습니다. 그런데 정상체중인 여자 중고등학생의 36%는 자신이 뚱뚱하다고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이보다는 적지만 정상체중인 남학생들도 23%가 자신이 뚱뚱하다고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또, 여자 중고등학생의 44%는 "최근 한 달간 살을 빼기 위해 노력한 적이 있다"고 대답했습니다. 

문제는, 비정상적으로 마른 몸에 대한 동경에서 비롯된 마른 몸에 대한 강박이 단순한 미적 기준의 변화가 아니라 수많은 젊은 여성들의 건강에 위협이 된다는 점입니다. 실제로 외신에는 마른 몸매의 대명사처럼 여겨지는 모델들이 거식증으로 숨졌다는 기사가 심심찮게 올라옵니다. 그 가운데서도 가장 충격적이었던 사건을 꼽으라면 아마 지난 2007년 우루과이의 자매 모델 사망 사건일 겁니다. 각각 18살, 22살이었던 모델 자매가 거식증으로 인한 심장마비와 합병증으로 한 달 간격으로 숨진 사건입니다. 조사 결과 두 사람은 패션쇼를 앞두고 석 달 동안 상추와 다이어트 콜라만 먹었던 걸로 확인됐습니다.

이런 사건들이 빈발하면서 최근엔 세계 각국에서 '마른 모델 퇴출 운동'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가장 대표적인 게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패션지로 꼽히는 보그입니다. 보그는 지난해 "신체 이미지에 대한 더 건강한 접근 방식을 패션 업계에 권장하기 위해 너무 어리거나 마른 패션모델을 잡지에 싣지 않기로 했다"고 선언했습니다. 16세 이상의 정상체중인 모델 사진만 싣겠다고 밝혔습니다. (물론, 요즘 보그지에 실리는 모델들의 사진을 보면 그 '정상'의 기준이 뭔지 여전히 의심스럽긴 합니다만....)

뿐만 아닙니다. 이스라엘은 마른 모델은 무대에 설 수 없도록 하는 법까지 만들었습니다. 모델들이 이스라엘 시장에 사용할 패션 화보 사진을 찍으려면 지난 3개월 안에 발급된, 세계보건기구 기준에서 자신이 영양실조가 아님을 증명하는 건강진단서를 관계기관에 제출하도록 강제하는 내용입니다.

하지만 이런 우려와 대책들에도 불구하고 비정상적으로 깡마른 몸에 대한 여성들의 동경과 강박은 좀처럼 수그러들지 않고 있습니다. 소셜 미디어를 도배하다시피 하고 있는 '허벅지 사이 틈' 사진들은 바로 이런 현상의 반영이고요. 그래서, 오늘도 '허벅지 사이 틈'을 꿈꾸며 '적정 체중'이 아닌 '연예인 몸무게'를 목표로 다이어트에 매진하고 있는 분들을 위해 몇 가지 주목할만한 해외 연구 결과와 전문가 의견을 소개해 드리면서 마칠까 합니다.

1. 2012년 8월 비만 저널(Journal of Obesity)에 실린 연구 결과입니다.

"청소년기에 스스로 뚱뚱하다고 생각하면 성인이 됐을 때 살이 찐다."

노르웨이 과학기술대학 연구팀이 13~19세 정상체중인 남녀 1,200명을 대상으로 자신의 체중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물었습니다. 그리고 11년 후 이들의 체질량지수(BMI)와 허리둘레를 조사했습니다. 그 결과 10대 때 스스로 뚱뚱하다고 생각했던 이들 중 여자 59%, 남자 63%가 과체중이 돼 있었습니다.

2. 올 1월 인디펜던트지에 공개된 영국 로열 컬리지 오브 피지션즈 의과대학의 연구 결괍니다.

"뚱뚱하다고 일찍 죽는 건 아니다."

연구팀은 전 세계에서 시행된 100개 연구사례를 분석했습니다. 대상은 총 300만 명이었고 사망자도 27만 명 포함돼 있었습니다. 그 결과 BMI 25~30으로 '과체중'인 사람은 정상체중인 사람에 비해 '일찍 죽을 가능성'이 오히려 6% 적었습니다. BMI가 30~34.9로 '경도비만'인 사람 역시 '일찍 죽을 가능성'이 정상체중인 사람보다 5%가 적었고요. 물론, BMI가 35 이상인 '고도비만'의 경우 '일찍 죽을 가능성'이 29%나 높았습니다. 하지만 저체중 역시 '일찍 죽을 가능성'이 10% 높았습니다.

3. '허벅지 사이 틈' 현상을 다룬 CNN 보도에 등장한 심리학·의학 전문가의 조언입니다.

"'허벅지 사이 틈'은 특이한 골격 구조를 가진 이들만 가능한데, 건강하면서 자연적으로 이런 골격 구조를 가진 이들은 매우 드뭅니다."
"'허벅지 사이 틈'에 대한 강박은 무리한 다이어트나 운동으로 거식증 같은 질병을 일으킬 수 있습니다."
"거식증은 집중 치료가 필요한 매우 심각한 심리적·의학적 질병입니다."
(그러니까 한마디로!)
"허벅지는 서 있을 때 붙어야 '좋은'(good)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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