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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오랑우탄' 비난에 '바나나' 투척까지…

이탈리아 첫 흑인장관 인종차별 논란

[취재파일] '오랑우탄' 비난에 '바나나' 투척까지…

*이름: 세실 키엥게
*나이: 48세
*직업: 이탈리아 국민통합부 장관


     여기까지는 특별할 게 없습니다.
하지만 이 한 가지 조건 때문에, 키엥게 장관은 갖가지 수모를 겪고 있습니다.

** 출신지: 콩고

     지난 4월 처음 생긴 ‘국민통합 장관’에 임명된 세실 키엥게는 ‘이탈리아의 첫 흑인 장관’이라는 타이틀을 갖고 있습니다. 1964년 콩고에서 태어난 키엥게 장관은 1983년 이탈리아 유학길에 올랐습니다. 의대 졸업 후 안과의사가 됐고, 이탈리아 남성과 결혼해 두 자녀를 두고 있습니다. 지난 2002년, 문화적 차이를 이해하고 상호 이해를 돕기 위한 단체를 설립했고, 이민자들의 시민권 취득 조건 완화 운동을 펴오고 있습니다. 새정부 출범과 함께 ‘국민통합부’를 맡기에 이보다 적절한 사람은 없어 보입니다.

     키엥게 장관은 그러나 취임 직후부터 극심한 인종차별에 시달리고 있습니다. ‘콩고의 원숭이’,’반 이탈리아적인 흑인’이라는 비난인데요, 공격의 주체는 이민에 반대하는 우파들입니다. 우파 ‘북부 연맹’ 소속의 로베르토 칼데롤리 상원 부의장은, “키엥게를 보면 오랑우탄이 떠오른다”는 발언을 했습니다. 이 ‘망언’에 대해 비난 여론이 들끓고, ‘북부 연맹’에 칼데롤리를 제명하라는 요구가 빗발쳤습니다. 그러나 칼데롤리 의원은 사퇴 요구를 묵살했고, ‘북부 연맹’측도 별다른 조치를 취하지 않았습니다. ‘북부 연맹’의 마리오 보르게지오 의원은 라디오에 출연해 “키엥게 장관은 정부의 장관이라기 보다는 ‘가정부’처럼 생겼다”고 말했습니다. 심지어 ‘북부 연맹’의 한 지역 정치인은 아프리카 여성이 성폭행 당한 사건이 발생하자, “피해자들의 고통을 이해하기 위해, 키엥게 장관도 성폭행당해야 한다.”는 망발을 하기도 했습니다.(이 정치인은 이후 집행유예와 공직 일시 정지 처분을 받았습니다.) 이쯤 되면 ‘북부 연맹’의 성향을 대략 알 만 하지요.

     키엥게 장관에 대한 인종차별에 대해 이탈리아 내에서 ‘미국의 KKK를 연상시킨다’, ‘나라 망신이다’는 비난이 나오는가 하면, 우파들은 ‘장관을 하려면 콩고에 가서 하라’는 주장을 펴며 공방이 이어지던 중, 지난 주말 사건 하나가 더 발생했습니다. 키엥게 장관이 연설을 하고 있는데, 청중 한 명이 무대로 바나나를 던진 겁니다. 키엥게 장관은 다행히 바나나를 피했지만, 바나나를 던진 용의자는 곧바로 현장을 빠져나가 붙잡히지 않았습니다. 바나나 투척 사건 직전에는, 극우 정치집단인 포르자 누오바가 키엥게 장관의 연설 장소에 피를 묻힌 마네킹을 갖다 놓기도 했습니다.

     키엥게 장관은 일련의 인종차별적 사건에 대해 직접적인 비난을 자제하고 침착히 대응하고 있습니다. 오랑우탄이라고 말한 칼데롤리 의원의 사과를 받아들였고, “정치인은 책임있는 발언을 하라”고 지적했습니다. 또 “나는 흑인이고, 흑인이라는 점이 자랑스럽다. 이 점을 강조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밝혔습니다.

*** ‘흑인 장관’공격, 왜 이 지경까지?

     극우파들의 주장은 키엥게 장관이 이민을 부추긴다는 겁니다. 콩고 출신이 이탈리아에 와서 장관을 하는 것도 마땅치 않는데다, 키엥게 장관이 추진하고 있는 법안도 우파에겐 못마땅한 거죠. 현재 이탈리아는 부모가 이탈리아인일 경우, 자녀에게도 이탈리아 국적을 주는 식의 국적법을 적용하고 있습니다. 이탈리아 부모가 이탈리아 아닌 다른 나라에서 아이를 낳아도 그 아이는 이탈리아 국적을 갖게 됩니다. 키엥게 장관은 이를 ‘이탈리아에서 태어나면 이탈리아인’으로 바꾸는 법안 마련을 추진하고 있습니다.
타임지 보도에 따르면, 이탈리아는 1991년, 100명 중 한 명이던 이민자가 지금은 12명 중 한 명으로 늘었습니다. 키엥게 장관처럼 전문직으로 자리잡은 경우도 있지만, 대부분은 이탈리아인들이 기피하는 힘든 일들을 도맡아 하고 있습니다. 또 상당수의 이민자 어린이들이 거리에서 모욕적 발언을 듣고, 학교에서 무시당하고, 상점에서 도둑으로 오인받고, 식당에 출입을 거부당한다고 합니다.  이탈리아의 유명 축구선수인 마리오 발로텔리(아래 사진)조차도 가나 출신의 흑인이라는 이유로 경기장에서 인종 비하적인 구호를 들어야 할 정도로, 이탈리아의 인종 차별은 심각한 수준이라고 타임지는 지적합니다.
조지현 취파

     키엥게 장관의 수난을 보며 마음이 편치 않습니다. 한국의 상황도 크게 나은 것 같지 않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우리도 ‘백인’들 입장에서는 ‘유색인종’이지요.)
이달 초 정부가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한국에 사는 외국인은 145만명, 다문화 가정 자녀는 19만명이 넘습니다. 2020년엔 국내 청소년의 20%가 다문화가정 자녀일 것으로 교과부는 예상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아직도 많은 다문화 가정 어린이들이(특히 유색인종일수록) 사회적 편견에 시달리고, 차별을 받고 있습니다.  우리 또한 한국판 ‘세실 키엥게’ 장관이 나왔을 때, 이탈리아같은 ‘망언’, ‘돌발행동’없이 사회 구성원 모두가 열린마음으로 받아들일 수 있을까요.
 
    이탈리아가 진짜 변화하고 싶으면, 키엥게 장관에게 예산도 변변히 배정되지 않은 신생부처의 장관만 맡겨 놓을 게 아니라, 의원들이 키엥게 장관의 법안을 지지해 행동으로 변화를 보여줘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습니다. 키엥게 장관을 ‘정치적으로 뒷받침’하려는 노력이 이어지는지 지켜봐야 한다는 거죠. 우리 또한 키엥게 장관 말처럼 ‘변화에 대한 용기와 낙관’을 갖추고 있는지 돌아볼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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