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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결혼하느니 차라리 죽음을" 11살 예멘 소녀의 절규

[취재파일] "결혼하느니 차라리 죽음을" 11살 예멘 소녀의 절규
 안녕하세요 SBS 시청자 여러분. 국제부 정윤식입니다. 국제부에서 마주하는 세계 여러 곳의 소식들을 SBS 뉴스와 인터넷을 통해 전해드리고 있습니다. 오늘부터는 취재파일을 통해서도 흥미롭고 유익한 국제 소식들을 전해드리겠습니다.

11살 예멘 소녀의 절규

 
국제부에서는 미국 CNN 방송이나 AP 통신 등 외신 뉴스를 보고 듣는 것과 더불어 유튜브에 올라오는 동영상도 꾸준히 모니터링을 하고 있습니다. 트위터 등 SNS와 마찬가지로 유튜브에도 세계 각지의 소식들이 빠르게 올라오기 때문입니다.

 며칠 전 유튜브 영상들을 보고 있던 중 한 소녀의 모습이 담긴 동영상이 눈을 사로잡았습니다. 카메라를 정면으로 바라보면서 무언가 말하고 있는 동영상인데 눈빛이 보통 예사롭지 않았습니다. 당차고 야무지면서 고집도 있어 보이는 눈빛. 3분도 안 되는 짧은 영상이었지만 쉽게 눈을 떼기 어려웠습니다.

 소녀의 이름은 나다 알 아달. 중동 지역 국가인 예멘에서 살고 있는 올해로 11살이 된 소녀입니다. 나다는 얼마 전 강제로 한 남성에게 시집 보내졌습니다. 사우디라아비아의 한 남성으로부터 돈을 받고 부모가 강제로 결혼을 시킨 겁니다. 유튜브 영상에는 나다의 분노와 경고, 세상을 향한 절박한 호소가 담겨있습니다. 중동미디어연구소의 이름으로 올라온 이 동영상에서 나다는 "강제로 결혼시키면 죽어버리겠다"고 말했습니다. 가장 인상적인 부분은 2분 50초 동안 카메라를 응시하며 자신이 하고 싶은 말을 폭포수처럼 뿜어내는 모습이었습니다. 부모와 세상을 향한 분노인지, 조혼(혼인 적령에 이르지 못한 미성년인 연소자가 일찍 혼인하던 풍습)의 위기에서 빠져나온 안도감 때문인지 나다는 마치 1인극에 출연하는 배우처럼 쉴새없이 말을 토해냅니다.

유튜브 링크 : 나다의 인터뷰 동영상

 나다의 모습에 강렬한 인상을 받은 사람이 저 뿐만은 아니었던지 처음 영상을 봤을 때보다 조회수는 폭발적으로 늘었습니다. 제가 이 글을 쓰고있는 현재 이 동영상의 조회수는 700만을 넘기고 있습니다.


  조혼은 아직도 현재진행형

 우리 나라와는 지리와 문화 모두 가깝지 않은 중동의 나라 예멘. 나다의 동영상이 잘 잊혀지지 않아 예멘의 조혼 문화에 대해 찾아보다 보니 역시나 악습은 뿌리가 깊은 법,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었습니다. 17살이 안 된 소녀들을 강제로 결혼시킬 수 없도록 하는 법이 지난 2009년 예멘 의회를 통과한 상태였지만 나다의 사례를 통해서도 알 수 있듯 법은 유명무실한 상황이었습니다

 법이 통과된 배경도 특이했습니다. '조혼금지법'으로 불리는 이 법은 강제로 결혼을 하게 됐던 예멘의 10살 소녀 누즈드가 20살 많은 남편을 상대로 이혼 소송을 벌인 계기로 만들어졌습니다.('10살 이혼녀' 누주드의 이야기는 국내에도 자세히 소개됐고 책으로도 번역돼 있습니다). 예멘 사나대학의 성개발 연구센터 조사에 따르면, 18세 이하 예멘 여성의 52%가 결혼을 한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예멘의 조혼 문화가 이미 사회에 뿌리를 깊게 내리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예멘 보수파들은 결혼 연령을 법으로 규정하는 것이 이슬람 전통 샤리아법에 위배되는 것이라며 지금도 조혼금지법에 반발하고 있습니다. 지난 2009년 법안이 통과될 당시 야당의원 모하메드 알 하즈미는 "우리는 더 어린 여성들의 결혼을 허용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이 아니다. 결혼 시기를 결정하는 것은 이슬람 전통에 따라 어디까지나 가족의 몫이 돼야 하며 이를 법으로 규정해선 안 된다"라고 말했습니다. 하즈미 의원은 또 "결혼 적령기는 특별한 사정이 있을 땐 12살 정도도 가능하겠지만 일반적으로 15살 정도가 적합하며, 새 법안이 철회될 수 있도록 다른 의원들과 연대해 싸워나갈 것"이라고 밝히기도 했습니다. 결국 조혼은 국가가 개입할 문제가 아니며 만약 개입한다고도 해도 15살부터는 결혼해도 괜찮다는 말입니다.

 이슬람과 개도국의 조혼, 해결책은?

 유엔 산하기구인 유엔인구기금(UNFPA)이 지난해 제1회 '세계 소녀의 날'을 맞아 발표한 통계에 따르면 조혼한 여자아이의 절반 가량은 아시아 개도국 출신이며 5분의 1은 사하라 사막 이남의 아프리카 국가 출신입니다. 아시아의 빈민국 방글라데시의 조혼 비율은 66%, 아프리카 니제르는 77%에 달합니다. 유엔인구기금은 최근 중남미와 중동, 동유럽 등에서도 조혼이 증가하고 있다고 우려를 나타냈습니다.

 개도국 소녀들의 경우 조혼 풍습 때문에 제때 교육받을 기회를 박탈당할뿐 아니라 성인 여성보다 쉽게 가정폭력에 노출되는 것으로도 나타났습니다. 또 개도국 10대 여성의 주요 사망 원인 중 하나가 출산과 관련있다는 유엔여성기구(UN Women)의 연구 결과도 나온 바 있습니다. 나다의 나라인 예멘에서는 지난 2009년 12살 소녀가 아이를 낳다가 끔찍한 산통 끝에 사망해 세계적으로도 논란이 됐던 적이 있습니다.

 "조혼이 소녀들의 교육기회와 건강권을 박탈하는 심각한 인권유린 행위"라는 것은 굳이 유엔기구나 해외 언론의 지적이 아니더라도 모두가 아는 사실일 겁니다. 안타까운 건 관련 개도국의 조혼 문화를 없앨 뾰족한 대책이 없다는 겁니다. 이와 관련해 국제인권단체 휴먼라이츠워치(HRW)의 연구원 가우디 반 굴릭은 "각국 정부가 유엔 권고기준인 만 18세 정도로 결혼가능 연령을 법제화해야 하며, 이미 결혼한 소녀들의 인권 개선을 위해 교육기회를 제공해야 한다"고 지적했습니다.

 가난한 나라에서 부모가 돈을 받고 어린 딸을 팔아넘기는 건 우리나라를 비롯해 많은 국가들에서 행해졌던 풍습입니다. 예멘과 같은 세계 최빈국에서 조혼이라는 폐습이 없어지기까지 과연 얼마나 많은 시간이 걸릴지 누구도 예측하기 어려운 것이 사실입니다. 몇 해 전 누즈드가 법원을 상대로 소송을 내고, 이번에는 나다가 유튜브를 통해 당당히 외쳤듯 사회의 굴레와 틀을 깨려는 용기와 노력이 계속 이어진다면 그 시기가 당겨질 수는 있지 않을까 생각됩니다. 우리나라를 비롯해 전 세계 사람들이 이 소녀들의 외침에 관심을 갖는 것도 그 날을 앞당기는 데 보탬이 될 것이라 생각됩니다.

 나다는 현재 예멘 여성보호단체의 보살핌 속에 있습니다. 나다의 삼촌인 아브드 알 살람은 아랍방송 TV 알후라와의 인터뷰에서 "반대파들이 여전히 조혼금지법을 가로막고 있다"며 "나다의 이번 사건이 조혼을 금지하는 데 기여하기를 바란다"고 말했습니다. 또 나다가 부모에게 돌아가지 않겠다고 말하고 있다며 차라리 나다가 이 사건이 가라앉을 때까지 예멘을 잠시라도 떠나있는 게 낫다고 말했습니다. 반대파들이 자신과 나다를 해치겠다고 위협했다는 말도 덧붙였습니다.

유튜브 링크 : 나다의 삼촌 아브드 알 살람과 나다의 인터뷰 음성 동영상

 동영상의 끄트머리에서 나다는 이번 일이 사회적 이슈가 되면서 신변의 위협까지 받고 있는 데 대해 "전혀 두렵지 않다"고 잘라 말했습니다. 그리고 아직도 부모를 용서하지 않고 있다고 덧붙였습니다. 사회의 부조리에 반대하는 입장을 분명히 밝히면서 부모에게도 분노를 감추지 않고 있는 11살 나다의 울분에 가득 찬 표정을 잊을 수 없습니다. 나다의 바람대로 예멘에서 조혼이라는 악습이 하루빨리 사라지길 기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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