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프로그램의 배경은 스웨덴의 작은 섬 고틀란드이다. 고틀란드는 우리나라의 제주도와 비슷한 스웨덴의 휴양지로, 발트해 중간에 놓인 작고 평화로운 곳이다.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의 애니메이션 ‘마녀 배달부 키키’의 배경이기도 한 곳, 고요한 휴양지이기만 할 것 같은 이곳은, 해마다 7월 첫째 주가 되면 스웨덴 전국에서 수십만명이 모여들어 교통편이나 숙박지를 찾을 수 없을 정도로 붐빈다. 바로 ‘알메달렌 위크’라는 행사가 열리기 때문이다.
행사의 이름인 ‘알메달렌’은 고틀란드의 최대 항구인 비스비 시의 중앙 광장 이름을 딴 것인데, 이곳을 중심으로 ‘정치 페스티벌’이 열리는 것이다. 이 정치 박람회는 오늘날 스웨덴을 낳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의 행사라고 평가받고 있다. 이름도 생소한 정치 박람회, 정치 페스티벌이 어떻게 오늘날 스웨덴을 낳았다는 것일까. 대화, 타협, 합의에 익숙치 않으면서도 대화와 타협에 목말라 하는 한국 사회가 혹시라도 이곳에서, 스웨덴 사람들의 모습에서 영감을 얻을 수는 없을까? 이런 질문에서 ‘알메달렌 정치박람회’ 행사를 취재하기로 하고 스웨덴으로 향했다.
이 행사에는 과연 누가 올까? 수상이나 각급 장차관 같은 정치인이나 노조, 기업단체, 전문가들은 물론 대규모로 참석한다. 미디어는 1년 중에 가장 중요한 행사이다. 거리 곳곳에 방송사와 신문사의 스튜디오가 설치돼 있어서 수상이나 장관들은 물론 각 분야의 전문가들이 모두 나서서 방송을 통해 국민들에게 호소하고 싶은 말들을 쏟아낸다. 외신에서나 볼 수 있는 스웨덴의 정치인들이 거리 곳곳을 돌아다니고, 골목 곳곳에 앉아 커피를 마시고 있다. 힐레뷔 엥스트룀 노동장관은 인터뷰 직후 사진 촬영에 응하기도 했다.
스웨덴도 1900년대 초반에는 노사관계가 극도로 나빠, 노조의 파업으로 인해 군대가 시위 노동자들에게 발포하는 일까지 있었다. 그렇지만 1938년, 노사관계가 국가적인 위기 상황에 이르렀다는데 인식을 함께 한 노사, 그리고 정부가 사회적 대타협을 맺은 것이 오늘날 스웨덴 성공 모델의 시작점이다. 사회적 합의의 고전으로 불리우는 이 ‘살트셰바덴 협약’의 핵심은, 노조는 기업의 경영권을 인정하고, 기업은 노조의 파업권을 인정하며, 노사의 분쟁사항은 국가의 개입없이 노사간 자율적인 협의를 통해 해결한다는 것이다. 이후 연대임금정책이나 적극적 노동시장정책 등으로 이어지는 스웨덴의 다양한 노동정책은 국가적 위기 때 마다 극적인 반전을 이뤄냈으며, 특히 90년대 초 연금개혁은 오늘날 스웨덴의 지속적인 경제성장과 복지제도의 안정성에 크게 기여했다. 이 모든 것의 기초에는, ‘알메달렌’으로 구체화한 대화, 타협, 사회적 합의, 참여의 제도화가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노사갈등과 임금체계 개편, 일자리 만들기와 나누기 같은 국가적 이슈들 앞에서, 합의의 방식조차도 서투른 한국은 과연 어떤 사회적 대타협을 이뤄낼 수 있을 것인가. 노동시장 문제는 물론이고 복지제도의 개혁과 연금체계 개편, 세제개편 같은 사안은 강 건너 남의 일이 아니라 바로 나의 일인데, 과연 일반 국민들은 이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을까? 정당, 전문가, 미디어는 과연 자기 역할을 제대로 하고 있는 것인가? 지금 한국의 위기는, 정부나 기업, 노동자들만의 문제가 아닌, 이른바 ‘거버넌스’의 위기가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