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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드리포트] 일본인 레이코씨 이야기

고 이종옥 WHO 총장의 부인은 어떻게 살아가고 있나?

[월드리포트] 일본인 레이코씨 이야기
일본 방송국 중 하나인 'TV 도쿄'에서 방영하는 '세계, 왜 이곳에 일본인이?'라는 프로그램이 있습니다.
세계 각지의 오지에서 활약하는 일본인을 찾아가 그 삶을 엿보는 내용입니다.

지난 방송에 등장한 주인공은 페루의 빈민촌에서 여성들에게 뜨게질을 가르치고 있는 68세의 레이코라는 여성이었습니다. 페루의 빈민촌 중에서도 가장 빈민촌으로 꼽히는 이 지역은 범죄와 강도가 잇따라 페루인조차도 접근하기 싫어하는 낙후된 지역입니다. 이곳에서 아무런 소득이 없었던 페루 여성들을 이끌며 봉사의 삶을 살고 있는 일본인 여성의 모습은 그 자체로도 관심을 끌더군요.

  그런데 이 여성이 어떻게 봉사의 삶을 시작했는지를 보여주는 대목이 예사롭지 않았습니다.

 레이코씨는 일본 상지대학 영문과 재학 당시 계속 머리가 아프다고 호소하는 어머니에게 반찬 투정을 부리곤 했는데 그 며칠 후 어머니가 뇌종양이라는 사실을 알게 됐고 또 어머니가 갑자기 돌아가시면서 충격을 받았다고 합니다. 그 이후 레이코씨는 자신을 자책하게 됐고 봉사를 하면서 한평생을 살아야겠다는 다짐을 했다고 합니다.

 봉사의 첫 대상지로 삼은 나라가 바로 한국. 그녀가 경기도 안양의 나자로 마을에서 나병 환자들을 위한 일을 시작하게 된 이유입니다. 타국에서 생활하던 중 레이코씨는 영양실조에 걸리게 됩니다. 그런 그녀에게 불고기를 먹으러 가자며 데이트를 신청한 동갑내기 한국인 의사가 있었습니다. 그러다가 정이 싹트게 됐고 둘은 결혼을 하게 됩니다.

 젊은 시절 이 부부의 사진이 방송을 통해 소개됐는데 바로 그 한국인 의사가 다름아닌 고 이종옥 WHO 총장이었습니다. 남편이 WHO 총장이 된 뒤 레이코씨는 또 다른 봉사의 길을 떠나게 됩니다. 스위스에서의 편한 생활에 안주하기 싫다는 생각을 남편에게 말했고 고민하던 이종옥 총장이 부인에게 페루를 소개해 주면서 부부가 서로 떨어져 살게 됐다는 것입니다.

 레이코씨는 그러던 중 WHO 총장으로서 눈코 뜰새 없이 바쁜 나날을 보내던 남편이 갑자기 사망한 이유가
자신이 곁에서 챙겨주지 못했기 때문이라며 아직도 자책하고 있었습니다. 레이코씨는 결국 자신이 어머니와 남편을 죽게 만들었다며 방송 인터뷰 도중 눈물을 흘리더군요.

 페루의 한 단칸방에서 생활하면서 봉사활동을 계속하고 있는 레이코씨는 최근 임대한 방에서 쫓겨나게 돼 새로운 거처를 찾아야 하는 등 힘겨운 나날을 보내고 있었습니다. 남편이 WHO 총장을 역임했다는 것이 믿기지 않을 만큼 남루하고 고단한 생활로 보였습니다.

이종옥 총장 부인
 하지만 이종옥 총장이 어떤 분이었는지를 안다면 이해가 되는 부분이기도 합니다. 당시 이종옥 총장은 WHO 총장이라는 지위와는 걸맞지 않게 제네바 외곽 도시인 니용의 작은 아파트에서 검소하게 생활해 화제가 됐습니다. 또 고인은 생전에 돈에는 아무런 욕심이 없다는 점을 분명히 했고 몸소 실천한 분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저도 이종옥 총장과는 작은 인연이 있습니다. 그가 WHO 총장에 선출된 뒤 고국에서 가진 첫 기자회견을 취재했는데 비록 한시간 가량의 짧은 기자회견이었지만 그가 말하는 한마디 한마디에서 그의 인품이 드러났고 정말로 존경할만한 분이라는 생각을 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의 갑작스런 사망 소식을 들었을 때 너무나도 안타까웠고 가슴이 무척 아팠습니다.

 가난하고 병든 사람을 위해 평생을 바쳤던 이종옥 총장과 그가 떠난 뒤에도 홀로 봉사활동을 이어가고 있는 부인 레이코씨. 방송이 끝난 뒤에도 한 부부의 삶은 큰 감동으로 다가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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