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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을' 중의 '을' 하청 노동자

같은 노동자에게마저 외면당하는 그들의 절규

[취재파일] '을' 중의 '을' 하청 노동자
남양유업 사건을 계기로 ‘갑을 관계’가 뜨거운 감자가 됐습니다. 사실 새삼스러울 건 없었습니다. 대한민국 기업문화가 이렇다는 것, 다들 알고 있었으니까요. 하지만 영업 사원이 대리점주에게 퍼부었던 밀어내기 ‘욕설 녹취록’의 여파는 국민들에게 꽤나 충격적으로 다가왔던 모양입니다. 대국민 사과까지 할 정도였으니 말입니다. 그리고 한 달이 지났습니다. 이제 ‘갑을’이란 키워드도 식상해졌고, 분위기도 잠잠해졌습니다.

지난달, 거제에 있는 대우조선해양을 다녀왔습니다. 지난 2월, 19살 하청 노동자인 진 모 씨가 추락해 사망한 사건을 취재하기 위해서였습니다. 이보다 앞서 한 달 전에도 23살 민 모 씨가 선박 블록이 머리 위로 떨어져 숨진 사건이 있던 터였습니다.

대우조선해양을 다녀오고 며칠 뒤, 당진 현대제철소에서 노동자 5명이 떼죽음을 당했습니다. 마무리 정리를 하려고 전로 안으로 들어갔다가 산소 부족으로 숨진 사고였습니다. 지난해 9월부터 9개월 동안 당진 현대제철소에서는 10명의 노동자가 사고로 숨졌습니다. 공통점은 희생자가 모두 하청 노동자였다는 사실입니다. 지난 1월 삼성전자 불산 누출사고, 3월 여수 대림 화학공장 폭발사고, 희생자는 역시 모두 하청 노동자였습니다. 왜 자꾸 이런 일이 생기는 걸까요.

지난달, 8시 뉴스에서 하청 노동자들의 안전에 무관심한 대기업들의 몰양심을 보도해 드렸습니다. 원청 노동자는 쉬운 일을, 하청 노동자들에겐 기피 업무를 할당한다는 사실을요. 하청 노동자의 급여는 원청 노동자의 70~80% 수준이니, 대기업 입장에서는 ‘꿩 먹고 알 먹고’가 되겠지요. 심지어 안전 장비에도 차이를 두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하청 노동자에 대한 안전 교육은 미비했습니다. 하청 노동자에게 안전사고가 집중되는 이유입니다.

그런데, 더 아쉬운 게 있었습니다. 기사로는 보여드리지 못한 부분인데, 하청 노동자들은 원청 노동자들에게조차 외면 받고 있다는 사실이었습니다. 사측이야 그렇다 치더라도, ‘같은’ 현장에서 ‘같은’ 일을 하는 ‘같은’ 노동자인데, 하청 노동자를 바라보는 원청 노동자의 시선은 생각보다 차가웠습니다. 물론 모든 원청 노동자들이 그렇지는 않겠지만, 상당수는 ‘하청 노동자들에 대한 차별은 당연하다’, 혹은 ‘불가피하다’란 생각을 갖고 있는 듯 보였습니다.

하청 노동자, 그리고 원청 노동자들과 나누었던 이야기를 그대로 옮겨보겠습니다. 녹음된 녹취록을 토씨 하나 틀리지 않게 그대로 풀겠습니다. 단, 어법에 맞지 않는 부분은 맥락에 맞게 약간 수정했고, 장비의 문제로 녹음이 되지 않은 부분을 보충해 추가했습니다.
거제 추락사 관련

우선, 하청 노동자들에게 지난 2월 대우해양조선에 있었던 진 씨의 추락사고 얘기부터 꺼냈습니다. 19살, 고등학교 졸업을 앞두고 있었던 진 씨는 입사 2주차 새내기 직장인이었습니다. 그런데, 사고 직후 회사에서는 이런 뜬소문이 돌았습니다.

하청 : (사고가 나면) 자살했다 뭐 이런 이야기, 우울증이 있다 걔가 평소에 좀 이상하더라 이런 식의 이야기가 나와요.
기자 : 이번에도 그랬나요?
하청 : 네. 나는 그 애가 그렇게 정신과 쪽으로 조금 문제가 있다, 그런 이야기 들었어요. 말이 좀 무성하게 돌아요. 항상 보면 자살하려고 했다, 등등.


정말 그랬는지, 원청 노동자들에게 물어봤습니다. 진 씨도 잘못한 게 있다고 말을 합니다.

원청 : 그 날도 마찬가지였어요. 사고 난 날도. 사고 난 날도 이 작업이 이뤄지는데 위험하니까 여기서 대기하고 있어라. 나중에 여기 다 앉혀지고 나면 너 불러가지고 다른 일 시킬 테니까 기다리고 있어. 기다리고 있으라고 그 장소까지 지정을 해줬는데, 이 친구가 이제 자기 혼자 그쪽으로 이동을 해가지고 그 사고가 일어났던 거죠.
기자 : 임무가 없었다고요?
원청 : 아르바이트생을 뭘 시킬 겁니까. 아무것도 안 시켰어요. 너 거기 있어라 했는데 왜 거기 가서 떨어지냐 이거죠. 거기까지 가서 5미터 6미터 가가지고. 상식적으로 이해가 안 가는 사고들이 많아요, 사실은.


더 놀라웠던 건 그 다음이었습니다.

원청 : 그 친구가 아마 홀어머니 밑에서 자랐어요. 그래서 어려서부터 혼자 살았는데 아마 그게 명절 직전이었을 거예요. 아마, 이 사고가.
기자 : 어렵게 사셨나 보죠?
원청 : 그랬죠. 그러니까. (망설이다가) 요즘 생계형 자살이 얼마나 많습니까. 안 그래요?
기자 : 아니, 선생님, 아무리 그래도 고인한테 그러시면 안 되죠.
원청 : 진짜 그런 일이 얼마나 많은데요. 기자님은 험하게 일하는 데 몰라요. 그런 말이 괜히 나오는 게 아니에요.


우리가 뉴스에 보면, 노동자들은 단결해 사측에 임금 협상을 하고, 근로 환경 개선을 요구하고, 정리 해고에 저항하며, 이게 안 되면 파업으로 맞섭니다. 그런데, 쟁의의 전제라 할 수 있는 ‘노동자 단결’에서, 하청 노동자들은 ‘열외’였습니다.

사망 사고야 그렇다 치죠. 자주 발생하는 일은 아니니까요. (물론 선진국에 비하면 수십 배에 달합니다만.) 다쳤을 때는 어떨까요. 하청 노동자는 산재의 혜택을 제대로 받고 있을까요.

하청 : 제가 무거운 케이블을 딱 들려고 하는 순간에, 케이블은 이렇게 딱딱한 쇳덩어리가 아니니까, 반동을 주면서 드는데요, 어깨로 매면서. 뒤에 파이프 기둥이 하나 있었어요. 뒤에 부딪쳐서 엉덩방아를 찧고 주저앉았습니다. 허리가 아프다고 병원 가야 된다고 사무실에 가니까 소장이 하는 말이, “남들은 안 다치고 일 잘 하는데 왜 너는 다쳐?” 이런 식으로 얘기를 하는 거예요.
기자 : 어떻게 처리하셨어요?
하청 : 회사에 이야기해서 산재까지는 아니어도 공상이라도 해야 될 거 아닙니까. 끝내 공상처리도 안 했어요. 자비로 처리를 한 거죠.
기자 : 왜요?
하청 : 다치면 안 되니까요. 하청은 대부분 계약직인데, 산재처리하고 공상처리하고 그런 직원 고용하고 싶겠어요? 잘리기 십상이지.


이 때문일까요. 대규모 제조업체 안에는 혹시 모를 안전사고 때문에 병원이 있는데, 환자는 대부분 원청 노동자라고 합니다. 하청 노동자들이 열악한 환경에서 일하고 있고, 그만큼 더 사고도 많을 수밖에 없을 텐데 말입니다.

하청 : 안에 병원이 있거든요. 물리치료를 하거나, 허리가 삐끗하거나 일하다가 무리했거나 그러면 물리치료 받는데 가면은 하청 노동자 한사람도 없습니다. 하청은 산재 거의 꿈도 못 꾸는 거죠. 그 정도 인거죠. 억수로 큰 사고도 내가 아는 사건만 해도 그 사람은 팔이 부러졌는데요. 뼈가 튀어나온 거거든요. 그런데 그 사람을 산재처리 못했어요.

원청 노동자들에게 하청 노동자의 열악한 현실을 이야기 해봤습니다. 하지만 돌아오는 답변은 예상 밖이었습니다. 이 답변에는 원청 노동자들이 하청 노동자를 바라보는 시각이 단적으로 나타나 있었습니다.

원청 : 고등학교 졸업하잖아요. 다 대학 가는 건 아니지 않습니까. 다 서울대 안 가잖아요. 좀 잘하는 사람은 서울대 가고, 공부 열심히 하는 사람은. 공부 못하면 지방대 가고. 여기도 마찬가집니다.

이렇게 볼 수도 있겠습니다. 같이 삭막한 작업환경에 일하는 동료지만, 너와 나는 출신 성분이 다른 일종의 ‘구분 짓기’ 같은 것. 하지만 원청 노동자들에게 돌을 던지고 싶지 않습니다. 원청과 하청 노동자를 벌려 놓을 수밖에 없는, 자본주의의 날 것 그대로의 모습이 그대로 투영돼 있기 때문입니다.

대기업 입장에서 정규직 노동자들은 눈엣가시입니다. 노조 만들어서 걸핏하면 임금 올려 달라, 복지 개선하라, 말도 많고 때론 파업까지 하며 실력행사까지 하니까요. 그저 ‘경영 훼방꾼’일 뿐인 거죠. 이런 상황에서 하청 노동자는 꽤 쏠쏠한 대안입니다. 월급도 적게 줘도 되고, 조금만 마음에 안 들어도 계약 해지를 하면 그만이니 너무나 편한 거죠. 이제 답이 나옵니다. 대기업은 점점 하청 노동자 비율을 늘려나갑니다. 이 회사의 경우 2001년 직영대비 하청 비율은 91.8%였는데, 매년 증가해 2011년 214.5%에 달했습니다. 정규직, 그러니까 원청 노동자의 자리가 위태롭습니다. 하청 비율 늘리는 회사도 밉지만, 점점 자리 꿰차고 들어오는 하청 노동자도 원망스럽습니다. 조금씩 사이는 벌어집니다.
하청업체 캡쳐_50

이런 보이지 않는 갈등 속에서 득을 보는 건 누구일까요. 결국 승자는 ‘대기업’입니다. 노동자 간의 단결도 막고, 마음에 안 들면 잘라버리면 그만이고, 정말 편해지는 겁니다. 임금도 원청 노동자에 비해 헐값이니 영업이익도 쏠쏠해 집니다. 실제 이 회사의 영업이익은 2001년 2923억에서 2011년 1조 1186억으로 4배 가까이 급증했습니다.

하청 : 노동자들이 기본적으로 노동조합을 건설할 수 있는 자기권리를 주장할 수 있는 이런 게 있어줘야 되는데, 이런 게 없으니까 더 그런 거죠. 원청은 노동조합이 있고 그렇기 때문에 기본적인 법률 산업안전보건법 기본적인 건 지키는 거죠. 어느 정도. 근데 하청은 그런 구조가 아닌 거죠. 그래서 (대기업은) 하청제도를 더 하려고 하는 거고, 더 많은 인원을 뽑는 거고, 노동자들이 죽어나가든지 말든지 이윤만 뽑으면 된다는 게 대기업의 입장인거죠.

이런 상황에 대해, 대기업은 뭐라고 말을 할까요. 이번엔 대기업 관계자와의 대화 내용을 옮겨 봅니다.

대기업 : 요즘 불황이에요. 비용 줄이려고 하청 쓰는 거고, 회사 입장에서. 사실 그게 그렇게 지탄 받을 일은 아니잖아요.
기자 : 그거야 그렇지만, 그래도 사회적인 책무가 있잖아요. 노동자들 덕에 돈 버는 건데, 그래도 잘 챙겨주셔야죠. 특히 안전문제는.
대기업 : 알죠, 사회적 책무. 그런데, 일단 기업이 살아야 노동자도 사는 거고. 기업이 돈을 벌어야 우리가 월급도 줄 수 있고. 그런데 요즘 너무 어려워요. 하청 비율 늘릴 수밖에 없어요. 너무 하청 노동자들 눈물 질질 짜는 사연 얘기만 듣지 마시고요. 그 사람들 무지 감정적이라서. 좀 객관적으로 (기사를) 쓰셔야 해요. 사회적으로 뭐가 더 이익이 되는 건지 생각해 주세요. 우리 회사 어려워지면 노동자들도 다 어려워져요. 그 땐 하청이든, 원청이든, 정규직이든, 비정규직이든 다 실업자 되는 거에요.


이익, 이윤, 비용…. 논리를 관통하는 줄기는 결국 다 돈, 그놈의 돈입니다. 많이 벌면 되지, 그것보다 뭐가 더 중요하냔 식이죠. 천민자본주의. 말만 하면 논리적으로 반박하는 게 경제적 이익이니, 이쯤 되면 더 이상 토론을 진행할 수가 없습니다. ‘돈’과 ‘비용’으로 반박하면 ‘설득력 있다’고 생각하는 우리 시대의 철학이 안타까울 따름입니다.

하지만 사람보다 더 중요한 게 뭐가 있을까요. 다쳐도 다쳤다고 말을 하기도 어렵다던데, 죽어서도 원래 정신적으로 문제가 있었다고 수군거리며 두 번 죽이고 있다는데, 그래서 좀 생각 좀 해보자는데, 뭐가 문제인 걸까요. 노동자들 열심히 일해 대기업 배 불렸으니 하청 노동자들 사람답게 일할 수 있는 방법 좀 강구해보자는데, 왜 이윤 얘기가 나오고 비용 얘기를 하는 걸까요. 영업이익이 1조가 넘는 회사에서 그거 얼마나 든다고, 얼마나 아끼겠다고 그러는 걸까요. 설령, 돈이 많이 들어도 다 살자고 하는 일인데, 당연히 돈 좀 써야하는 것 아닐까요.

회사가 있어서 내가 있는 게 아니라, 내가 있어서 회사가 있다는 게 선진국의 ‘철학’입니다. 단 한 명의 하청 노동자라도 안전사고가 나면 원청 업체에 수억 원의 벌금을 물게 하고 원청 업체 책임자가 형사처벌까지 받는 게 선진국의 ‘제도’입니다. 안전 비용 지출하면 회사 어려워진다는 논리가 시대의 철학이 되고, 하청 노동자가 떼죽음을 당해도 고작해야 벌금 몇 천 만원 물면 모든 게 끝나버리는 대한민국은, 아무리 생각해도 선진국은 아닌 것 같습니다. 마무리는 한 하청 노동자의 절규로 갈음합니다.
 
하청 : 하청제도 원인이, 우리를 인간 취급을 안 한다고 보는 거거든요. 하청제도가 아주 교묘하게 노동자들 단결도 막고 있는 거고, 그런 거 아닙니까. 인간으로서 기본적으로 가져야 할 감정, 이것마저도 억압하는 현장이거든요. 사람답게 살고 싶다는데, 왜 그것마저도 안되는 겁니까. 왜 그것마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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