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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줄줄 새는 '아파트 관리비'…투명성 높인다

[취재파일] 줄줄 새는 '아파트 관리비'…투명성 높인다
부동산 분야를 맡고 있습니다만, 제가 개인적으로 가장 싫어하는 취재가 '아파트' 관련 취재입니다. 일단 잘 해도 욕 먹고, 못하면 더 욕 먹거든요.

예를 들어 이런 식입니다. 문제를 제보하는 쪽이 있습니다. 적극적으로 취재에 협조해 주십니다. 이분들은 보통 문제를 알려 해결을 하거나, 언론 보도를 활용해 건설사를 압박하는 등 문제 해결에 적극적인 분들입니다. 반대편 분들은 집값이 떨어 질까봐 일단 언론에 노출되는 것 자체를 꺼리는 분들입니다. (물론 일반화 할 수는 없지만요) 양쪽으로부터 욕을 먹는 이유는 이렇습니다. 일단 양쪽의 이야기를 다 듣고 기사를 쓰다 보니, 세세한 이야기를 다 담을 수가 없고, 시청자가 공감하기 어려울 정도로 소소한 내용을 추리다보니 짧아집니다. 또 여러 세대가 사는 사유재산이니 노출을 원치 않는 주민들을 고려해 아파트명이 직접적으로 노출되는 경우는 많지 않습니다. 이렇게 되면 제보해주신 분들은 '누구의 압력을 받은 게 아니냐. 어째 기사에 아파트 이름이 안 나가냐' 항의를 하십니다. 반대편에서는 '모자이크 처리를 해도 알아보는 사람이 있으니 아파트 영상을 인터넷 기사에서 삭제를 해 달라. 집값이 떨어지면 니가 책임 져라'로 마무리 됩니다. 기자생활 6년 간 받았던 내용증명 서류보다 , 부동산 담당하는 5개월 동안 받은 내용증명이 더 많네요. 오늘도 어제 아파트 보도로 반나절 전화 통화를 하다보니 마음이 안 좋아 서론이 길어졌습니다.

저는 아주 어렸을 때 이후로 아파트라는 공간에서 살아보지 않아서 처음에는 좀 놀랐습니다. 같은 아파트 주민들끼리 이렇게까지 감정의 골이 깊은 이유는 무엇일까? 입주자대표회의파니, 비상대책위원회파니 왜 이렇게 나뉘고, 법정에까지 서게 되는 걸까. 우리나라 국민 60%가 사는 아파트. 이 안에서 나오는 눈먼 돈이 너무나 많기 때문입니다. 온갖 비리의 온상이면서도 오히려 규제가 어려운 곳이 바로 우리가 살고 있는 아파트였습니다.

아파트 사시는 분들은 매달 고지서를 받으시겠지만, '관리비'가 있습니다. 몇 만원에서 많게는 몇 십만 원이죠. 항목은 경비비, 청소비, 승강기 등 각종 유지비가 있을 것이고요, 아파트 공용시설이 고장 났을 때를 대비한 수리비, 각종 추가 시설 설치비 등이 포함된 것이지요. 물론 한 가구당으로 따지자면 얼마 안 될 수도 있지만 수천 세대가 사는 아파트 전체로 따지자면 그 규모는 엄청납니다. 정부는 연간 전국의 아파트 관리비와 장기수선충당금 규모를 10조원 규모로 파악하고 있습니다. 어마어마하죠.
[12단]

아파트 관리비를 집행하는 주체는 아파트 입주자대표회의라는 조직입니다. 각 동에서 대표를 선출하고 그 가운데 대표와 감사가 선출이 되는데, 이 대표회의가 아파트 관리 위탁업체 선정, 시설물 설치 업체 선정, 관리소 직원의 인사권 등에 막대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지요. 이렇다 보니 아파트 대표를 선출하는 선거분쟁이 끊이지 않고 있습니다. 실제로 아파트 관리비 등 관련 민원은 서울시를 기준으로 2007년 1,245건에서 지난해 4,503건으로 5년 동안 3.6배 늘었고, 이 가운데 절반이 대표선출과 관련된 민원이었습니다. 소송으로 번진 사례도 늘어 아파트 관리비 소송건수는 2010년 2520건에서 2011년 2840건, 2012년 3080건으로 매년 늘고 있는 실정입니다. 

이런 관리비 집행과 관련된 각종 비리와 분쟁을 해소하기 위해 정부가 대책을 내 놨습니다. 국토교통부가 제시한 ‘아파트 관리제도 개선 대책’ 내용은 이렇습니다.

우선 관리소장을 비롯해 관리주체의 관리비 사용 비리를 막기 위해 상시적 감시체계를 마련합니다. 현재는 입주자대표회의가 요청하는 경우에만 외부 회계감사를 실시했지만, 이제는 300가구 이상의 단지는 정기 외부 회계감사를 실시하도록 한 겁니다.

또 징수·사용한 회계서류를 5년 이상 보관하지 않고, 임의로 폐기하는 경우에는 과태료를 부과하고, 비리가 집중되고 있는 아파트 공사·용역은 관리소장이 입주민에게 공사·용역 계약서를 공개하도록 했습니다.
비리가 집중된 외부 용역 계약의 경우, 수의계약처럼 악용되고 있는 지명경쟁 입찰 기준을 강화하고, 뒷돈 거래 등의 부정행위에 대한 처벌도 2배 강화합니다. 또 입주자대표회의 구성을 위한 선거관리위원회도 감독 대상에 포함, 선출 단계부터 공정성을 확보하기로 했습니다.
국토부는 대책이 조기에 가시화될 수 있도록 개정안을 6월 중 국회에 제출하고 시행령 개정사항도 추진할 방침입니다.

뒤늦은 감이 있지만, 정부의 대책마련이 관리비 비리 해결에 도움이 될 것으로 봅니다. 하지만, 처벌 규정을 만드는 것 보다, 관리감독에 한계가 있는 만큼, 예방 차원의 견제 시스템을 구축하는 것이 전제돼야 하지 않나 생각합니다. 취재하면서 만난 입주민들의 상당 수가 관리비에 대해 무관심한 분들이었습니다. 내가 내는 관리비가 제대로 쓰이는지 관심을 갖는 것도 정책변화만큼 중요해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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