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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국회 본회의장에 울려 퍼진 ‘임을 위한 행진곡’

어젯 밤(7일) 국회 본회의장에는 광주 망월동을 지역구로 하는 민주당 강기정 의원의 노래 소리가 울려 퍼졌습니다. 사랑도 명예도 이름도 남김없이, 한 평생 나가자던 뜨거운 맹세…투박한 강기정 의원의 노래 소리는 본회의장 구석구석 퍼져 나갔습니다. 음악 반주도 없는, 가수처럼 잘 부르지는 못하는 솜씨였지만 가슴에서 우러나온 노래 소리에 본회의장은 곧 차분하고 숙연해 졌습니다. 앞서서 나가니 산 자여 따르라, 앞서서 나가니 산 자여 따르자.

1982년 2월 어느 날 광주 망월동 묘지에서는 영혼 결혼식이 있었습니다. 신랑은 1980년 광주 민주화 운동 당시 시민군 대변인을 하다 그 해 5월 27일 계엄군의 마지막 작전 때 도청에서 사망한 윤상원 열사였고, 신부는 1978년 광주에서 들불 야학 운동을 하다 연탄 가스 중독으로 숨을 거둔 박기순이라는 대학생이었습니다. 이 영혼 결혼식 때 하객들이 불렀던 노래가 바로 ‘임을 위한 행진곡’이었습니다.

‘임을 위한 행진곡’은 백기완 선생의 시 ‘묏비나리’에서 가사를 따와 작가 황석영씨와 작곡가 김종률씨가 만든 곡이었습니다. 서슬 퍼렀던 80년대 군사정권 시절에는 당연히 금지곡이었습니다. 하지만 사람들의 입에서 입으로 퍼진 이 노래는 광주 민주화 운동의 상징적 노래로 불렸습니다.

임을 위한 행진곡
당시 이 노래를 만들었던 작가 황석영씨와 작곡가 김종률씨는 ‘부끄럽고 죄송해서 이 곡을 만들었다’고 했습니다. 투쟁을 위한 선동 가요로 만든 게 아니고, 가사에서 처럼 동지는 간데 없고 산 자가 그것을 추모하고 정신을 이어가겠다는 뜻으로….

‘임을 위한 행진곡’은 프랑스 혁명을 배경으로 한 뮤지컬 ‘레미제라블’의 ‘empty chairs at empty tables'과 너무 비슷합니다. 뮤지컬에서 장발장의 도움으로 살아남은 마리우스는 혁명을 함께 주도하다 죽어 간 친구들을 생각하며 술집의 빈 테이블과 빈 의자들을 보며 노래합니다. 친구들와 함께 내일을 얘기했던 추억, 혁명의 열정을 태웠던 그 때, 하지만 그 친구들은 이제 죽고 없는 이 텅 빈 자리에 혼자 살아 남은 그의 슬픔을 절절히 노래합니다. 말 할 수 없는 고통과 그리움 그리고 미안함을….

** 뮤지컬 '레미제라블‘의 뮤지컬 넘버 ’empty chairs at empty tables'입니다.
http://www.youtube.com/watch?v=hSzHAOkCDNU

살아 남은 자들의 슬픔과 미안함을 담은 '임을 위한 행진곡‘은 뮤지컬 ’레미제라블‘처럼 문화의 힘으로 전파되지는 못했습니다. 하지만 혹독한 시절 노래 자체의 끈질긴 생명력으로 다시 선배에서 후배에게로, 친구에서 친구로, 이 사람에게서 저 사람에게로 가슴에서 가슴으로 그렇게 은은히 전해졌습니다.

그리고 김대중 정부가 들어서면서 ‘임을 위한 행진곡’을 광주 민주 항쟁 기념식에서 많은 시민들은 그 노래를 당당히 합창했습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시민들과 함께 ‘임을 위한 행진곡’을 같이 부르기도 했습니다. ‘임을 위한 행진곡’은 5.18이 국가 기념일 된 1997년부터 2008년까지 정부가 지정한 공식 추모곡은 아니었지만 당연히, 지극히 당연하게 5.18을 상징하는 노래로서 합창되었습니다.
5.18
하지만 이명박 정부가 들어서서는 다 함께 부르는 ‘임을 위한 행진곡’을 광주 민주 항쟁 기념식 공식 행사가 아니라 식전 행사에서 제창하게만 하더니 급기야는 흥겨운 ‘방아타령’ 연주로 ‘임을 위한 행진곡’을 대체하려다 큰 반발에 부딪치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지난 2011년과 2012년에는 다 함께 부르는 제창이 아니라 합창단이 부르는 곡으로만 불렸습니다.

박근혜 정부가 들어서고 첫 5.18 광주 민주 항쟁 기념식이 열립니다. 강기정 의원은 박근혜 정부가 ‘임을 위한 행진곡’을 부르지 못하게 해서 5.18 정신을 지우려 하고 있다면서 안타까움을 토로했습니다. 강기정 의원은 국가 보훈처가 ‘임을 위한 행진곡’을 대체할 다른 공식 추모곡을 만들려고 하는 움직임이 있다면서 정부의 행태를 비판했습니다.  

강기정 의원은 박근혜 대통령에게 5.18 광주 민주화 운동 33주년 기념식에 참가해서 ‘임을 위한 행진곡’을 함께 부르자고 제안했습니다. 그리고 그것이 국민 통합이고 그것이 바로 역사 바로 세우기라면서 5월 18일 광주 망월동에서 기다리겠다고 말했습니다. 강기정 의원의 절절했던 5분 발언은 마이크가 꺼지면서 끝이 났습니다. 그리고 국회 의장석을 향해 인사하고 자리로 돌아갔습니다.

5월 18일 민주당 김한길 대표, 무소속 안철수 의원은 광주 민주화 운동 기념식에 참석할 예정입니다. 과연 박근혜 대통령은 강기정 의원의 제안에 응답해 대통령으로 참석할까요? 그리고 시민들이 31년 동안 광주 민주 항쟁의 상징처럼 불렀던 ‘임을 위한 행진곡’을 함께 노래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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