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론 라면을 끓여달라는 요구는 받아들일 수 있습니다. 문제는 그 전후에 있었던 상식 밖의 행동들입니다. 항공사를 통해 확인해보니, 대기업 임원은 이륙 후 안전벨트를 채워 달라는 승무원의 요구에 불응했고, 안전을 위해 필요한 행동들을 불편하다는 이유로 거부했습니다. 그리고선 밥이 설익었다, 라면이 덜익었다, 라면이 짜다. 그러고도 마음에 안들었는지, 서비스를 한 승무원에게 잡지를 돌돌말아 눈 주위를 툭툭 치며 제대로 하라고 지적한겁니다.
취재를 위해 또다른 승무원의 이야기를 들어봤습니다. 자신의 동료는 한 승객에게 "발을 닦아라"는 요구까지 들었다고 합니다. 메뉴에 없는 '비빔밥'을 만들어 달라고도 하고 아이에게 줄 장난감을 구해달라며 윽박지르는 경우도 있다고 합니다. 없는 음식을 만들수도, 없는 장난감을 만들수도 없으니 당황스러울 수밖에 없는거죠.
백화점 화장품 코너에서 일하는 점원 얘기는 더 심합니다. 다 쓴 화장품을 가져와 교환해달라고 소리를 치고, 안된다고 설명하면 사장을 나오라고 하고, 설명도 안듣고 소리치는 경우가 허다하다고 합니다. 따귀를 때리기도 하고 백화점 한가운데서 무릎을 꿇는 경우도 있다고 하니 거짓말 같은 이야기죠.
유럽이 경우 직무스트레스를 제조업과 서비스업에 광범위하게 적용해 산업재해로 인정하고 있습니다. 일본에선 이른바 '진상고객'에 대해 백화점 차원에서 따로 관리를 하며 정기적으로 '점원을 방해하는 행위로 처벌을 받을 수 있다'는 내용의 편지를 보낸다고 합니다.
정신질환이나 우울증을 산업재해로 포함시킨다는 내용의 법안은 이미 지난해 10월 한 의원에 의해 발의됐습니다. 현재는 심의조차 못하고 계류중인 상태입니다. 정책적인 방어막이 절실하지만, 이들을 마치 수족부리듯 대하는 고객들의 인식 또한 바껴야할겁니다. 해외 사례처럼 이른바 진상 고객을 특별 관리하는 기업의 노력도 병행되야 합니다. 진상 임원과 사표, 반짝 관심으로 끝낼 문제는 아닙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