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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요즘 같은 세상에 '국제부' 기자로 산다는 것은…

[취재파일] 요즘 같은 세상에 '국제부' 기자로 산다는 것은…
한동안 보도제작부에 있다가 지난 해 9월에 데일리뉴스를 다루는 부서로 복귀했습니다. 국제부에서 근무하기 시작한지 석달 반이 조금 넘었군요. 어디 가서 "요즘 국제부에 있다."고 말하면 대부분 "모처럼 '고상한 일' 하겠네?" 합니다. 기자치고는 독특하게 현장에 직접 나갈 일이 많지 않은 부서인데다 '국제'라는 이름이 주는 느낌 탓도 좀 있겠죠. 국제부 근무가 처음이라 저도 은근히 '고상한' 삶을 기대했지만, 막상 일을 해 보니 현실은 정 반대더군요.

지난 석달 동안 제가 쓴 기사들은 주로 이런 것들입니다: 전쟁, 지진, 홍수, 총기 난사, 민간인 학살, 권력투쟁, 영토분쟁.... 한마디로 대부분 피비린내 나고, 잔인하고, 안타깝고, 걱정스러운 것들이죠. 스케일도 보통 큰 게 아닙니다. "어디어디서 자살 폭탄테러로 3명이 숨졌다." 정도면 "3명? 그래서?" 하기 일쑵니다. 모름지기 뉴스란, '이슬람' '테러리스트들'이 '전세계' '십여개국'의 '인질' '수십명'을 붙잡고 총질하는 상황쯤은 돼야 "일 좀 났네." 싶어지는 거죠. 언젠가 들었던 말이 요즘처럼 실감난 적이 예전엔 정말 없었습니다: "지구가 생긴 이래, 어딘가에서 누군가 서로 총칼을 겨누고 전쟁을 벌이지 않은 날은 단 하루도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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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오늘 사이에 들어온 소식들만 해도, 내란 중인 시리아에선 정부군이 민간인에게 무차별 총질을 하고 불을 질러서 백명 넘는 사람이 죽었습니다. 대부분 힘 없는 여성과 아이들입니다. 반군을 잡는다는 게 이유였습니다. 알제리에선 테러리스트 잡겠다며 정부군이 헬기를 동원해서 마구잡이로 총을 쐈습니다. 아직 정확한 집계조차 나오지 않고 있지만, 테러리스트 숫자보다 두 배 가까운 민간인 인질들이 함께 목숨을 잃었다고 합니다. 센카쿠인지 댜오위다오인지를 놓고 일본과 으르렁거리고 있는 중국은 공대공 미사일을 탑재한 전투기까지 동원해서 실탄훈련을 벌였다는군요. 그 와중에, 지난달에 '총기난사' 사건으로 초등학생 스무명이 살해됐던  미국에선 이런 일도 있었습니다. 일곱살 초등학생이 권총을 들고 학교에 갔답니다. 당연히 학교가 폐쇄되고 경찰이 학교 전체를 수색하고 난리가 났죠.

온종일 이런 뉴스들만 읽고 쓰고 만들면서 석달을 보내다보니 요즘 좀 두려운 생각이 듭니다. 국제부 기자로 지내다보면 생명의 존엄성이나 인권에 대한 감수성이 무뎌지지나 않을까 싶어서 말이죠.

사실, 사람들끼리 총질하지 않아도 지구촌 곳곳엔 걱정할 일이 참 많습니다. 오늘만 해도, 미국에서 주춤해진 인플루엔자가 어느새 아시아로 넘어왔는지 베이징에서 아까운 사람 목숨을 앗아갔습니다. 호주오픈 테니스대회가 한창인 멜버른은 연일 40도에 육박하는 폭염으로 찜통입니다. 제가 좋아하는 페더러가 땡볕에서 공 따라다니느라 헐떡거리는 걸 보면 얼마나 마음이 아픈지 모릅니다. 심지어 시드니는 오늘 최고기온이 무려 45.8도였습니다. 역사상 최고 기온입니다. 인도네시아는 홍수 때문에 이재민만 수십만 명이 생겼고, 규모 5를 넘나드는 강진은 하루 걸러 한 번 씩 지구촌 곳곳을 흔들고 있습니다.

전염병, 기상이변, 자연재해 등등 지구촌 사람들이 모두 머리를 맞대고 애써도 해결하기 힘든 난제들이 말 그대로 산더미인데, 사람들은 대체 언제쯤 서로 쌈질해 대는 걸 멈출까요? 그런 날이 과연 올 수 있을까요? 그렇게만 된다면 밖에서 오해하시는대로 '국제부' 기자들도 좀 '고상해' 질 수 있을텐데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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