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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거짓말은 모든 것을 망친다

기자를 상대할 때 꼭 생각해야 할 첫번째 원칙

[취재파일] 거짓말은 모든 것을 망친다
“절대 거짓말하지 말고 절대 은폐하지 마라. 도덕적인 이유 때문만 아니라 실제로도 그게 낫기 때문이다”

미국에서 NBC 방송 기자를 했고 포드 대통령 때 백악관 대변인을 지냈던 론 네슨이라는 분이 꼽은 ‘소통 잘하는 비결 10 가지’ 가운데 첫 번째 대목입니다. 다시 말씀드리지만, 첫. 번. 째. 대목입니다. 가장 중요한 덕목이란 이야기겠죠. 네슨 대변인은 이렇게 설명을 덧붙였습니다.

" ‘은폐는 늘 본래의 실수보다 더 큰 말썽에 빠지게 만든다’는 것이 기본 원칙이다. 숨기려 했다는 사실은 숨기려 했던 내용보다 훨씬 큰 타격을 주고, 미래의 신용을 깎는다."

이 이야기는 아마 어느 누구에게나 해당되는 이야기지 싶습니다. 기자를 만나게 될 때 역시 그렇습니다. 좋은 일로 만나면 좋겠지만, 사실 기자와 만나는 일은 나쁜 일이 훨씬 더 많다보니 거짓말을 하고 싶은 충동이 들 수 있습니다.

그래서 기자짓을 오래 할 수록 심해지는 직업병이 바로 '의심병'입니다. 짧은 시간 안에 그런 이야기들을 여기저기서 듣고 진실을 가려내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계속 "이 말이 사실일까"를 되묻게 됩니다. 진실일 수도 있고, 진실이 아닌데 진실이라도 굳게 믿고 말하는 경우도 있고, 실제로 거짓말을 하는 것일 수도 있습니다. 기자 월급은 그걸 걸러내라고 주는 것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란 생각까지 합니다.

기자로서 그래서 가장 고마운 사람이 '거짓말 하지 않는 사람'입니다. 몇 년 전 정부 부처에 출입할 때 만났던 한 고위 공직자가 그랬습니다. 아주 민감한 질문이 들어와도 거짓말을 하거나 피하지 않았습니다. 할 수 있는 데까지는 답변을 해주고 본인의 권한을 벗어나는 부분에 대해서는 "대답할 수 없다"고 명확히 답해줍니다. 지켜보면 틀린 말이 없습니다. 그리고 왜 그 부분은 대답할 수 없었는지 이해가 됩니다. 그러면 기자도 사람인데, 미안하기도 하고 고맙기도 하고, 신뢰가 쌓일 수 밖에 없죠. 그렇게 쌓인 신뢰는 서로에게 좋은 결과로 돌아옵니다. 당국자도 믿는 기자에게 기사를 안 쓸 것이라 믿고 말할 수 없었던 배경을 좀 더 설명해주고, 기자도 기사를 쓰지 않는다는 약속을 지키면서도 그 배경을 이해하고 좀 더 정확하고 좋은 기사를 쓸 수 있게 되는 겁니다.

그런데 반대 사람들도 항상 있게 마련입니다. 최근 한 식품업체 담당자를 처음 만나 인사를 나눴습니다. "인상 요인도 있고 하니까 곧 제품값을 올리시겠죠?"라고 물었더니 "아직 계획이 없어요. 다른 업체들 동향도 좀 봐야죠. 한참 있어야 할 겁니다"라고 대답하더군요. 그런데 이틀 뒤 기사가 하나 떴습니다. 이 회사가 제품값을 이미 일주일 전에 올렸다는 겁니다. 그러면 저를 만난 시점엔 이미 가격은 올라 있었지만, 거짓말을 했던 겁니다.

왜 그랬을까요. 모르겠습니다. 그 분은 당장 '가격 인상'기사가 나가는건 막았는지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제일 중요한, 제 신뢰는 잃었습니다. 제가 앞으로 그 담당자가 하는 말을 믿을 수 있을까요? '의심병'은 더 심해질 겁니다. 그리고 어떤 기사를 쓰더라도 약간 삐딱해질 가능성도 높아집니다. 서로 불행해 지는 것이죠.

차라리 이러는게 낫습니다. 최근 어떤 기업의 오너에게 문제가 있다는 사실을 알고 확인 차 홍보팀에 전화를 했습니다. 그래서 여차저차 문제가 있다 하니 오너에게 사실을 확인해 달라고 물었습니다. 알아보겠다고 하더군요. 그리고 5분 뒤, 다시 전화를 거니 전화기가 꺼져 있습니다. 이것도 하나의 대응법입니다. 거짓말은 안 했거든요. "내 수준에서 대응하기 힘들다"는 무언의 메시지라고 읽었습니다. 다른 방법으로 사실은 확인하고는, 그 홍보 담당에게는 수고하셨다고 메시지를 남겼습니다.

마지막으로 한 가지, 관청이나 기업 내부에 계신 분들에게도 드리고 싶은 말씀이 있습니다. 문제가 생겼을 때 홍보 담당자에게만은 솔직하게 털어 놓으시라는 것이죠. 사실을 모르는 홍보 담당자만큼 황당한 사람도 없습니다. 그런 홍보 담당자를 상대해야 하는 기자도 마찬가지가 되고요. 그 결과 대중에게 나가는 기사가 어떻게 씌여질지는 안 봐도 뻔합니다. 호미로 막을 것 가래로 막는 것도 모자라서 포크레인 등장하는 수가 생깁니다.

그러니 절대, 절대, 거짓말을 하지 않으셨으면 좋겠습니다. 거짓말은 모든 것을 망치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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