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SBS 뉴스 상단 메뉴

[취재파일] 장미란의 '숨겨진 아픔'

[취재파일] 장미란의 '숨겨진 아픔'
‘여자 헤라클라스’로 불리며 한 시대를 풍미했던 장미란이 은퇴를 선언했다. 지난 2년 동안 계속된 부상으로 훈련조차 힘들었던 장미란으로서는 어찌보면 당연한 결정이다. 사실 장미란에게는 런던 올림픽 출전 자체도 무리였다. 몸과 마음이 너무 아팠다. 그런데 참았고, 그 아픔을 올림픽이 끝날 때까지 외부에 알리지 않았다. 장미란이 숨기려 했던 아픔은 무엇이었는지... 또 왜 참아야 했는지 뒷얘기를 하고자 한다.

아~ 교통사고!
지난해 4월 아시아 역도 선수권을 취재하기 위해 평택에 갔다가 장미란 선수의 아버지 장호철씨와 점심식사를 같이 했다. 올림픽을 앞두고 장미란의 몸 상태가 어떤지 물었다. 아버지는 “그 때 교통사고만 아니었으면...”하며 한숨부터 쉬었다.
장미란이 2010년 1월 당한 교통사고를 말한 것이다. 당시 장미란은 승용차 뒷자석에 타고 있었는데 승합차가 뒤에서 들이 받았다. 역도연맹은 경미한 접촉사고였다며, 장미란은 곧바로 병원에서 퇴원했고 별 부상도 없다고 발표했다.
그런데 아버지의 말은 달랐다. 꽤 큰 사고였다. 그 사고 이후 한 동안 목을 돌리지도 못했고, 목 디스크가 갈수록 심해져 제대로 훈련한 적이 별로 없다고 했다. 장미란은 바벨을 들었을 때 왼쪽으로 기울어지는 버릇이 있었다. 왼쪽 어깨 근육이 오른쪽 보다 약했기 때문인데, 교통사고 이후 이 기울기는 더 심해 졌다. 왼쪽 어깨에 계속 무리가 갔지만, 장미란은 바벨을 놓지 안았다. 2010년 세계선수권에서 2위를 차지했고, 광저우 아시안게임에서는 금메달을 목에 걸며 그랜드슬램을 달성했다. 여기까지였다. 몸상태는 점점 악화됐고, 훈련량은 점차 줄었다.
장미란 아버지에게 이런 내용을 기사로 써도 좋은지 물었더니, “미란이가 알면 큰 일 난다. 절대 말 못하게 한다. 그냥 알고만 있어라.”고 했다. 장미란은 “사고 내신 분에게 폐를 끼칠 것 같아서 외부에 알리지 않았다.”고 나중에 말했다.
이미지

바벨 보다 무거웠던 ‘비인기 종목’의 무게
올림픽을 50여일 앞둔 지난해 5월 29일 장미란의 훈련을 취재하기 위해 고양시 장미란체육관을 찾았다. 그 날은 고양시장이 장미란을 격려 방문하는 자리였다. 장미란은 평소 훈련을 잘 공개하지 않는다. 기자들이 몰리면 다른 선수들에게 방해가 된다며 조용히 훈련해 왔다.  그런데 이번엔  고양시장 방문을 하는 틈을 타 훈련 취재를 허락받았고, 고양시장이 방문하기 2시간 전에 체육관에 도착했다.
장미란은 체육관 구석에서 김순희 코치와 함께 바벨과 싸우고 있었다. 몸살에 걸린 상태였다. 코는 막히고 목소리가 잠겨 있는 최악의 상황에서도 기합소리를 내며 땀을 뻘뻘 흘렸다. 아직 몸상태가 정상이 아니어서 바벨을 가슴까지만 올리고 앉았다 일어 섰다를 반복하고 있었다. 보통 역도 선수들은 큰 대회를 두 달 정도 앞두고 본격적으로 무게를 끌어올리기 시작한다. 그런데, 장미란은 올림픽을 코앞에 두고 무게를 올리기는 커녕 연습용 바벨조차 머리 위로 올리지 못하는 상태였다. 걱정스런 마음에 장미란에게 물었다. “몸 상태가 안 좋아 보이는데, 좀 어때요?” 장미란은, “안 좋아도 해야 돼요.”하며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 몸살이 심해 1주일 넘게 운동을 못한 상태라고 했다.

훈련이 끝난 뒤 인터뷰를 요청했는데, 장미란은 “자신이 몸살에 시달린다는 사실을 알리고 싶지 않다”며 완강히 거절했다. 그러던 중 고양시장 일행이 도착했다. 장미란에게 악수의 손길이 이어졌다. 고양시장 일행은 장미란을 격려하고 기념사진도 찍으며 10여분 정도를 체육관에 머물다 떠났다. 때 마침 다른 언론사들이 대거 몰리면서 공식 인터뷰가 성사됐다. 장미란은 잠시 시간을 달라고 하더니 잠긴 목을 가다듬기 시작했다. 차도 마셔 보고, 큰 기침도 해 가면서 최대한 괜찮은 상태로 인터뷰에 응했다. 대신 감기 걸렸다는 내용은 절대 묻지 말아달라고 했다.
장미란은 인터뷰 내내 미소를 지으며 ”메달 색깔 보다는 제가 목표로 했던 기록을 달성하고 싶다.“고 했다. 사정을 모르는 일부 기자들은 ”목표한 기록이 세계 신기록이냐?“며 되물었지만, 장미란은 ”나중에 말씀드리겠다.”며 즉답을 피했다.
인터뷰가 끝난 뒤 장미란에게 물었다. “왜 몸상태가 좋지 않다는 걸 숨기나? 밖에서는 장미란이 금메달 따는 줄 알고 있다. 지금 상태를 미리 알려야 최선을 다한다는 의미가 살지 않겠느냐?”고... 그러자 장미란은, “국민들의 기대를 지금 무너뜨리는 건 도리가 아닌 것 같다. 또 지금 내 몸이 안 좋은 걸 알게 되면 올림픽에서 역도에 대한 관심이 더 떨어지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장미란은 인터뷰 때 마다 “한국 역도 많이 사랑해주세요.”라는 말을 빠뜨리지 않았다.“ 누구보다 ‘비인기 종목’ 역도를 알리기 위해 노력했고, 항상 막중한 책임감을 안고 훈련해 왔다. 런던 올림픽에서도 역도에 대한 관심을 끝가지 유지하고 싶었다. 그래서 자신의 몸은 만신창이었어도 약한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이미지

올림픽에서 메달을 놓친 뒤 장미란은 “제가 목표했던 기록은 연습때 기록이었다. 나는 그것을 들었다. 다른 선수가 잘했기 때문에 내가 메달을 놓친 것이다. 아쉽지만 후회는 없다.”며 눈물을 흘렸다. 모든 게 끝난 뒤 그녀는 오래도록 참고 숨겨왔던 아픔에 대해 눈물로 말하고 있었다.

올림픽이 끝난 뒤 장미란은 마음속으로 이미 은퇴를 결심했을 것이다. 하지만 한국 역도를 위해 은퇴라는 말을 쉽게 꺼낼 수 없었을 것이다. “국내에서는 아직 최강인 만큼 태극마크를 달고 인천아시안게임을 뛰는 게 어떻겠냐?”는 주변의 권유도 있었다.
장미란은 2013년 새해를 맞아 은퇴를 결심했다. 비록 바벨은 내려 놓았지만, 그 동안 짊어졌던 무거운 책임감까지 내려놓지는 않을 것이다.
장미란은 한국역도를 위해 이젠 숨김없이 더 앞으로 나설 것이라고 확신한다.  
Copyright Ⓒ SBS.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재배포 및 AI학습 이용 금지

스브스프리미엄

스브스프리미엄이란?

    많이 본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