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SBS 뉴스 상단 메뉴

[취재파일] 용문사의 ‘신데렐라‘ 해림이의 도전

[취재파일] 용문사의 ‘신데렐라‘ 해림이의 도전
지난 달 14일 미국 콜로라도에서 열린 북미컵 스노보드 평행대회전에서는 이변이 일어났다. 세계랭킹 134위에 불과했던 한국의 17살 소녀 정해림이 세계랭킹 1위인 스위스의 패트리자 쿠머를 제치고 1, 2차대회를 석권한 것이다. 한국 선수가 국제 스노보드 대회에서 우승한 것은 지난해 3월 US 레볼루션 하프파이프에서 김호준이 우승한 이후 처음이다. 2회 연속 우승은 정해림이 최초다. 이변을 넘어 기적에 가까운 쾌거였다.

정해림은 경기도 양평의 천년고찰 용문사에서 가족과 함께 1년 넘게 생활하고 있다. 17세 소녀가 산사에서 한국스노보드의 신화를 쓰기까지 눈물겹고도 애절했던 도전기를 소개한다.

8개월 만에 태어난 딸...국가대표가 되다!

정해림은 1995년 12월 16일 경기도 수원에서 태어났다. 엄마 뱃속에서 8개월 만에 태어난 해림이는 몸이 허약했다. 군장교 출신으로 운동을 좋아했던 아빠 정성엽씨는 해림이를 강하게 키웠다. 매일 함께 운동하며 딸의 건강을 챙겼다. 초등학교 2학년 때 아빠를 따라 스노보드를 처음 접한 해림이는 특출한 재능을 보였다. ‘신동’ 소리를 들으며 초등학교 5학년때부터 본격적인 선수생활을 시작했고, 각종 국내대회에서 두각을 나타낸 끝에 고등학교(군포 수리고) 1학년 때 국가대표에 뽑혔다.

평범한 군인 집안에서 비용이 많이 드는 스노보드 선수 생활은 쉽지 않았다. 다른 선수들이 수백 만 원대의 고급 보드를 탈 때 해림이는 20~30만원짜리 일반인용 보드를 타야했고, 다른 선수들이 1년에 20여개 국제 대회에 출전할 때 해림이는 경비가 모자라 10개 대회 남짓 출전할 수 밖에 없었다. 그래도 누구보다 가능성이 큰 유망주였다. 

집을 잃고...용문사로 가다
이미지
해림이 동생 유림이도 스노보드 선수다. 중학교 2학년인 유림이도 지난 해 초 국가대표에 뽑힐 정도로 촉망받는 선수다. 두 딸의 뒷바라지를 위해 아빠는 군복을 벗고 가구 사업에 뛰어 들었다. 그런데 지난 2011년 10월 사업이 부도가 나면서 빚더미에 앉게 됐고, 결국 집까지 내주고 말았다. 갈 곳 잃은 해림이 가족은 용문사 절간에 새 둥지를 틀었다. 용문사는 스노보드 애호가로 유명한 호산스님이 주지로 있는 곳이다. ‘보드 타는 스님’으로 불리는 호산스님은 스노보드 자매 해림이와 유림이에게 거처할 곳을 마련해 줬다. 해림이 엄마에겐 용문사에서 총무로 일을 할 수 있게 해 줬다. 가세가 기우는 동안에도 해림이는 선수생활을 지속했지만, 경비 문제로 국제대회 출전횟수는 더 줄어들었다. 결국 규정 포인트를 채우지 못해 국가대표가 된지 1년 만에 태극마크를 반납해야 했다.

산사에서 별을 쏘다!

산사 생활은 해림이에게 낯설기만 했다. 새벽 4시에 일어나 예불을 드려야 했고, 밤이면 칠흑같은 어둠 속에서 잠 못이루는 날도 많았다. 해림이는 이를 악물었다. 매일 아침 산을 뛰며 하체를 단련시켰고, 스님들의 도움으로 명상을 통해 마음을 다잡았다. 지난 해 초 스노보드 용품업체 ‘버즈런‘의 모기업인 경동제약에서 4천만원을 후원하면서 해림이는 다시 기회를 잡았다. 미국 콜로라도로 전지훈련을 떠나 자취생활을 하며 훈련에 매진했다. 그리고 국제 스노보드 대회를 연속 제패하면서 대형 사고(?)를 쳤다. 

비인기 종목의 설움...필사적인 소치의 꿈!

한국 스노보드 역사를 바꾼 정해림은 아직 국가대표가 아니다. 두 번의 우승으로 세계랭킹을 134위에서 21위까지 끌어 올렸지만, 내년 3월 국가대표 선발 때까지 기다려야 태극마크를 달수 있다. 그동안 많은 국제대회가 있지만 대한스키협회에서 어떤 지원도 받지 못한다. 지난 해 후원했던 경동제약도 비인기종목 선수에 대한 투자를 망설이고 있다. 누구보다 기대를 모으고 있지만, 누구도 선뜻 지원하려 하지 않는다. 이런 악조건 속에 정해림은 오는 17일 세계스노보드선수권에 출전한다. 

정해림이 출전하는 평행대회전은 두 명의 선수가 기문이 꽂힌 슬로프를 누가 먼저 내려오는지 겨루는 경기다. 순발력과 정신력이 중요해 체격이 작은 아시아 선수도 해볼만한 종목으로 꼽힌다. 2002년 솔트레이크시티 올림픽부터 정식종목으로 채택돼 역사가 짧다. 그래서 국제연맹 등록선수는 아직 600여명 뿐이다. 충분히 한국 선수, 특히 정해림이라면 경쟁력을 가질 수 있는 이유다. 항상 빙상만 바라보며 달려온 한국 동계스포츠계에 희망을 던지고 있는 것이다.

정해림은 우승의 원동력을 묻는 질문에 “항상 이 대회가 마지막일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하니까, 필사적이 되더라구요...”라며 웃는다. 어린 나이에 자칫 상처가 될 수도 있는 힘겨운 환경 속에서도 참 해맑다. 정해림은 소치를 향해...또 평창을 향해 이렇게 필사적으로 도전을 이어가고 있다. 용문사의 ‘신데렐라’를 꿈꾸며...

[영상토크] 용문산 정해림, 세계 정상에 오르다!  
Copyright Ⓒ SBS.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재배포 및 AI학습 이용 금지

스브스프리미엄

스브스프리미엄이란?

    많이 본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