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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920g, 1300g, 1310g 세 쌍둥이, 희망을 쏘다

[취재파일] 920g, 1300g, 1310g 세 쌍둥이, 희망을 쏘다
미숙아. 우리말로 순화하면 이른둥이입니다. 엄마 뱃속에서 있어야 할 기간을 채우지 못하고 서둘러 세상으로 나오는 바람에 몸이 갸냘픈 것은 물론, 성치 못한 곳도 많은 아기들입니다. 그런데 이런 아기들이 늘었답니다. 1993년 만 532명이었는데, 2011년에는 24,647명으로 20년 사이 33%가 증가한 겁니다. 특히 몸무게가 1.5킬로그램도 되지 않는 극소 저체중아가 929명에서 2,935명으로 눈에 띄게 늘었습니다. 33%증가가 뭐가 대수냐, 생각하시는 분들 계실 수도 있겠지만 출생하는 아이들이 계속 줄고 있는 현실에서 미숙아 비중이 늘어난다는 것은 큰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왜 늘었을까요. 전문가들은 결혼 연령이 늦어지다보니 아이를 낳는 연령대가 높아지고, 난임으로 인공임신술을 많이 하는 현실에서 원인을 찾고 있습니다. 결혼을 늦게 하는 분위기가 하루 아침에 바뀌는 것도 아니니까 미숙아도 당분간 줄어들 것 같지는 않아 보입니다.

이런저런 생각속에 어렵사리 미숙아를 낳게 된 가정과 연락이 닿았습니다. 기자 생활 하면서 난이도 높은 섭외가 많았지만, 이번 취재 역시 쉽지는 않았습니다. 미숙아를 낳는 게 죄도 아닌데 대부분의 어머니들이 '내 잘못 때문에 아기가 일찍 나왔다'는 생각으로 죄책감을 느끼거나, 아니면 일찍 나온 아기가 몸 상태가 안좋아 이야기를 나눌 겨를조차 없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더 흔쾌히 취재를 허락해주신 가정에 감사함을 느끼며 부리나케 취재에 나섰습니다.

세 쌍둥이는 모두 미숙아였습니다. 30주하고도 5일만에 세상에 나온 세 남매. 첫째가 920g, 둘째가 1300g, 셋째가 1310g. 세 쌍둥이의 몸무게를 다 더해야 정상적으로 10달을 채우고 태어난 아이의 몸무게와 비슷하다니..차를 타고 가는 내내 이런 저런 걱정이 됐지만 쌍둥이네 집 문을 열고 들어가는 순간 천사같은 아기들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때마침 아기들이 분유를 먹는 시간이라 한 명은 외할머니 품에, 한 명은 엄마 품에, 또 다른 한 명은 이모 품에 안겨 있었는데 '예쁘다'는 말이 절로 나왔습니다. 베란다에 커다란 봉지째 쌓여 있는 기저기 600개, 세 명 모두 누울 수 있는 침대도 보였습니다. 그제서야 '아, 세 쌍둥이네 집이 맞구나' 실감이 났습니다.

세 쌍둥이가 실컷 먹고 편하게 잠이 든 사이에 어머니와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어머니는 인공수정으로 세 쌍둥이를 갖게 됐다고 하셨습니다. 본인도 세 쌍둥이로 자란 터라, 처음에는 세 쌍둥이를 가졌다는 사실이 놀라우면서도 많은 걱정을 했다고 하시더라고요. 고비는 임신 7개월에 찾아왔습니다. 아침에 일어났는데 양수로 새 이불이 축축해진 겁니다. 급히 서울 병원으로 올라와 어떻게든 아기들을 좀 더 뱃 속에 있게 하려고 애를 썼지만, 결국 낳을 수 밖에 없었습니다.

너무 일찍 나오다보니 인큐베이터는 당연한 일이었습니다. 세 쌍둥이 모두 인큐베이터에서 지내는 시간 동안 부모님의 마음은 어땠을까요? 세 쌍둥이의 아버지께서 신생아 중환자실에 들어갈 때마다 휴대전화로 촬영한 영상을 보면, 자그마한 몸에 이거저거 붙이고 누워있는 쌍둥이들에게 "우리딸~, 우리 아들"하며 여러번 부르는 목소리가 담겨 있습니다. 그 말 한마디에 세 쌍둥이에 대한 아버지의 마음이 고스란히 전해져 뭉클하기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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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행히 세 쌍둥이는 50일 가까운 인큐베이터 생활을 마치고 따뜻한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세 쌍둥이들을 퇴원시키는 데 들어간 비용은 천만 원을 훌쩍 넘긴 상황. 다행히 정부가 미숙아 초기 진료비를 지원해 주는 제도를 실행하고 있기 때문에 상당부분 돌려받을 수 있지만, 그렇다고 모든 걱정이 다 사라지는 건 아닙니다.

세 쌍둥이 가운데 첫째와 둘째는 심방중격결손이 있는 상태라 3개월마다 추적 검사를 해야합니다. 둘째와 셋째는 뇌실 내 출혈이 있기 때문에 안정되는 것을 확인할 때까지 1-2주 간격의 검사가 필요합니다. 하지만 초기 진료비를 지원 받고 난 이후에 생기는 재 입원은 지원대상에서 제외되기 때문에 이 부분은 고스란히 세 쌍둥이네 부모님의 몫이 될 수 밖에 없습니다.

그래도 건강하다면야 이 부분도 긍정적으로 받아들일 수 있겠죠. 하지만, 미숙아로 태어난 아기 중에서는 크면서 장애가 생기는 일도 종종 있습니다. 제가 만난 6살 서령이가 그랬습니다. 29주만에 태어난 서령이는 신생아 중환자실에서 3개월 정도 입원해 있다가 퇴원했는데, 당시만 해도 머리에 큰 이상은 발견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서령이가 커가면서 몸 전체를 사용해서 기어간다거나 한 쪽 방향만 본다거나 하는 등 발달이 정상적으로 되지 않았고, 병원에서 백질연화증이라는 진단을 받았습니다.

그 이후 서령이 어머니의 삶은 사라졌습니다. 서령이의 재활치료를 위해 지금도 병원에서 살다시피 하는데도 마음에 비해 회복은 더디기만 합니다. 고생을 하더라도 아이가 마음껏 재활치료를 받을 수 있는 환경이라도 만들어져 있으면 위안이라도 될텐데, 현실은 한참 동떨어져 있는 것도 어머니를 힘들게 합니다. 집 가까운 재활치료소에서 선생님과 유기적으로 치료를 받는다면 회복이 빠르겠지만, 워낙 재활전문기관이 부족하다보니 속도도 느리고, 어머니도 지칠 수 밖에 없습니다.

돈도 큰 문제입니다. 물리적인 재활치료는 건강보험이 적용되는 게 많지만, 아이의 지적 발달을 돕는 언어나 미술 치료 등은 지원에서 제외됩니다. 가격이라도 싸면 좋겠지만 대학병원의 경우 언어치료가 1회에 5만원을 넘으니 매일매일 집중적으로 치료를 받는 다는 것은 정말 있는 집에서만 가능한 일입니다.

'아름다운 재단'에서 미숙아들을 위해 입원치료비와 재활치료비를 지원하는 사업을 하는 등 민간차원에서 뜻 있는 지원이 이뤄지고는 있지만 기부금으로 지원하다보니 필요한 대상에 비해 지원 범위와 금액이 부족한 게 사실입니다.

보건복지부를 출입하면서 가장 고민되는 일 중에 하나는 지원해야할 대상에 비해 돈이 언제나 부족하다는 점입니다. 바꿔 말하면 모두 다 지원을 할 수 없는 현실속에서 어떻게 지원을 하는게 가장 효과적인지에 대한 답을 내리기가 쉽지 않습니다. 아마 미숙아 초기 진료비를 지원하면 됐지, 그 이후까지 국가가 무조건 책임을 져야하냐는 의견을 가지신 분들도 있을 겁니다.

그래도 아기를 낳고 잘 기르는 것만큼 중요한 게 또 있을까요. 미숙아도 치료만 잘 받으면 얼마든지 건강한 사회 구성원이 될 수 있습니다. 조금씩이라도 지원을 확대해나가는 게 나라의 미래를 건강히 하는 일은 아닐지...제 짧은 생각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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