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SBS 뉴스 상단 메뉴

[취재파일] 이스라엘엔 '팔풍'이 있다

가자사태로 바라본 이스라엘 보수세력의 위기대응

[취재파일] 이스라엘엔 '팔풍'이 있다
서구 열강과 이스라엘 민족의 이해만을 고려한 채 역내 현실을 무시한 비정상적이고 폭력적인  이스라엘의 국가 탄생 과정, 이로 인한 팔레스타인 국가 건설의 좌절과 아랍인들의 배신감, 이후 야훼의 땅을 되찾겠다며 계속되고 있는 이스라엘의 끊임없는 무력시위와 정착촌 건설, 그리고 팔레스타인의 무장투쟁으로 꼬일대로 꼬인 이-팔 분쟁의 역사는 반 세기 넘게 계속돼 온 국제정치의 최대 현안입니다.

사실 이스라엘이 끊임없이 팔레스타인 영토에 유대인 정착촌을 건설하고 테러리스트 제거를 명분으로 공습을 반복하면서 무장정파인 하마스는 늘 로켓포와 기관포 등을 동원한 소규모 공격으로 대응해 왔습니다. 이번 가자사태의 발단이 된 최근의 교전도 이런 일상적인 수준을 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이스라엘의 대응은 상상의 범위를 넘어서고 있습니다.

>> 이스라엘은 왜 가자지구를 초토화시켰나?
이미지
이스라엘은 목표인물의 표정까지 포착해 내는 광학센서를 단 첨단 타무즈 미사일을 동원하고 서울 면적의 절반 밖에 안되는 가자지구 수백 곳을 폭격해 초토화시켰습니다. 군함까지 동원하고 지상군 수만 명을 가자 주변 지역에 배치해 전면적인 지상전을 저울질 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은 이런 강경책이 이스라엘 국민을 위태롭게 하는 무장정파 하마스의 로켓 공격을 뿌리뽑기 위한 것이라고 강변하고 있지만 이런 로켓 공격도 이스라엘의 강경책이 초래한 측면이 강해 오히려 폭력의 악순환을 부추길 뿐이라는 비판이 고조되고 있습니다.

이런 변명보다는 이스라엘의 네타냐후 정부가 처한 국내 정치적 현실이 이번 공격을 부추겼다는 분석이 훨씬 더 설득력이 있습니다. 지난 해 아랍권을 휩쓴 ‘아랍의 봄’, 시민혁명은 이스라엘 국내에도 엄청난 변화를 가져 왔습니다. 지난 해부터 지금까지 이스라엘 전역에선 집값과 물가 폭등, 실업난 등에 항의하는 시민들의 저항이 계속되면서 보수정권의 기반이 크게 흔들리고 있습니다.

국내엔 잘 알려져 있지 않지만 이스라엘의 경제구조는 한국과 놀라울 정도로 비슷합니다. 10대 재벌이 전체 경제의 절반을 장악할 정도로 경제력 집중과 사회적 불평등이 심각해졌고, 이런 소수 재벌의 이해를 대변해 온 보수적인 네타냐후 정권에 대한 시민들의 비판과 저항이 조직화하면서 지난 해엔 성난 민심을 달래기 위해 금산분리 등 일부 재벌 개혁 조치를 내놓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이미 네타냐후 정부에 등을 돌린 민심은 돌아서지 않았고, 이 여파로 극우 유대교 정당과의 보수 연정이 붕괴돼 내년 1월 총선을 치뤄 재집권에 대한 국민의 선택을 받아야 하는 절박한 상황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보수적 표심을 자극하고 사회적 불만을 언론의 렌즈 밖으로 밀어내는 가장 효율적인 수단은 바로 ‘전쟁’이며, 그 대상은 당연히 가장 가까운 적 팔레스타인이 될 수 밖에 없었다는 것입니다. 네타냐후 총리는 이전에도 선거를 앞두고 팔레스타인에 대한 무력 시위와 군사 작전을 강화해 온 전력이 여러 번 있습니다. 팔레스타인과의 교전 과정에서 실제로 적의 로켓포가 머리 위로 떨어지거나 공중요격 당하는 모습을 수도 없이 목격하는 이스라엘 국민들에게 생사를 가르는 전쟁의 공포가 다른 여타의 사회적 불만을 압도하는 건 당연한 것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오는 29일 유엔 총회에서 팔레스타인의 옵저버 국가 승인 문제가 표결되는 등 이스라엘에겐 달갑지 않은 변화들이 예정돼 있습니다. 팔레스타인 국가 건설을 양 당사자간의 협상으로 해결해야 한다는 논리로 시간을 끌어 온 이스라엘로선 곤혹스런 상황이라 어떻게든 팔레스타인을 자신들과의 협상테이블로 끌어내기 위해 공격을 감행했다는 분석도 있습니다. 하지만 이는 이집트의 중재로 양측간의 협상이 이미 모색 중이던 상황이라는 점에서 별 설득력이 없어 보입니다.

>> 네타냐후의 도박은 성공할까?…당혹스런 변화들

하마스가 쏘아올린 로켓포가 만들어내는 바람, 이른 바 ‘팔’풍이 과연 네타냐후의 재집권 시나리오에 순풍이 될 수 있을까요? 전망은 쉽지 않아 보입니다.

우선 이스라엘을 둘러싼 아랍권의 환경이 4년 전 가자지구에 대한 대대적 공격 때와는 180도 달라져 있습니다. 예전 친미 군사독재 권력들이 포진했던 이집트와 튀니지 등지에선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 공격을 테러와의 전쟁이라며 두둔하거나 적어도 묵인하는 방식으로 이스라엘에 멍석을 깔아주곤 했습니다. 하지만 지난 해 시민혁명으로 독재권력이 무너지고 이슬람정권이 들어서면서 이-팔 분쟁에 대한 아랍권 주변국의 접근 자체가 달라지고 있습니다. 시민 혁명의 도화선이 된 이집트와 튀니지는 총리와 외교장관을 포탄이 빗발치는 가자에 직접 보내 하마스에 대한 강력한 지지 의사를 표시했습니다.

>> KEY를 쥔 이집트…‘팔’풍이 역풍되나?
이미지
특히 가자지구와 국경을 맞대고 있고, 이스라엘과는 중동평화협정을 맺고 있는 이집트의 무르시 정권은 가장 강경한 목소리를 내고 있습니다. 대통령이 직접 나서 공개적으로 가자지구의 팔레스타인 형제를 버려두지 않을 것이라고 역설할 정도니까요. 이집트는 이스라엘과는 중동평화협정을 매개로 한 유일한 아랍권 수교국이자, 이스라엘이 전체 가스 소비량의 40%를 의존할 정도로 중요한 전략적 파트너인 상황에서 이집트가 하마스를 공개 지지하고 나선 것은 네타냐후 정부엔 엄청난 부담으로 작용할 수 밖에 없습니다. 이스라엘이 이집트에 이슬람 정권이 들어서는 걸 그렇게 두려워했던 이유가 증명된 셈이랄까요?

실제로 이집트는 이스라엘과 하마스간의 휴전을 중재하는 동시에 이스라엘이 지상군을 투입하면 이스라엘과의 관계를 재검토하겠다면서, 가스공급 중단이나 중동평화협정 파기 같은 카드를 만지작거리고 있다는 메시지를 이스라엘에 끊임없이 전달하며 네타냐후의 발목을 잡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의 입장에선 하마스를 초토화시켜 고립시키려다 오히려 수백 발의 로켓포가 한꺼번에 날아드는 등 위협 제거가 아니라 불안의 장기화로 나타나고, 잠재적인 테러 집단으로 인식하고 있는 하마스의 기반만 더 강화되는 역풍이 될 가능성이 점점 커지고 있습니다. 결국 이번 가자지구 공격으로 이스라엘이 얻는 소득이라면 전 세계에 강철지붕, 즉 이스라엘의 최첨단 미사일 요격시스템인 ‘아이언돔’의 성능을 확인시킨 것뿐이라는 비아냥도 들립니다. 하마스도 장거리 로켓 등 화력의 상당 부분을 잃었지만, 조직이 남아 있는 이상 언제라도 무기는 다시 모을 수 있는 것이니까요.

당장 내년 1월 총선을 앞두고 이스라엘에선 보수정당 통합에도 불구하고 지지율이 정체되거나 의석수가 줄 거라는 전망들이 나오고 있습니다. 이번 가자지구 공격이 무장 정파 하마스의 아랍권 기반만 강화하고 오히려 적대세력을 양산해 이스라엘의 고립만 심해진다면 회심의 카드로 꺼낸 ‘팔'풍이 과연 얼마나 힘을 쓸지 장담할 수 없는 상황입니다. 결국 시민혁명 이후 근본적으로 바뀐 아랍권의 재편된 질서를 간과한 채 과거의 잣대로 휘두른 가자지구 공격이라는 칼이 네타냐후 정권 자신의 목을 겨눌 수도 있는 형국입니다.      
Copyright Ⓒ SBS.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재배포 및 AI학습 이용 금지

스브스프리미엄

스브스프리미엄이란?

    많이 본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