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파일] 'K2 전차' 국산 파워팩에게만 가혹한 방사청

오늘(11월 7일) 오전 방위사업청(이하 방사청) 관계자들이 돌연 국방부 기자실을 찾아와 K2 흑표 전차에 대해 브리핑했습니다. 방사청은 한 시간 반에 걸쳐 K2 전차용 국산 1천5백 마력 파워팩(엔진+변속기)이 지금까지 어떻게 고장났는지를 구구절절 설명했습니다.

독일제 파워팩을 쓰느냐 국산 파워팩을 개발해서 쓰느냐가 논란이 되고 있는 가운데 독일제 파워팩이 평가 도중 어떤 불량이 발생했는지는 언급조차 안 했습니다. 사실상 K2 전차용 국산 파워팩의 부실함을 웅변해 독일제 파워팩을 사들이기 위한 브리핑이었습니다.

그런데 오늘 브리핑에서 드러난 것은 국산 파워팩만 가혹하게 평가했다는 또다른 사실들이었습니다. 독일제 파워팩은 새 전차에 탑재해 평가를 했고, 국산 파워팩은 고물 전차에 넣어서 시험을 한 것으로 확인된 것입니다. 방사청은 괜히 브리핑 자청했다가 제 발등에 도끼질을 했습니다.

'고물 전차'에 탑재해 평가받은 국산 파워팩

국산 파워팩 관련 업체들은 시험평가를 위해 방사청으로부터 지난해 11월 K2 전차 차체를 넘겨 받았습니다. 당시 이 전차의 주행 거리는 1만 228킬로미터였습니다. K2 전차의 한계 수명은 9천 6백 킬로미터. 방사청은 수명 다한 전차를 수리해서 국내 업체에게 넘긴 것입니다. 국내 업체들은 그 '재생' 전차에 파워팩을 탑재해 갖은 가혹한 평가를 수행했습니다.

반면 독일제 파워팩은 새 전차에 탑재해서 평가를 받았습니다. 새 차는 아무래도 진동도 덜할 테고, 파워팩 이외의 모든 부품이 안정적일 테니 재생 차보다는 좋겠지요. 평가 결과의 차이가 확연히 드러날 수밖에 없는 조건입니다. 이에 대한 방사청의 해명은 "1만 킬로미터 넘게 뛴 전차이지만 잘 고치면 괜찮다"입니다. 새 차나 재생 차나 똑같다는 논리입니다.

독일제, 양산된 적 없고 '8시간 연속주행'도 안 했다

방사청이 독일제를 높게 평가하는 이유 중 하나가 '5백 대 양산 실적'입니다. 기자는 이에 대해 바로 이 취재파일을 통해 "양산된 적 없다"고 주장해 왔습니다. 방사청은 그 때 "확인해 보겠다"고 하더니 오늘 드디어 양산된 적 없다는 사실을 인정했습니다. 방사청이 도입하려는 독일제 전차 엔진은 '5백 대 양산된' 엔진과 부속이 60%가 다르다는 사실을 방사청도 받아들인 겁니다. 방사청은 A라는 모델과, 이 모델의 부속 60%를 바꾼 B라는 모델을 같은 제품이라고 우겨온 것입니다.

방사청이 사들이려는 독일제 파워팩은 새로 개발되는 제품입니다. 국산과 똑같은 기준으로 가혹한 평가를 실시해야 마땅합니다. 국산 파워팩이 했던 '8시간 연속 주행'을 독일제도 받아야 합니다. 그것도 수명 다한 고물 전차에 탑재해서 가혹 시험을 받아야 합니다. 그런 연후에 국산과 독일제의 성능 차이를 따져야 의혹이 제기되지 않습니다.

독일제 전차 파워팩은 압도적으로 세계 최고입니다. 그런 독일제에 비해 손색없는 파워팩을 국산으로 만들어보자는 것이 정부와 우리 방산업체들의 꿈입니다. 말 그대로 다윗과 골리앗의 싸움입니다. 그냥 붙여놓아도 다윗은 백전백패할 수밖에 없는 싸움이지요. 그런데 방사청은 다윗에겐 나무 막대기 주고, 골리앗에게는 쇠창을 줬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