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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상토크] 상큼한 가을 바람따라…미인의 대금소리가

한복을 곱게 차려입은 미인이 대금을 들었다. 갓을 쓴 연주자들만 본 기억 때문인지 남성적인 악기라고 생각했던 대금이 그녀의 입에서 가락을 품어낸다. 애원하는 듯 하면서도 절도 있는 소리가 자연을 품는 박력을 지닌다.

경남 함양의 한옥고택에서 이루어진 국악 녹음은 스튜디오의 갇힌 음악과는 또 다른 감동이었다. 잡음이라고 여겨진 자연의 소리가 같이 녹음되는데, 벌레소리 대나무 잎이 바람에 흔들리는 소리가 같이 장단을 맞추게 된다. 차 소리가 안 들리는 곳을 찾아내기 힘들다는 것이 이 녹음방식의 난점이다. 시골 동네라면 어김없이 들리는 개 짖는 소리는 장구소리가 들리자 갑자기 조용해 졌는데, 이번에 들고 온 장구의 가죽이 개가죽이라며 너스레를 떠는 김인수 씨. 그는 대금 연주자 이필기 씨와 호흡을 맞춰온 게 벌써 여러 번이다. 학교 선후배이기도 한 이 둘은 ‘장단을 맞추다’의 말 그대로 서로 말을 하고 들어주고 틈을 채워주는 연주를 한다.

영상토크 속의 음악은 김동진류 대금산조이다. 김동진 선생은 경상도 지역에 기반을 둔 비주류에 속하는데, 특이하게 왼손으로 대금을 연주했다. 이필기 씨는 포항출신으로 경주에서 수업한 덕에 김동진류를 연주하는 유일한 서울 연주자가 되었다고 설명한다. 김동진류의 ‘류’는 요샛말로 ‘스타일’이다. 싸이의 강남스타일이 대유행인데, 한마디로 ‘김동진 스타일’인 것이다. 김동진류의 특징은 남성적이면서도 슬픈 음색이다. 여성 연주자의 손에서는 대지를 품는 여성성의 단단함으로 바뀌어 잠시 바람소리도 잊게 만든다.

대금은 삼국시대 이전부터 널리 퍼져 있었는데, 설화 속에서 전해지는 모습이 흥미롭다. 신라시대 신문왕 때 용이 변한 대나무로 대금(笛)을 만들었더니, 이 대금을 불 때 마다 적병이 물러가고, 질병이 없어지고, 가뭄에는 비가 오고, 비가 오면 개이고, 바람은 가라앉고, 물결은 평온해 졌다는 이야기가 바로 그것이다. 이 설화속의 대금 이름이 만파식적(萬波息笛)이다. 파도를 가라앉히듯 마음을 어루만져주는 소리는 예나 지금이나 마찬가지가 아닐까 싶다. 만물을 품는 것은 여성이라고 했는데, 이제 보니 더 어울리는 소리가 되었다.

원래 이 영상은 올해 6월 초여름에 촬영/녹음 되었는데, 가을에 더욱 어울리는 국악의 정취로 소개하고자 한다. 김동진류 대금산조는 총 연주시간이 25분 정도 되는 음악이지만 이 영상에서는 8분 남짓한 짧은 산조로 감상할 수 있다. 연주자 이필기 씨는 문동옥에게 김동진류 대금산조를 사사받았고, 지금은 국립국악원 창작악단에서 활동하고 있다. 녹음 작업은 사진작가이기도 한 국악 레이블 악당이반의 김영일 씨가 진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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