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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검은 속내' 드러내는 일본 노다총리

[취재파일] '검은 속내' 드러내는 일본 노다총리
지난 주 토요일, 노다 요시히코 총리는 갑자기 센카쿠 제도를 국유화하겠다고 밝혔다. 주말인데다 당시 원전 피해지인 후쿠시마현 이와테시를 방문하고 있던 자리여서, 장소와 시간과는 어울리지 않는 다소 뜬금없이 느껴지는 발표였다. 최근 몇 년간 중일 관계의 가장 예민한 이슈로 중국의 반발이 뻔히 예상되는 문제를, 별다른 계기도 없는데 이렇게 느닷없이 태연하게 발표해도 되나 싶었다.

발표가 알려진 뒤 가장 먼저 반발한 곳은 아이러니하게 중국과 대만이 아닌 처음으로 센카쿠 매입 아이디어를 냈던 이시하라 신타로 도쿄도 지사였다. 지난 4월 먼저 센카쿠 매입 선언을 하고 구체적으로 국민으로부터 13억 엔 이상을 모금하는 등 차근차근 진행을 해오고 있던 이시하라 지사로서는 노다 총리의 국유화 선언이 자신의 공을 가로채려는 것으로밖에 보이지 않은 것 같다. 이시하라 지사답게 “난폭하다고 해야 할까, 졸속 조잡하다고 해야 할까, 민주당 자체가 혼란스러운 와중에 인기를 얻으려는 것이다”라며 원색적으로 비난했다. 인기 떨어진 노다 총리의 총선용 이벤트라고 평가절하하며, 예정대로 도쿄도가 센카쿠를 사들인 뒤 추후에 정부에 양도하는 방안을 검토하겠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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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과 대만은 예상대로 강력 반발했다. 오랜만에 두 나라가 한 목소리로 일본을 성토했다. ‘중국의 신성한 영토’를 가지고 자기들 멋대로 거래 운운하냐는 것이었다. 더욱이 토요일인 7월 7일은 일본의 중국 침략이 본격화된 ‘류거오차오(노구교) 사변’이 일어난 지 정확히 75년 된 날이었다. 기막힌 타이밍(?) 덕에 중국의 민족감정을 더욱 자극해, 중국 네티즌들을 중심으로 일제상품 불매 같은 반일감정이 확산되고 있다고 한다.

노다 총리는 왜 뻔히 국제적 반발이 예상되는 ‘센카쿠 국유화’ 문제를 갑자기 들고 나왔을까? 일단 총선용 인기정책이라는 분석은 맞는 것 같다. 하지만 현역 총리로 감당해야 할 부담이 적지 않다. 판단 미스로 무리수를 둔 것일까? 그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유복하게 자라 사람 좋은 하토야마 전 총리나 시민운동가 출신의 다소 낭만적인 간 나오토 전 총리에 비해 노다 총리는 상당히 치밀한 사람이라는 인상을 받았다. 말실수할까봐 말을 지극히 아끼는 그가 즉흥적으로 생각해서 불쑥 꺼낼 리가 없기 때문이다. 보수 성향, 특히 영토문제에 강건한 노다 총리가 자신의 정치적 신념대로 꼭 밀어붙이고 싶었던 정책을 그동안 나름대로 발표 시기를 저울질해오다 선거를 앞두고 지금이다 싶어 발표를 한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최근 큰 파문을 일으키고 있는 일본의 핵무장 우려와 집단적 자위권 논란 역시 마찬가지다. 불쑥 튀어나온 것이 아니라, 센카쿠 국유화 문제처럼 노다 총리를 중심으로 한 민주당내 매파가 나름 치밀한 계획을 세운 뒤 진행하고 있다는 의혹이 짙다. 핵무장의 길을 연 ‘원자력 기본법’개정은 비록 자민당이 주도했지만 민주당의 동의가 없었으면 불가능한 것이었고, 집단적 자위권 역시 총리 직속의 기구가 제안한 것이다. 극성스러운 우익에 가려 상대적으로 덜 부각됐지만, 중심에는 노다 총리가 있는 것이다. 하토야마나 간 전 총리라면 결코 이렇게 급속히 ‘우향우’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사실 노다 총리의 정치적 성향을 생각해보면 한편으로 많이 참았다(?)는 느낌도 든다. 지난 해 9월 노다 총리의 취임할 당시 우리를 비롯해 주변국들의 우려는 상당히 컸다. 그의 이력이나 발언이 ‘온건한 진보’로 평가받는 민주당과는 어울리지 않을 정도로 ‘강성의 보수우익’ 색깔이 짙었기 때문이다. 일본 자위대 낙하산 부대원의 장남이라는 가정환경도 환경이지만, 야스쿠니 신사 참배에 대해 “A급 전범은 사면됐으니 더 이상 전범이 아니다”라며 밝힘 점, 간 내각에서 유일하게 외국인 참정권에 명확히 반대한 점 등 그가 밝힌 ‘정치적 소신’은 상당히 위험스러워 보였다. 더욱이 그는 최근 파문을 일으킨 ‘집단적 자위권 행사’와 ‘평화 헌법’개정에 줄기차게 찬성한다는 입장을 표명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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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근차근 진행돼 눈에 확 안 띄어서 그렇지 곰곰이 따져보면 노다 총리는 취임 이후 지난 10개월 동안 자신의 정치적 신념대로 정책을 실현시키기 위해 착실하게 준비하고 단계를 밟아왔다. 대표적인 것이 무기수출 3원칙의 완화다. 노다 총리는 취임한 지 한 달여 만인 지난해 10월에 수십 년간 유지된 이른바 ‘무기수출 3원칙’을 깨겠다고 미국 측에 입장을 전했고, 지난 해 12월 말에는 공식적으로 원칙의 대폭완화를 선언한 뒤, 올해 들어 지난 4월에는 영국과 무기를 공동개발하기로 공식 합의했다.

우리보다 많이 느린 일본의 의사결정과정을 볼 때, 상당히 빠른 진행이었다. 또 핵무장 합법화 시도나 집단적 자위권 논란에 앞서 우주개발을 평화적 목적에 한정한다는 조항을 삭제했고, 북한의 장거리 로켓발사 때는 경로와 전혀 상관없는 도쿄에 패트리어트 미사일을 배치해 고개를 갸우뚱하게 했으며, 또 지난 달에는 뜬금없이 42년 만에 자위대 특수부대원들이 도쿄시내에서 무장훈련을 하게 했다. 찬찬히 살펴보니 정말 ‘뚝심의 정치인’이라고 불리는 그답게 일관되게 밀어붙여 온 것이다! 총리가 된 뒤 처음으로 후쿠시마현을 방문했을 때 재해복구현장에 투입된 자위대원을 격려하는 자리에서 “자위대의 최고 지휘관으로서 진심으로 자랑스럽게 생각한다”고 말했을 때는 정말 ‘진심’이지 않았을까 싶다.

일본의 진보적인 언론도 노다 총리로 대표되는 민주당내 매파의 움직임에 심한 우려를 표하고 있다. 도쿄신문은 지난 7일 1면의 ‘노다 정권 속속 매파 정책’이라는 타이틀의 기사에서 “최근 집단적 자위권 파문은 노다 정권의 매파 본색이 짙게 반영된 것”이라며 강하게 비난했다. 이 신문은 총리 직속 기구가 겨우 몇 차례 얼렁뚱땅 회의를 갖고 집단적 자위권을 행사해야한다고 제언했으며, 이 과정에서 노다 총리는 제지하려는 어떤 흔적도 없었다고 지적했다. 또 이 신문은 총리가 원자력 기본법 변경에 대해 ‘민주, 자민, 공명 3당이 합의한 결과’라며 슬쩍 예봉을 피해 가는데, 결국 이 법안을 용인한 것은 민주당의 대표인 노다 총리 아니냐며 통렬하게 비판하고 있다.

노다 총리는 냉정한 현실주의자답게 자신의 정치적 신념이 곧 실현될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지는 않다. 언제가 자기가 원하는 대로 ‘자위대가 아닌 군대를 가진 위대한 보통 국가 일본’을 만드는데 자신이 초석을 깔고 있다고 믿고 있는 것 같다. 총리 직속기구가 제언한 집단적 자위권이 논란이 됐을 때, 단지 “논의 활성화가 되는 계기가 됐으면 좋겠다”고 언급하는 선에서 그치는 것처럼 말이다. 야금야금 하나씩 원하는 목표를 달성할 때까지, 조급하게 서두르지 않고 천천히 심호흡을 하고 있다는 인상이다. 소름 끼친다!

문제는 앞으로 노다 총리와 같은 민주당내 매파의 발언권이 세지고, 활동공간이 넓어질 것 이라는 점이다. 지난해 대지진 이후 일본 사회적으로 보수 우경화 물결이 갈수록 거세지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오는 가을 일본에서 조기 총선이 치러진 다음에 현 노다 정권보다 보수색이 훨씬 더 짙은 정권이 들어설 것이 확실하다는 점은 크게 우려되는 점이다. 그때는  그나마 단계를 밟고 조금은 여론의 눈치를 보는 시늉을 하는 노다 정권보다 한층 ‘무자비하고 노골적인’ 보수정권이 들어설 것이다. 우울하지만 동의하지 않을 수 없는 전망이다. 정말 말 그대로 ‘냉정하고 현명한’ 대처가 절실한 시점이 다가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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