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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넉 달도 못 버틴 무상보육…산으로 가는 해결책

[취재파일] 넉 달도 못 버틴 무상보육…산으로 가는 해결책
지난해 8월, 당시 황우여 원내대표가 영유아 무상보육 카드를 꺼내들었습니다. 정치권에서 이른바 복지 경쟁이 한창 치열했던 때였습니다. 무상 급식, 무상 보육, 무상 의료 등등... 무상 아니면 복지 명함도 못 내밀던 분위기였죠? 그런 상황에서 황우여 대표가 원내대표 취임 100일 기자간담회에서 던진 카드가 영유아 무상 보육이었습니다.

황 대표는 5세 이하 영유아 무상 보육을 단계적으로 완성시키겠다는 말을 하면서, 먼저 0세부터 2세까지 영아들부터 무상 보육을 시작하겠다고 설명했습니다. 이 부분에서 당시 제가 황 대표에게 질문을 했던 기억이 납니다. 갓난 아이와 이제 막 돌 지난 영아들을 키우는 데 국가가 지원해 줄 수 있는 내용이 뭐가 있냐고요. 오히려 세 살, 네 살 정도 아이들을 키우는 가정에 더 보육 도움이 필요하지 않겠냐는 뜻이었습니다.

황 대표는 제 질문에 명확한 답을 하지 않았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나중에 확인한 내용이지만, 당시 황 대표도 첫 단계는 0세부터 시작해야 적은 예산으로(?) 무상 보육한다는 티를 낼 수 있다고 생각했다고 합니다. 0세-2세부터 일단 시작해보고 돈이 훨씬 많이 들 것 같은 3세 - 4세로 확대하자는 취지였답니다. 어쨌든 집권 여당의 강력한 의지로 지난해 말 정부 예산 항목에 0세-2세 영아에 대한 무상보육 예산이 편성됐고, 5천 5백억 원 상당의 무상 보육 예산으로 올해 3월부터 무상보육이 시작된겁니다.

그런데 예상하지 못한 일이 발생했습니다. 특히 0세-2세 무상 보육에 필요한 지출이 너무 많아진 겁니다. 어린이 집을 이용하지 않던 영아까지 어린이집으로 몰리는 현상을 예측하지 못했습니다. 복지 정책에 따른 도덕적 해이를 간과한 겁니다. 당연히 복지 지출은 예상치 못하게 늘어났고, 더 이상 감당 못하겠다는 지방자치단체가 잇따라 생겨났습니다.

제일 먼저 서울 서초구가 손을 들었습니다. 이어 다른 구들도 잇따라 무상 보육을 포기하겠다고 외쳤습니다. 특히 재정 상태가 더욱 열악한 다른 지방 자치단체 사이에서도 아우성은 더욱 커지고 있습니다. 정부 여당의 무상보육 예산에 대한 예측 잘못으로 벌어진 일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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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지방자치단체가 무상 보육 포기를 선언한 이유는 또 있었습니다. 보육비 재정분담비율이 너무 높다는 겁니다. 중앙부처와 지방단체의 재정분담율을 각 자치구의 재정자립도와 사회보장지수를 고려해 조례로 결정합니다. 즉 자치단체별로 분담율이 다르다는 건데요, 서울시에서 발표한 자료를 보면, 제일 먼저 무상보육 포기를 선언한 서울 서초구의 경우 중앙 예산 10% : 서울시 예산 27% : 서초구 예산 63%네요. 강남구, 종로구, 중구 등도 20%:40%:40%이고요. 중앙 예산에서 30%를 넘겨 분담하는 자치구는 한 군데도 없는 실정입니다. 다른 지방자치단체는 아예 지방세수 자체가 부족한 실정입니다. 이런 상황이니 무상 보육 포기하겠다는 얘기가 나올 수 밖에 없을 겁니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정부는 무상 보육 정책 수정을 제안하고 있습니다. 모든 가정을 대상으로 할 게 아니라 잘 사는 가정 30%는 제외하자는 겁니다. 보편적 지원에서 선별적 지원으로 바꾸자는 겁니다. 하지만 새누리당 입장은 한 번 질러놓은 일을 후퇴할 수는 없다는 입장입니다. 대선을 앞두고 표가 걸려 있는 문제를 쉽게 포기할 수 없다는 거죠. 야당도 여당을 향해 "너희들이 하는 일이 다 그렇지 뭐"라는 식입니다. 마치 지난해 예산 편성 과정에서 동의한 책임은 전혀 없다는 투입니다. 눈가리고 아웅이죠.

어쨌든 정치권은 무상 보육을 계속 이어가겠다는 입장인 것 같습니다. 내년 예산 편성 내용을 지켜봐야겠지만, 대선을 앞둔 올해 무상 보육을 계속 유지하자는 데 별 이견이 없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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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는 당장 거덜단 무상 보육 예산을 어떻게 메우느냐입니다. 근데 여야가 해법이 완전히 다르더군요. 민주통합당은 추가경정예산을 편성해 예산 부족을 채워주자고 주장합니다. 7천억 원 정도가 든다고 하네요. 하지만 새누리당은 그럴 수 없다는 겁니다. 자체 조사를 해보니 지방자치단체에 여기저기서 융통할 수 있는 예산이 충분하다는 겁니다. 올해는 그럭저럭 버틸 수 있다는 취지겠죠. 이 때문에 보육예산을 위한 추경 편성이 쉽게 될 것 같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자치단체들이 가만 있을까요? 대선을 앞둔 시점에서 자치단체들이 "여당 때문에 무상보육 유지 못한다"고 떠든다면 과연 여당이 버틸 수 있을까요?

여야만 생각이 다른 게 아닙니다. 정부와 정치권 생각도 다른 듯 합니다. 내년도 예산안 편성과 관련해 정부는 가급적 허리띠를 졸라 매려고 합니다. 무상보육 대상을 줄이자는 거죠. 하지만 정치권은 그렇게는 못하겠다는 겁니다. 이건 여야 입장이 동일합니다. 이렇게 사안에 따라 정치권끼리 다르고, 정부와 정치권 입장이 서로 다른 형국입니다. 자칫 배가 산으로 갈 수도 있겠네요. 게다가 이슈 블랙홀같은 대선을 앞둔 상황에서 말입니다.

재원을 생각하지 않는 복지 이야기는 허구라고 합니다. 때문에 정확한 예산 예측과 분배는 필수입니다. 결국 영유아 무상보육은 넉달도 안 돼 탈이 났습니다. 복지 논란에 취한 정치권이 무턱대고 질러놓고 본 결과 아닐까 싶습니다. 이제 복지는 필수인 시대입니다. 하지만 그 필수를 제대로 유지하려면 구체적인 노력이 더욱 필요하다는 사실을 다시 한 번 깨닫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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