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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격동의 이집트 대선…판도라의 상자를 열다

[취재파일] 격동의 이집트 대선…판도라의 상자를 열다
무르시 당선…새로운 판도라의 상자를 열다

말로 역사적인 이집트의 대통령 선거가 이슬람주의자 무르시의 승리로 일단락됐습니다. 결선투표 결과 발표가 연기되면서 군부의 선거조작 가능성이 제기되는 등 끝까지 긴장을 늦출 수 없는 상황이 펼쳐졌습니다. 하지만 무바라크 정권 출신 샤피크 후보를 지지해 온 군 수뇌부는 반군부시위대 규모가 계속 불어나면서 상당한 부담을 느낀 것으로 보입니다.

군부의 영향력 아래 놓인 선관위는 무리한 시나리오 대신 대부분 출구조사 내용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 최종 선거 결과를 내놨습니다.

시민혁명 후 1년 5개월 여…격동의 정치 여정

60년 군부독재에 종지부를 찍는 무르시의 당선이 확정되면서 혁명의 성지는 환희의 물결이 넘쳐났습니다. 지난 해 2월 11일 시민혁명으로 무바라크 정권이 붕괴한 지 1년 5개월여 만에 시민의 힘으로 새로운 정부를 만들어낸 것이죠. 그야말로 혼돈의 연속이라 할 만큼 숨가빴던 기간이었습니다.

무바라크 정권 붕괴 9개월여만인 지난 해 11월 28일 첫 총선이 치러졌고요. 지난 5월 23일과 24일에는 역사적인 대선 1차 선거가 치러졌습니다. 여기서 무슬림형제단 출신의 무르시 후보와 무바라크 정권 출신 샤피크 후보가 결선에 진출했죠.

이후 6월 2일에는 무바라크에 대한 종신형이 선고됐고, 대선 결선투표를 이틀 앞둔 6월 14일엔 무바라크 정권 출신 인사들의 정치참여를 금지하는 정치격리법에 대해 위헌이 선고되면서 샤피크의 후보자격 유지가 가능해진 반면, 이슬람주의자가 65%를 장악한 의회는 의원 1/3이 위법적으로 당선됐다며 헌재의 해산판결을 받게 되면서 반군부 시위에 불을 지핍니다.

이후 16일과 17일 역사적인 결선투표를 거쳐 지난 25일 결국 무슬림 형제단 출신 무르시의 승리가 확정 발표됩니다.



60년 군부독재 마감…무르시 정부, 군부와 권력분점 나설 듯

무르시의 승리는 나기브와 나세르, 사다트와 무바라크로 이어졌던 이집트의 60년 군부독재가 사실상 종언을 고했음을 상징합니다. 하지만 의회를 해산시킨 군부가 입법권을 장악하고 있고, 예산감독권, 그리고 군 통수권까지 장악한 상태여서 무르시가 실권없는 반쪽 대통령으로 전락하고 군부와의 갈등이 계속될 것이란 전망이 우세했습니다.

하지만 당선 이후 무르시 진영과 군부 간의 권력 분점 등을 놓고 모종의 합의가 이뤄지고 있다는 보도들이 나오고 있습니다.  무르시와 군부가 극한대립 대신 타협점을 모색하고 있는 것으로 보이는 데, 우선 의회해산 직전 군부에게 부여됐던 민간인 체포권이 법원에서 무효 결정을 받았습니다. 또 무르시는 해산된 의회 건물에서 취임 선서를 하겠다던 당초 계획을 바꿔서 군부의 요구대로 헌법재판소에서 취임선서를 하기로 했습니다. 군부가 일부 권한을 포기하는 대신 무르시 대통령도 군이 선포한 임시헌법을 일단은 존중하겠다는 의사를 표시한 셈입니다.

그 외에도 당초 새로운 헌법을 만들 제헌위원회 임명권을 독점하려던 군부와 무르시 정권 사이에 모종의 타협점이 모색되고 있습니다. 새 대통령의 권한과 이슬람국가 건설 여부를 좌우할 헌법 제정은 향후 이집트와 중동질서의 향방을 결정짓는 중대요소입니다. 군이 새 제헌위원회 구성에 대한 거부권을 포기하는 대신 전체 절반이 넘을 것으로 보이는 이슬람주의 제헌의원 가운데 10명을 기술관료들로 교체하는 방안이 모색되고 있습니다.

표면적으로 무슬림 형제단은 반군부 시위를 지속하고 있지만 물밑으로는 안정적인 권력기반을 만들기 위해서 군부와의 협상에 적극 나서고 있는 양상입니다.

단기적 불확실성은 제거…중장기적 불학실성은 여전

이번 대선 결과는 놓고 이 곳에서는 단기적으로 군부와의 극한대립과 유혈사태 가능성에서 벗어난 나쁘지 않은 결과라는 반응들이 나오고 있습니다. 하지만 중장기적인 불투명성은 여전합니다.

우선 무르시는 당초 무슬림형제단이 내세우려던 대선후보 샤테르가 후보자격을 박탈당하면서 급조된 후보로 정치적 기반이 거의 없습니다. 대중적 인지도도 낮고 시민혁명 과정에서 뚜렷한 입장을 보이지도 않아서 선거초반 상당히 고전했지만 무슬림형제단의 조직력으로 대통령이 됐다는 평가에서 자유로울 수 없습니다.

당선 직후 정치적 중립성을 지킨다면서 무슬림형제단을 탈퇴했지만 정치적 기반이 약한 무르시 대통령으로선 앞으로도 무슬림 형제단에 의존할 수 밖에 없는 상태입니다. 특히 보수적인 이슬람국가 건설을 목표로 하는 무슬림형제단이 당장은 아니더라도 시간을 두고 권력기반을 넓혀가면서 여성인권 등 폐쇄적인 정책으로 선회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습니다.

이런 우려 때문에 이미 엘 바라데이를 포함해 시민혁명을 주도했던 이집트의 주요 정치세력은 20여 개로 중구난방인 정당들을 규합해 이슬람 세력에 맞서는 야당 창당 준비작업에 들어간 상태입니다.

무르시에게 오히려 군부와의 관계보다 국내 정치세력들의 움직임이 향후 변수가 될 수도 있다는 진단이 나오고 있습니다.   

세계 각국 이집트 대선 결과 촉각…희비 엇갈려

인구 8천만의 아랍권 최대 국가, 이스라엘과의 유일한 수교국이자 중동평화협정의 당사국, 이집트의 대선 결과는 향후 중동질서에 엄청난 영향을 미칠 수 밖에 없습니다. 이 때문에 세계의 시선이 이번 대선에 쏠렸죠.

특히 미국은 선거 막바지까지 극도로 말을 아껴왔는 데요. 지난 30년 간 무바라크 독재 정권을 지원하며 이들의 친미, 친이스라엘 노선을 중동질서의 안정판으로 삼아 왔던 미국의 입장에선 이슬람 주의자의 대통령 당선이 상당히 곤혹스런 상황일 수 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무르시 당선 직후 이집트가 역내 평화의 주축이 돼달라는 축하 메시지를 전했습니다. 이는 곧 이스라엘과의 중동 평화 협정을 그대로 유지하길 희망하는 미국의 속내가 담긴 것이죠.

가장 좌불안석인 것은 역시 이스라엘입니다. 네타냐후 총리가 무르시 당선을 축하하며 기존의 협력관계를 유지하길 바란다고 말했지만, 무르시는 물론 무슬림형제단이 이스라엘과의 평화협정 폐기 내지 국민투표에 부치는 안 등을 꾸준히 거론해 왔기 때문입니다.

무르시 대통령은 당선 직후 현재까지 이스라엘과의 중동평화 협정 문제는 전혀 언급하지 않고 있습니다. 최악의 경제난 속에 연간 수십억 달러에 달하는 미국의 원조 등을 고려할 때 당장 평화협정 폐기 같은 강경방안을 실행에 옮기진 않을 것으로 보입니다.

무르시, “이란과 관계 강화 희망”…이스라엘 우회적 압박 메시지

하지만 당선 직후 무르시 대통령이 이란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이란과의 관계강화를 희망한다는 메시지를 던졌습니다. 이란 언론과의 인터뷰라는 점에서 의례적인 것으로 볼 수도 있지만, 핵무기 개발 의혹을 놓고 이스라엘과의 전쟁 위험이 상존하고 있는 이란과의 관계 강화를 언급한 것은 향후 중동질서에 시사하는 바가 적지 않습니다.

평화협정 당사국으로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사이의 분쟁을 포함한 문제들에 중재자로 나섰지만, 앞으로는 이스라엘에 대한 고립과 압박을 강화해 나갈 것임을 예상할 수 있습니다.

신정국가 이란의 최고지도자 아야툴라 하메네이는 무르시 당선을 이슬람의 각성이라고 칭송할 정도이고, 팔레스타인을 포함한 이슬람 국가들은 이슬람 주의자 무르시의 당선에 열렬한 환영의 메시지를 보내고 있습니다.

무르시 이집트 대통령의 당선은 아랍의 봄으로 독재권력을 무너뜨린 시민들이 자유선거로 첫 민간인 지도자를 선택한 역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했습니다. 하지만 민의의 선택, 민주주의의 진전이라는 성과에도 불구하고 이집트의 이슬람 대통령 탄생으로 중동질서엔 앞날을 예측하기 힘든 새로운 판도라의 상자가 열렸다는 관측이 나오기 시작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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