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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대선주자의 변신은 무죄?

손학규,문재인,김두관 3인 3색…바뀌어야 산다

[취재파일] 대선주자의 변신은 무죄?
'여자의 변신은 무죄'

40대 이상의 중장년 층에게는 귀에 익은 문구이죠. 80년대 인기 여배우가 등장한 화장품 광고의 카피입니다. 당시 시쳇말로 순수함의 대명사로 통하는 여배우가 짙은 화장을 하고 파격적으로 변신한 모습을 표현했었죠.

그렇다면 대선 주자들의 변신은 어떨까요? 대선 주자들이 최근 잇따라 출마 선언을 하고 대권 행보에 속도를 내면서 이들의 탈바꿈도 유행처럼 번지고 있습니다. 대선주자들마다 '바뀌어야 산다'는 캐치프레이즈 아래 말투에서부터 이미지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변화를 모색하고 있는 겁니다. 특히 민주통합당 내 대선 주자들의 변신이 눈에 띱니다.

가장 큰 변화를 보여주고 있는 주자는 손학규 고문인 것 같습니다. 손 고문에 대한 정치부 기자들의 중론은 대중들이 메시지를 한 번에 이해하기 쉽지 않았다는 것이었어요. 각종 현안과 정책에 대한 폭넓은 이해와 깊이가 있지만, 대중들에게는 좀 어렵지 않을까 하는 거죠. 대학에서 정치학을 가르친 교수 출신이어서 그런 것이 아니냐는 추론도 있었어요.

하지만 최근 손 고문이 언론과 가진 인터뷰들을 보면, 확실히 바뀌고 있다는 느낌이 듭니다. 지난 15일 한 케이블 TV 시사프로그램에 출연해, '똥'이란 단어를 썼어요. 방송에서 사용하기 부담스러운 단어가 손 고문의 입에서 튀어 나온 거죠. 자신이 국가 비전으로 제시하고 있는 '진보적 성장'을 알기 쉽게 설명하기 위해서였어요. '잘 먹는 것'은 '경제 성장'에, '잘 소화시키는 것'은 '성장과 복지의 선순환', 그리고 '잘 배출하는 것'은 부가 골고루 돌아가 서민들이 느끼는 정서에 비유한 겁니다.

손 고문의 이런 화법은 지난 20일 출연한 한 라디오 방송에서도 계속됐습니다. "자신에게까지 색깔론을 얘기하면 정신 이상자"라고 말했어요. '정신 이상자'란 용어 선택은 과거 손 고문식의 화법과는 거리가 있습니다. 쉬운 표현법, 격식을 생략한 직설화법이 대중과의 소통과 공감에 더욱 효과적이라고 판단한 것이겠죠.

다른 대선 주자를 향한 비판도 공세적으로 바뀌었습니다. 당내 경쟁자인 문재인 고문의 국정 경험을 거론하면서, "대통령과 비서는 다르다"고 직격탄을 날렸지요. 문 고문이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의 비서실장을 했을 뿐, 대통령으로서 국정을 운영한 건 아니라는 의미죠. 21일에는 한 발 더 나갔어요. "이번 대선에서 문재인 고문은 승리할 수 없다"고 발언 수위를 높였습니다. 이번 대선의 승부처는 부산, 경남이 아니라 자신이 기반을 둔 수도권이라는 설명인데, 단정적인 어법이죠.

손 고문 캠프는 손 고문의 발언이 기사화되면서 일단 반기는 분위기입니다. 국민들이 손 고문에 주목하게 된다는 이유인데요, 다만 다른 대선 주자에 대한 '네거티브'로 비춰지지 않도록 발언이 기반한 팩트 확인과 수위 조절에 신경을 쓰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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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 다음은 문재인 고문으로 넘어 가 보죠.

문재인 고문이 달라졌다는 얘기는 지난 12일 민주통합당 정치개혁 모임 초청 간담회에서 나왔습니다. "제가 나서야만 정권 교체를 할 수 있다"고 운을 떼더니, "안철수 교수의 지지율을 '막연한 지지율'로 표현하며 "정당을 기반으로 한 자신이 (안 교수에게) 질 수 없다"며 강한 자신감을 나타냈죠. 문 고문이 안 교수를 자신과 직접 비교해 말한 것은 이 때가 처음입니다.

문 고문은 사흘 뒤인 15일에 기자 간담회를 가진 자리에서도 "수백만 명이 참여하는 완전 국민경선제를 실시하면 안 교수에게 불리할 게 없다"면서 안 교수에게 민주통합당 대선 후보 경선에 참여할 것을 촉구했습니다. 문 고문은 4월 총선에 출마하기 전까지만 해도 기자들과 만나면 단정한 외모에 무게감이 느껴졌지만, 약간은 수줍어 하는 듯한 인상이었죠. 그러나 지난 총선에서 '낙동강 벨트'를 맡아 부산, 경남 지역 선거를 지휘하면서 대권주자로서 결의에 찬 모습을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사실 올해 초만 하더라도 야권 안팎에서는 문재인과 안철수 두 사람을 가리켜 정권 교체를 위해서 대선 후보 자리를 상대방에게 양보할 수도 있는 성품의 소유자라는 얘기가 돌았죠. 그래서인지 민주통합당 내에서는 문재인 후보의 권력 의지가 약하다고 의심하는 시각이 일부 있었던 게 사실이예요. 하지만 이제 주변 상황은 바뀌었습니다. 권력 의지가 약한 후보에게 국회의원이건 참모이건 주변에 모일 리가 만무하죠. 지난 17일 대선 출마 선언식을 앞두고 이런 우려를 불식시켜야 하는 필요성이 문 고문을 더욱 강건한 이미지로 변신하게 한 것으로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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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번째 주자는 김두관 경남 지사입니다.

'리틀 노무현'으로 불릴 만큼 저돌적이고 고집이 세다는 세평을 받았던 김 지사는 이미 지난 2010년 지방선거에서 한 차례 변신에 성공했다고 주변 사람들은 얘기합니다. 당시 선거 운동 중인 김 지사를 만난 사람들은 "예전에 알던 김두관이 아니다"라고 평했다고 합니다. 깍듯한 예의 범절과 겸손해진 태도에 대한 칭찬이 이어진 거죠. 당시 무소속으로 출마했었고 야권 연대가 절실했던 상황이긴 했지만, 어쨌든 달라진 겁니다.

앞서 언급한 문재인, 손학규 두 사람이 화법과 태도 면에서 변화를 시도하고 있다면, 김 지사의 '변신 전략'은 중앙 정치인으로의 존재감을 부각시키는데 초점이 맞춰져 있습니다. 노무현 정부 시절 행자부 장관을 지내긴 했지만, 아직까지는 전국적인 인지도가 다른 후보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낮다는 점이 해결해야 할 과제입니다.

물론 김두관 캠프는 김 지사가 스토리 있는 '직업 정치인'이라는 점을 강조하면 인지도를 높일 수 있고, 이를 기반으로 지지율도 함께 끌어 올릴 수 있다고 기대하고 있습니다. 이장에서 군수, 지사까지.. 아래에서부터 성공을 쟁취한 인물이라는 점이 최대 강점이라는 겁니다. 김 지사 캠프 관계자는 "김 지사가 대선 출마 선언을 한 뒤에는 서민에게 다가가는 친근감도 중요하지만, 국가 지도자에 걸맞는 중랑감있고 신뢰감을 줄 수 있는 '김두관 만들기'에 주력할 것"이라고 말합니다.

세 사람의 변신은 결국 자신의 약점을 수정, 보완하기 위한 전략적 선택에서 기인한 것 같습니다. '바뀌어야 산다', 기업 CEO들이 엄혹한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한 '생존 전략'을 강조하며 자주 쓰는 말인데요, 정치권, 특히 올 연말 대통령 선거를 앞둔 대선 주자들에게도 똑같이 적용되는 공식인 것 같습니다.

대권주자들의 변신이 자신의 정치 철학과 가치를 바꾸는 것이 아니면 문제될 것은 없을 것 같네요. 하지만 대선 승리를 위해 자신을 바꾸려는 노력 만큼 국민들의 삶을 바꾸려는, 즉 국민들의 삶의 질을 보다 향상시킬 수 있도록 노력을 경주하는 것 역시 중요하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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