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SBS 뉴스 상단 메뉴

[취재파일] 일본을 들썩이게한 日 국민 아이돌 총선거

[취재파일] 일본을 들썩이게한 日 국민 아이돌 총선거
최근 2, 3년간 일본에서 제일 ‘잘 나가는’ 아이돌 그룹은 AKB48이라는 걸 그룹입니다. 극심한 음반 불황속에서도 나오는 앨범마다 백만 장이 넘게 팔리는 일본의 ‘국민 아이돌’ 그룹입니다. 지난해 앨범 판매순위 1위부터 5위까지를 모두 휩쓸었고, 지난달 23일 발매된 앨범도 첫 주에 무려 161.7만 장의 판매고를 올리며 사상 최고 첫 주 판매량 기록을 갈아 치웠습니다. 요즘 보통 첫 주 판매량 1위가 10만 장이 채 안 되는 경우가 대부분인 점을 감안할 때 엄청난 기록입니다. 또 TV를 켜면 웬만한 프로그램에 멤버 한두 명이 꼭 나온다고 할 정도로 전성기를 구가하고 있습니다.

이 AKB48의 인기를 확인할 수 있는 이벤트가 지난주 열렸습니다. 이른바 ‘AKB48 총선거’라는 타이틀의 인기투표입니다. 멤버들을 상대로 1년에 한 번 팬들이 인기순위를 정하는 것인데, 총리, 국회의원 선거와 더불어 일본의 3대 선거라는 우스갯소리가 나올 정도로 국민의 높은 관심을 받았습니다. 굳이 총선거라는 과장된 타이틀을 붙여야 했을까 싶지만 이 그룹의 멤버 수, 즉 AKB48 정식멤버 48명을 비롯해 자매 그룹과 연구생(연습생)까지 합해 무려 237명의 거대 그룹(?)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나름 명칭에 수긍이 가기도 합니다.
이미지


더욱이 4회째를 맞는 올해는 지상파인 후지TV가 저녁 7시부터 9시 황금시간대에 이 선거를 생방송으로 중계하고, 대대적으로 홍보까지 했습니다. 아무리 인기가 높더라도 일개 아이돌 그룹의 인기투표를 지상파 방송에서 생중계하는 것은 일본에서도 파격적이고 이례적인 사건이라고 합니다. 그렇지만 이 도박은 시청률 면에서 성공했는데 평균 시청률 18.7%로 주간 시청률 3위, 순간 시청률 28%를 기록하며 빅히트를 쳤습니다. 우리보다 시청률 경쟁이 극심한 일본 방송가에서, 그것도 지난주에 월드컵 아시아 최종예선이라는 빅 이벤트까지 있었다-실제 1위는 요르단전-는 점을 감안하면 상당히 높은 수치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일본은 왜 이 이벤트에 열도가 들썩거릴 정도로 관심이 뜨거운 것인지, 일본은 왜 이 아이돌 그룹에 이토록 열광하는 것인지 일본 언론과 전문가들은 나름 다양한 각도에서 분석을 쏟아내고 있습니다. 우리에게는 낯선 풍경이지만, 일본 연예계의 특수성과 최근 흐름을 이해할 수 있다는 점에서 소개할까 합니다.
이미지


먼저 총선거라는 이벤트의 인기가 높은 이유입니다. 언론과 전문가들의 분석은 대체로 일치하는데, 한마디로 인기투표를 통한 순위 정하기의 드라마틱함이라는 것입니다. AKB48의 멤버들은 총선거의 순위에 따라 철저하게 ‘계급’이 정해지는데, 예를 들어 1위를 차지한 멤버는 무대 출연의 중앙을 차지하는 권리와 각종 방송과 CF 우선 출연권이 주어지며, 16위까지는 주제곡, 64위까지는 앨범 수록곡 참여의 기회가 주어지는 등 순위의 높낮음에 따라 확실히 각종 혜택이 차별화됩니다. 따라서 멤버들은 순위 올리기에 절박하게 매달릴 수밖에 없는데, 팬들도 이 절실함을 마치 자신의 것인 것처럼 여겨 인기투표에 필사적이 된다는 것입니다. 즉, 인기투표에 ‘감정이입’이 돼서 자기가 좋아하는 멤버들의 순위에 탄성과 환호를 지르거나 뿌듯함을 느끼며, 멤버들과 함께 울고 웃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투표권 획득방식이 지극히 상업적이어서 비판을 받고 있습니다. 투표권은 보통 CD 한 장에 1표가 주어지고 복수 투표도 가능한데, 그러다보니 자기가 좋아하는 멤버의 순위를 끌어올리기 위해 무리를 하며 많은 CD를 사는 경우가 적지 않다는 것입니다. 보통 CD 한 장이 2천 엔 안팎인데, 일부 열혈 팬은 1700여 장, 우리 돈으로 3천만 원어치 CD를 산 경우도 있다고 합니다. 자신이 응원하는 멤버의 순위가 오르길 바라는 팬들의 마음을 이용한 것인데, 상당수 전문가들도 뻔히 속이 보이는 상술이라며 이를 격렬하게 비판하고 있습니다. 극우 정치인인 이시하라 도쿄도 지사도 “AKB 소속사측이 꽤 좋은 장사를 하고 있다”며 비꼴 정도니까 말입니다.

저는 AKB48의 인기투표를 보면서 개인적으로 스모의 계급 정하기가 연상됐습니다. 물론 스모의 계급은 개인의 실력, 즉 시합의 승패에 따라 철저하게 정해지는 점이 다르기는 하지만 계급이 정해지는 방식이 적나라해서 자극적이라는 점은 공통점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총선거에 나온 멤버들이 마치 경매에 나온 상품처럼 인기투표에 따라 냉정하게 순위가 정해지는 것처럼, 스모 선수들은 경력과 나이에 상관없이 성적에 따라 자신의 값어치를 나타내는 계급이 정해집니다. 멤버들과 선수들에게는 무척 잔인한 방식이지만, 팬들 입장에서는 순위가 바로 결정되고 자신의 눈으로 확인할 수 있다는 점에서 상당히 자극적이고 몰입도가 높을 수밖에 없습니다. 어쩌면 가장 자본주의적이지 않을까 싶습니다.

그럼 왜 이 AKB48이라는 걸그룹은 국민 아이돌이 될 수 있었을까? 이 부분에 대해서는 해석이 분분합니다. 먼저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이 이 그룹의 외모나 가창력은 우리의 기준으로 볼 때 전혀 아이돌그룹답지 않다는 점입니다. 비주얼, 오디오 모두 우리의 걸 그룹과 비교할 때 한참 뒤처집니다. 이 점은 오늘의 AKB48를 만든 총 프로듀서인 아키모토 야스시 씨도 인정하는 점입니다. 아키모토 씨는 종종 “한국 걸 그룹은 프로선수, AKB48은 아마추어”라고 비유하고는 합니다.        
이미지
       

상당수 전문가들은 그러나 바로 이 점이 AKB48 인기의 비결 가운데 하나라고 말합니다. 즉, 무엇인가 부족한 것이 매력이라는 것입니다. 산케이신문은 지난 8일자 기사에서 “미국이나 유럽에서는 AKB의 인기를 이해 못하는데, 아티스트로서 완성품을 요구하는 외국과 달리 일본에서는 성인과 어린이의 중간에 있는 소녀들의 성장과정을 지켜보고 응원하는 문화가 지난 1970년대 이후 정착되어 있기 때문에 AKB의 인기가 높은 것”이라고 분석하고 있습니다. 이 신문은 일본의 이 같은 독특함을 ‘미완성에 끌리는 문화’라고 표현하더군요.

그렇지만 무엇보다 설득력이 높고 일반적으로 받아들여지는 분석은 ‘친근함’이 AKB 인기의 가장 큰 비결이라는 것입니다. 일본인은 편안하고 친근한 연예인을 좋아하고, 또 지속적으로 응원하는 경우가 많은데 AKB가 그런 대표적인 사례라는 것입니다. 일본에는 기무라 타쿠야가 속해있는 아이돌 그룹 SMAP와 같이 장수하는 연예인들이 많고 장수 프로그램이 많은데, AKB 역시 친근함이 인기의 이유라는 것입니다. 일본에서 걸 그룹 카라의 인기가 높은 것도 팬들에게 친근함으로 다가간 덕분이라는 분석과 일맥상통합니다.

실제 AKB는 팬들과 친해지려고 초기부터 무척 노력을 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AKB하면 ‘총선거’ 말고 유명한 것이 ‘악수회’인데, 아키하바라의 전용 극장에서 데뷔 초부터 지금까지 공연이 끝난 뒤 팬들과 직접 악수하는 이벤트를 꾸준히 갖고 있습니다. 적극적으로 스킨십을 가지며 팬 층을 넓혔다는 것입니다. 또 멤버수가 많은 만큼 각종 프로그램과 행사에 역할의 비중을 가리지 않고 적극적으로 참여해 인지도를 넓힌 것도 인기를 높이는데 기여했다는 해석입니다. 멤버들이 열심히 뛴 점이 팬들에게 어필했다는 것이죠.

사실 저는 이러저런 분석에도 불구하고 AKB에 대한 일본 내 뜨거운 인기가 잘 이해가 가질 않습니다. 주변의 일본인 친구들 가운데도 “AKB의 인기는 오타쿠의 인기일 뿐”이라며 자신들도 인기의 이유를 통 모르겠다고 말하는 경우도 적지 않습니다. 하지만 AKB의 인기는 엄연한 사실입니다. 여전히 이론이 있지만 과거 ‘오타쿠만의 아이돌’을 넘어, 이제는 ‘일본 국민 아이돌’이 됐다는 점을 부정하기 어려울 것 같습니다.

올 들어 일본 내 K-POP 인기가 예전만하지 못하는 이야기들이 나오고 있습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K-POP이 초기 붐 조성기의 단계를 지나 이제 일본 내 하나의 문화로서 정착하는 자연스러운 과도기라고 보고 있습니다만, 확실히 지난해 보여줬던 폭발적인 반응이 덜해졌다는 느낌을 받습니다. 결국 이제는 얼마나 K-POP 인기를 안정적으로 유지할 수 있느냐가 관건으로 보이는데, AKB의 사례는 좋은 참고가 되지 않나 싶습니다.  
Copyright Ⓒ SBS.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재배포 및 AI학습 이용 금지

스브스프리미엄

스브스프리미엄이란?

    많이 본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