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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상토크] 섹시한 모델, 속을 들여다 보니…

보그Vogue 전시이야기

세련된 광고사진 속 모델 위에 뼈와 살, 근육이 그려져 있습니다. 죽음의 낫을 들고 있는 사신이 뒤에 서 있습니다. 광고 사진을 위해 가장된 아름다움과, 삶의 굴레를 잠시 잊게 만드는 허상을 꼬집고 있습니다. 후미에 사사부치는 보그 잡지 위에 볼펜으로 덧칠하는 작업만으로 모델의 화려함 뒤에 있을 진실을 간단히 보여줍니다.

사실 모두가 갈망해 마지않는 패션 아이콘들은 이중성을 지닙니다. 유행이란 말은 '새로움'인 동시에 '낡음'이기 때문입니다. 조금만 시간이 지난 유행은 바로 낡음의 상징이 됩니다. 철지난 잡지의 광고가 촌스러워 보이는 이유입니다.

유행은 새로운 패션과 소품들에 대한 갈망을 바탕에 두고 있습니다. 그 갈망은 소비로 이어집니다. 한슬 작가가 확대해 놓은 이미지에는 '나는 소비한다, 고로 존재한다'라는 표제가 등장하는데요, ‘새로움’이라는 미래의 ‘낡음’을 끊임없이 소비하는 우리 모습을 담고 있습니다.

잘 차려진 테이블 위에 명품과 여러 가지 소품들이 배치되어 있는데요, 정현목 작가의 작품은 마치 허무함을 주제로 한 17세기 네델란드 회화를 떠올리게 합니다. 해골, 양초 등은 덧없음의 상징이죠. 재밌는 건 작품 속에 등장하는 명품 가방들이 가짜 그러니까 '짝퉁'이라는 군요. 명품을 간절히 원하는 마음 때문에 가짜를 만들고, 소비하고, 또 그것을 단속하는 사회 모습이 생각나 씁쓸해집니다.

정윤희 작가는 보그의 표지 사진 위를 실로 촘촘히 수놓습니다. 모델의 모습은 억압받는 여성을 떠올리게 합니다. 여자들이 얼굴을 가리고 살아가야 하는 종교나, 남성이 우월하다고 믿는 가치관만 여성을 괴롭히는 게 아닙니다. 가녀린 모델의 잘 꾸며진 모습도 삶의 실제 모습과 멀어져 있기에 또 다른 억압이 되고 스트레스가 됩니다.

후미에 사사부치의 다른 작품들처럼 뒤틀리고 그로테스크한 모습이 비뚤어진 욕망의 현실은 아닐까요? 욕망과 사치가 가장 좋은 것을 만들고 누리려는 노력이 되기도 합니다. 하지만  매끈한 피부 속에 뼈와 살과 피가 담겨 있습니다. 패션의 선두주자이거나 아니거나 이 사실은 변함없죠.

공진구(jikk99@sbs.co.kr)
취재협조 - 서울대 미술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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