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SBS 뉴스 상단 메뉴

[취재파일] 동일본 대지진 1년…절망과 희망

[취재파일] 동일본 대지진 1년…절망과 희망

3.11 동일본 대지진 1주기를 맞아 쓰나미 피해지역인 미야기현과 이와테현을 2박 3일 일정으로 다녀왔습니다. 지난해 대지진 발생 직후인 3월과 반년이 지난 9월에 피해지역으로 출장을 갔으니 이번이 세 번째입니다. 피해가 컸던 이와테현 가마이시시와 미야기현 게센누마시,이시노마키시, 센다이시 등 해안가 도시를 집중적으로 취재했습니다.  

출장 가기 전 "그래도 그때보다는 많이 좋아졌겠지“라고 기대했지만, 피해지역의 모습은 여전히 참담했습니다. 1년 동안 달라진 것이 별로 없다는 느낌을 받게 되더군요. 잔해와 쓰레기를 한쪽으로 겨우 치우고, 예전보다 가설주택이 많이 지어진 정도라고나 할까요. 아직 갈 길이 멀어 보였고, 답답했습니다.

가장 충격적이었던 곳은 미야기현 게센누마시였습니다. 쓰나미가 덮칠 때 정유공장이 폭발하면서 큰 화재가 나 유독 피해가 컸던 이곳은‘폐허’나 '전쟁터’라는 표현이 지나치지 않을 정도였습니다. 쓰나미 때 뭍에 올라온 총길이 60m의 대형 선박을 포함해, 크고 작은 어선 10여척이 그대로 있었고, 또 불에 시커멓게 탄 폐차가 도시 곳곳에 쌓여 있었습니다. 폐차업체의 말로는 계속 치웠는데도, 아직 최소 3천대가 남았다고 합니다. 해안가 쪽으로 갈수록 살풍경이 펼쳐졌습니다. 악취도 코를 찔렀습니다. 다른 피해지역과 달리 최소한의 정리도 안 된 것 같았습니다. 쓰나미 피해를 입은 것이 1년 전이 아니라, 한 달 전이 아닐까  싶을 정도로 처참했습니다. 동북지역의 대표적인 미항으로 불리던 곳이었다는데, 쓰나미 이전의 모습이 상상이 안 되더군요. 

게센누마시 뿐만이 아니었습니다. 해안가 도로를 달릴 때 스치면서 본 이름이 알려지지 않은 마을들의 모습은 더 심각했습니다. 아예 마을의 흔적조차 없어진 곳이 많았습니다. 잔해를 겨우 정리한 모습은, 마치 토지구획 정리를 해놓은 벌판처럼 황량했습니다. 군데군데 보이는 집터로 겨우 이곳이 예전에 마을이었음을 짐작할 수 있을 뿐이었습니다. 과연 이곳 주민들은 목숨을 건졌을까? 다행히 목숨을 건져 지금 고향의 모습을 본다면 얼마나 착잡하고 참담할까? 가슴이 먹먹해졌습니다.

그리고 문뜩 피해지역이 입은 고통과 상처에 비해 보도가 덜 됐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유를 생각해보니, 후쿠시마 원전 사고의 영향이었습니다. 지진 발생 직후 초기 며칠 동안은 쓰나미 피해지역의 처참한 모습이 집중 보도됐지만, 원전이 잇따라 폭발하면서 보도의 중심이 원전으로 급히 옮겨갔었죠. 2만 명에 가까운 사람이 죽고 실종되는 대참사였지만, 방사능 공포는 모든 시선을 삼켜 버렸습니다. 일본 언론 역시 마찬가지였습니다. 뉴스의 초점은 긴박하게 돌아가는 원전 내부 상황에 맞춰졌습니다. 그로 인해 피해지역의 참상과 처절한 고통을 충분히 알리고 깊이 애도할 시간을 갖지 못하지 않았나 싶었습니다. 

             



이번 취재에서 제일 괴롭고 힘들었던 일은 주민들을 인터뷰하는 것이었습니다. 질문 내용이 악몽과 같은 1년 전의 아픔을 떠올리게 할 수 밖에 없는 것이어서 인터뷰를 하면서도 무척 죄송스러웠습니다. 피해지 주민들 대부분은 사랑하는 가족 또는 친척, 최소한 친한 이웃이 희생됐습니다. 리쿠젠타카타시의 경우 해안가 주민 3명 가운데 1명이 숨지거나 행방불명됐다고 합니다. 그 상처를 떠올리게 하고 다시 후벼 파는 것 같았습니다. 사건기자 시절, 병원 영안실 취재를 하면서 유가족들에게 불편한 질문을 할 때 느꼈던 곤혹스러움이 다시 느껴졌습니다.  

다행히 많은 분들이 지금은 깊은 상처를 극복하고 희망을 찾기 위해 애쓰고 있었습니다. 특히 인상적이었던 분은 이시노마키시 가설주택 단지에서 취재한 우치우미씨였습니다. 쓰나미 때 남편을 잃은 충격으로 반년 가까이 외출도 하지 않았지만, 지금은 “남편의 유해를 찾아 그나마 다행”이라며 말할 정도로 많이 회복된 모습이었습니다. 지난해 지진 직후인 4월에 태어난 손녀가 그녀의 위로가 됐다고 합니다. 숨진 남편 대신 새로운 생명을 주신 것이 아닌가 싶어, 감사할 수 있다고 했습니다. 대재난을 겪으며, 살아남은 가족과의 관계도 예전과 비교할 수 없도록 끈끈해졌다고 말하시더군요. 다른 주민들도 자신과 비슷한 마음이라고 하더군요. 새로 집을 지으려는 경우 3대가 함께 살기를 희망하는 경우가 크게 늘었다고 합니다.

다시 찾은 우치우미씨의 환한 미소를 보니, 저까지 마음이 밝아졌습니다. 취재기간 내내 봤던 참혹한 피해지 모습의 우울함에서도 다소 벗어날 수 있었습니다. 희망이라는 단어도 어렴풋이 떠올릴 수 있었습니다. 지금도 여전히 남편과 이웃들을 앗아간 바다를 보는 것이 무섭지만, 예전에 살았던 곳으로 다시 돌아가 살고 싶다는 우치우미 씨의 소박한 소원이 꼭 이루어졌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피해지역 주민들의 상처는 너무 깊고 복구하는데도 오랜 세월이 걸리겠지만, 조금이라고 더 아물고 하루라도 더 빨리 복구할 수 있기를 기원했습니다.        

1년 전 ‘검은 파도’가 되어 수많은 생명을 앗아간 피해지역 바다는 지금은 언제 그랬냐는 듯 잔잔하고 차분한 모습이었습니다. 또 ‘코발트빛의 바다’라는 표현이 이래서 쓰는구나 싶을 정도로 바다빛깔은 짙푸른 색으로 반짝이고 있었습니다. 현지 주민들 이야기로는 쓰나미 때문인지 모르겠지만 올해 유독 바다가 아름답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더욱 비극적으로 느껴졌지만, 언젠가 예전처럼 저 아름다운 바다에 잘 어울리는 소박하고 아름다운 해안가 마을들이 다시 들어선 풍경도 그려볼 수 있었습니다. 힘내시고, 다시 힘차게 딛고 일어서시길!

Copyright Ⓒ SBS.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재배포 및 AI학습 이용 금지

스브스프리미엄

스브스프리미엄이란?

    많이 본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