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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일본의 양갱 장인 아츠코 할머니

[취재파일] 일본의 양갱 장인 아츠코 할머니

일본에서 가장 맛있다고 소문이 난 양갱 판매점 '오자사', 그리고 60년 동안 그 '명품 양갱'을 만드는 데 자신의 삶과 혼을 바친 아츠코 할머니의 사연을 알게 된 것은 지난해 여름이었다. 할머니가 직접 써서 일본 내에서 호평을 받은 '한 평의 기적'이라는 책을 통해서였다. 일본의 장인정신을 잘 보여주는 사례로 소개할 만하다 싶었고, 기회가 닿아 지난달 취재를 하게 됐다.

또 할머니의 사연을 읽으면서 특히 방송 뉴스 아이템으로 좋겠다고 생각한 부분도 있었다. 할머니가 만든 양갱을 사기 위해 매일 새벽 긴 줄이 섰다는 대목이었다. 할머니의 양갱이 유명해지면서 사려는 사람들이 많아졌지만, 대량생산이 불가능해 하루 150개 1인당 3개로 한정되다 보니 새벽부터 줄을 서지 않으면 양갱을 못 산다는 것이었다. 작은 가게 앞에 길게 늘어선 줄을 연상하니 이른바 '그림이 된다' 생각이 들었다. 더욱이 치열한 줄서기 경쟁은 햇수로 벌써 40년이 넘었다고 했다.

촬영 당일, 새벽에 카메라기자와 가게 앞으로 갔다. 하필 날씨가 영하로 떨어진 추운 날이었다. 도쿄에서 영하로 떨어지는 날은 일 년에 며칠밖에 안 돼, 도쿄에 사는 사람들은 영하 1도로 떨어져도 한국에서 영하 10도 아래로 떨어진 것처럼 느낀다. 역시 사람들이 생각보다 늦게 줄을 섰다. 가장 일찍 온 사람이 새벽 5시 반이었다. 한 달 전인 연말연시에는 새벽 1시부터 줄을 섰다는데… 조금 아쉬웠다. 가게 앞에서 여러 번 줄을 섰던 사람의 경험으로는, 여름의 공휴일 새벽에 가장 긴 줄이 선다고 한다. 우리는 가장 늦게 줄이 서는 날을 택한 셈이다.

추운데 발을 구르며 줄을 선 사람들을 보며 대체 얼마나 맛있기에 저렇게 아우성일까, 고생을 사서 할까 궁금해졌다. 아무리 줄을 서는 것을 좋아하는 것으로 유명한 일본 사람들이라고 하지만, 양갱 하나-엄밀히 말해 3개-먹자고 그 고생을 마다하지 않는 것일까 싶었다. 인터뷰에 응해준 사람들의 표현으로는 '산뜻한 맛'이 난다고 했다. 양갱은 팥과 엿, 설탕이 재료라서 단 맛이 기본인 것으로 알고 있는데 '산뜻한 맛'이 난다고? 더욱 호기심이 생겼다. 그래서 우리도 줄을 서서 양갱을 샀다. 양갱은 단단히 포장이 되어 있기 때문에, 나중에 지국에서 양갱의 알맹이를 촬영할 현실적인 필요도 있었다. 나중에 촬영을 마치고 지국 식구들과 시식을 해보니, 왜 산뜻하다고 했는지 이해가 됐다. '끈적끈적하지 않고 살짝 도도한 느낌이 드는 담백한 맛'이라 할까, 어찌됐건 그렇게 달지는 않았다.

가게 앞 취재가 끝나고 공장으로 갔다. 아츠코 할머니의 가게는 양갱뿐만 아니라 모나카도 판다. 1년 매출 3억 엔 가운데 사실 모나카의 매출이 더 크다. 하루에 만개, 연말연시에는 4만개까지 판다. 가격과 크기 차이가 있지만, 하루에 딱 150개만을 파는 양갱과 비교하면  대량생산이다. 그렇지만 모나카 생산 업계 전체로 따지면 소량생산에 속한다고 한다. 그렇지만 모나카도 맛이 있어 인기가 좋다고 한다. 아이들은 모나카를 더 좋아한다고 했다. 하긴 한 개에 580엔인 양갱 150개로 생계를 유지할 수는 없겠다 싶었다. 사실 독특한 색과 모양으로 승부하는 일본 전통 과자업계에서 양갱과 모나카 딱 2개의 품목만으로 장사하는 것 자체가 무모하고 우직하다는 평이다.

올해 만 80살인 할머니는 생각보다 건강해 보이셨다. 특히 주걱으로 팥물을 힘차게 저으실 때는 더욱 그랬다. 팥물 젓기에 열중하시는 모습을 보면서 문득 책에서 표현한 가장 맛있는 양갱이 만들어지는 순간, 즉 팥물에서 '자색광채가 나는 순간'이 어떤 때일까 궁금해졌다. 혹시 할머니는 60년이라는 긴 세월동안 그 '자색 광채'의 황홀함 덕분에 매일 팥물을 저을 수 있는 힘을 얻은 것은 아닐까라는 생각도 들었다. 양갱 만드는 일이 할머니에게는 마치 연애와 같지 않을까라는 상상도 해보았다. 만일 그렇지 않다면, 평생을 양갱 만드는데 바치지는 않았을 테니까 말이다.

아츠코 할머니의 '명풍 양갱'의 비결, 즉 팥물이 '자색 광채'가 나는 순간은 매일 다르다고 한다.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것은 날씨인데, 예를 들어 우리가 취재를 한 날 같이 추운 날은 조금 더 많이 저어야 '자색 광채'가 나는 순간이 온다고 했다. 할머니는 그 순간을 말 그대로 '피부로 느낀다'고 표현했다. 오랜 경험을 통한 직감을 뜻하는 것이리라. 매일 자전거를 타고 출근하는 것도 그 날의 날씨를 몸으로 확인하기 위해서라 했다.

또 아무나 흉내를 내지 못하는 '명품 양갱'의 맛의 비결은 작은 솥에 있다고 한다. 한 번에 세 되만 넣고 삶아야 제대로 된 맛이 나온다는 것이다. 이렇게 한 번 만드는데 3시간 반이 걸리는데, 그래서 하루에 세 솥 이상을 만들 수 없다고 했다. 큰 솥을 쓸 수도 있지만, 그러면 맛이 안 난다고 했다. 이렇게 대량생산을 하지 않고 소량 생산을 하기 때문에, 정성이 담뿍 들어갈 수 있고 맛도 유지할 수 있겠다 싶었다. 생산의 처음부터 끝까지 일일이 수작업으로 만들어, 대량생산되는 양갱에는 없는 정성이 양갱에 촘촘히 스며들어 있는 셈이다.

할머니는 인터뷰 내내 신뢰를 강조했다. 정성 없이 대충 양갱을 만들어 판매하는 것은 손님을 속이는 것과 다름없다고 말했다. 돈을 많이 벌어 은행에 저축하는 것보다도, 자신은 손님과의 신뢰를 쌓는 것을 더 중요하게 여긴다고 했다. 자신의 경영철학은 '손님들의 마음을 얻는 것'이라고 단언했다. 할머니의 이 신뢰 중시는 거래처와의 관계에서도 그대로 드러나, 주재료인 팥은 지금까지 계속 같은 곳에서만 공급받는다고 했다.

할머니의 꿈은 100세가 넘어서도 계속 양갱을 만드는 것이라고 한다. 지금까지 양갱을 만들어 온 세월이 60년인만큼 더 양갱을 만들고 싶다고 했다. 할머니 본인뿐만 아니라 새벽부터 줄을 서는 사람들을 위해서라도 그 꿈이 이뤄졌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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