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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버스 중앙차로의 '학습효과'?

과거의 '착한 정책'이 지금의 '나쁜 정책'이 된 이유는?

[취재파일]버스 중앙차로의 '학습효과'?

2004년 서울에 도입된 버스 중앙차로는 교통 문화에 나름 혁혁한 공을 세웠습니다. 승용차 운전자들 입장에서는 차선이 줄어 짜증이야 나겠지만, 버스는 쌩쌩 달릴 수 있기 때문에 대중교통 활성화 측면에서는 이만한 해결책도 없었습니다. 승용차 운전자들이 불편을 감수하는 이유도 이 때문이고요. 시민들 반응이 괜찮다보니 서울시는 버스 중앙차로를 늘리기 시작했습니다. 지금까지 운영되는 서울의 버스 중앙차로는 214.7km인데 앞으로 122km를 더 설치할 계획이랍니다.

버스 중앙차로 때문에 버스가 막힌다?

하지만 정말 과유불급(過猶不及)일까요. 버스 중앙차로가 늘어나면서 조금씩 문제가 생기기 시작했고, 결국 지난달 28일 개통된 서울 의주로 버스 중앙차로에서 그 한계 확연히 드러났습니다. 어이없게도 버스 중앙차로 때문에 버스가 막히는 역설적인 상황이 벌어진 겁니다.

일단 도로 상황이 어떤지 확인해 봤습니다. 며칠간 아침 출근시간 대에 나가 확인해 보니 정말 가관이었습니다. 8시 뉴스에서 보여 드린 것처럼 다른 길을 찾기 위해 불법 유턴을 하는 경우는 다반사였습니다. 수 십 미터를 역주행하는 버스들, 답답한 마음에 택시에서 내려 고가 차도를 뛰어 내려오는 승객들…. 이러다 큰 사고라도 나는 건 아닌지 아찔했습니다. 시민들에게 어떤지 인터뷰를 했습니다. 보통 인터뷰를 요청하면 마다하거나, 부끄러운 듯 말하거나, 적극적으로 말을 쏟아 내거나, 이렇게 3가지 유형이 대부분입니다. 그런데 다들 자포자한 모습입니다. "지각이에요.", "지금 뭐하자는 건지 모르겠네요." 씁쓸함과 황당함이 뒤섞여 있습니다. 정말 '녹초'가 된 표정이었습니다.

왜 그런지 궁금해졌습니다. 버스를 직접 타봤습니다. 은평뉴타운 10단지 정류소에서 출발해 703번 버스를 타고 서울역까지 갔습니다. 서울시가 의주로 버스 중앙차로가 생기면 채 30분이 걸리지 않을 것이라 장담했던 그 구간이었습니다. 하지만 걸린 시간은 1시간 7분. 예상 시간보다 두 배가 넘었고, 버스 중앙차로가 생기기 전보다도 15분 이상이 더 걸렸습니다. 버스를 위해 버스 중앙차로를 만들었는데, 오히려 버스가 막히는 겁니다. 버스가 이런데 승용차는 두 말하면 잔소리겠죠.

                   



물론 대부분의 구간에서는 버스가 승용차보다 빨랐습니다. 하지만 두 곳이 문제였습니다. 일단 홍제 고가차도. 도로교통법상 편도 2차선의 도로에는 버스 중앙차로를 만들 수 없어 고가 차도에는 중앙차로가 잠시 없어집니다. 이 때문에 여기서 '병목현상'이 빚어집니다. 버스 중앙차로가 다시 시작되는 내리막 부분에서 1차선 중앙차로로 들어가는 버스와 다른 차선으로 가는 승용차들이 얽히고면서 버스 운행이 지체되는 겁니다. 고가도로의 거리는 불과 3백 미터인데, 여기서 30분이 가까이 지체됐습니다. 1미터 가는데 6초 정도가 걸린다는 계산이 나오니, 거짓말 하나 보태지 않고 '거북이 걸음'인 셈입니다.

독립문역에서 서대문역 사거리 8백 미터 구간도 문제입니다. 버스 중앙차로 정류소와 함께 가변차로 정류소가 함께 있는데 상당수의 버스가 중앙차로를 이용했다가 가변차로 정류소로 가기 위해 차선을 바꾸고, 또 좌회전을 하기 위해 차선을 또 바꿉니다. 지그재그 식으로 차선이 계속 바뀌다보니 혼잡을 피할 길이 없는 겁니다.

더구나 버스 중앙차로를 만들기 위해 이 구간의 보행로를 1.5미터 정도 줄였는데, 이 때문에 시민들의 불만도 많습니다. "출퇴근 시간이 되면 인도가 시장통이다. 서로 부딪쳐 싸우는 경우도 꽤 많이 봤다. 문제는 주변에 학교도 많아 아이들이 많이 다니는 길인데, 방학이 끝나면 어떨지 걱정이 앞선다." 주변 상인의 말입니다.

정말 학습효과가 통할까.

서울시는 "개통 초기 빚어지는 일시적인 정체현상"이라고 반박합니다. 그리고 과거의 '학습효과'가 있지 않으냐고 반문합니다. "2004년 버스 중앙차로가 개통됐을 때 얼마나 혼잡했는지 알지 않느냐, 그래도 금방 나아지지 않았냐."는게 요지입니다. 사실 그랬습니다. 2004년도면 제가 대학생 때였는데, 당시 서울시 홈페이지가 마비될 정도로 여론의 불만은 엄청났습니다. 하지만 이내 버스 중앙차로는 정착했고, 청계천과 더불어 당시 서울 시장을 이 나라의 대통령으로 만든 일등 공신이 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상황이 다릅니다. 버스 중앙차로가 많아지면서 승용차선은 더욱 혼잡해질 수밖에 없었고, 결국 그 영향이 부메랑처럼 버스에게 돌아가는 구조가 생기기 시작한 겁니다. 그 현상을 단적으로 보여주고 있는 게 의주로 버스 중앙차선입니다. 실제 일부 전문가들은 이곳에 지하철이 있는데다 마을버스가 많은 구조라 버스 중앙차로의 효과는 크지 않다고 입을 모으기도 합니다. 이제 더 이상 과거의 '학습효과'에 기댈 수만은 없는 이유입니다.

서울시는 SBS의 보도가 나간 뒤 정밀 분석에 들어갔다고 합니다. 원인 분석팀을 투입하고 홍제 고가차도 철거를 더 앞당겨 진행하기로 했습니다. 또 가로변정류소를 이용하던 버스들이 버스 중앙차로로 이용할 수 있도록 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습니다. 아쉬운 건, 만일 애초 중앙차로를 만들기 전부터 정밀히 분석했다면, 이렇게 시민들의 불만이 쇄도할 리는 없었을 겁니다.

지자체가 정책을 검토할 때 가장 중요한 것 가운데 하나는 '과거의 선례'입니다. 그리고 그 '학습효과'에 기대어 정책의 효과를 전망하기도 합니다. 당연한 방법론입니다. 하지만 과거의 반응과 현실 적용은 별개의 문제이기도 합니다. 버스 중앙차로에 대한 반응이 좋다고 해서 무작정 확대하는 것이 얼마나 비효율적인지, 의주로의 사례가 여실히 보여주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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