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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일본 올해의 10대 뉴스…"잊고 싶은 최악의 한 해"

[취재파일] 일본 올해의 10대 뉴스…"잊고 싶은 최악의 한 해"

일본 언론사도 연말이 되자 올해의 뉴스를 선정해 발표하고 있습니다. 대부분 기억에 뚜렷이 남는 뉴스지만, '아, 그런 일도 있었지'라며 새삼스럽게 느껴지는 경우도 있더군요. 여느 해나 마찬가지겠지만, 올해 일본은 참 다사다난했습니다. 교도통신과 요미우리신문이 선정한 올해의 10대 뉴스를 중심으로, 도쿄 특파원으로서 '일본이라는 취재현장'에서 제가 가졌던 생각과 느낌을 정리해보겠습니다.

올해 일본의 최대 뉴스는 역시 '동일본 대지진과 후쿠시마 원전사고'입니다. 교도통신 선정 10대 뉴스의 단연 첫 번째이고, 관련 뉴스인 '원전 정지에 따른 제한송전과 절전'(6위)와 '하마오카 원전 가동 중지'(7위)도 10대 뉴스에 올랐습니다. 관련뉴스를 따져보면 올해 일본 전체 국내뉴스의 절반 이상, 아니 70% 정도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입니다. '제 2차 세계 대전 패전 이후 최악의 위기'라고 표현할 정도로 일본 사회를 뿌리부터 뒤흔들었습니다. 일본 언론은 그 동안 제 2차 세계 대전을 기점으로 '전전(戰前)'과 '전후(戰後)'로 시기를 구분해왔는데, 앞으로는 대지진 이전과 이후로 나눠야된다는 말이 나올 정도입니다.

저도 개인적으로 지진 후의 일본은, 제가 전에 알고 있던 일본과 너무나 다르다는 생각을 종종 하고는 합니다. 많은 일본인들이 겉으로 드러난 이상의 충격을 받았고, 사회 전반에 활력이 떨어진 것이 확연합니다. 방사능 오염은 여전히 현재진행형으로, 일본 재건의 발목을 붙잡고 있습니다. 일본이 서일본과 동일본으로 나뉘어졌다는 우울한 이야기도 나옵니다. 이 미증유의 사고로 많은 일본인들에게 올해는 정말 잊고 싶은 최악의 한 해로 기억되고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뉴스의 무게 면에서 1위에 비해 상당히 떨어지지만, 교도통신 올해의 뉴스 2위는 총리 교체입니다. 요미우리신문 조사에서도 5위입니다. 집권 민주당의 간 총리에서 같은 당의 노다 총리로 바뀌었죠. 그런데 저에게는 이 뉴스가 2위라는 것이 다소 의외였습니다. 일본인들이 정치에 그렇게 관심이 많은 것도 아니고 최근 총리가 1년도 채 안 돼 자주 바뀌었는데, 이 뉴스가 일본인들에게 얼마나 크게 느껴졌을까 싶었습니다. 더욱이 노다 총리는 간 내각에서 각료를 하고 있었고, 지명도도 그렇게 높지 않은 인물이었는데 말입니다.

제 생각입니다만, 정권 교체를 이루고도 지리멸렬한 집권 민주당에 대한 실망, 더 나아가 일본 정치체계에 대한 염증과 반대로 강력한 리더출현에 대한 갈망이 포함된 뉴스가 아닌가 싶습니다. 최근 여론조사에서 상당수 일본인들이 현재의 국회 이원제(상원 참의원, 하원 중의원)를 일원제로 바꾸고, 총리도 직선제로 바꾸고 싶어 하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일본의 '되는 것이 하나도 없는' 정치를 보면, 그 마음이 저도 이해가 됩니다.

               

다음 화제의 뉴스는 일본 여자 축구 대표 팀의 극적인 월드컵 축구 우승입니다. 교도 통신에서는 세 번째, 요미우리신문에서는 두 번째 올해의 뉴스였습니다. 우리에게는 기억에도 희미한 뉴스지만, 일본에서는 '나데시코(패랭이꽃으로 강인한 일본여성을 가리키는 말로 쓰임) 재팬'이라는 애칭으로 전국적인 신드롬을 일으킨 뉴스였습니다. 세계의 강호들을 연파하고 결승에 올라 지금까지 한 번도 이겨본 적이 없는 '절대 천적' 미국을 물고 늘어져 연장전에서 이긴 스토리가 상당히 극적이었습니다. 말 그대로 일본 열도가 들썩였고, 그 동안 비인기 종목의 설움을 곱씹었던 대표 팀 선수들은 하루 아침에 영웅대접을 받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승까지의 과정이 아무리 드라마틱했다고는 하지만, 저는 사실 일본이 이 뉴스에 과도할 정도로 '집착'(?)한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습니다. 그리고 약간 딱한 마음이 드는 것도 사실입니다. 일본에서 올해는 너무 밝은 뉴스가 적었기 때문에 이 뉴스가 부각되는 것이 아닌가 싶어서 말입니다. '유쾌 상쾌 통쾌한' 뉴스가 워낙 없다보니 지진과 방사능 같은 우울한 뉴스의 홍수 속에서 상대적으로 더 밝게 빛나는 것처럼 느껴지고, 또 많은 일본인들이 무의식적으로 의미를 과장되게 받아들이려 애쓰는 것처럼 보여 약간 안쓰럽습니다.

기록적인 엔고와 노다 총리의 TPP(환태평양 경제동반자 협정)참여 선언도 10대 뉴스에 선정됐습니다. 해외 10대 뉴스에 포함되기는 했지만, 태국 홍수로 일본 기업의 피해가 심각했다는 뉴스도 '심각한 경제 위기'라는 맥락에서 함께 포함시켜도 될 같습니다. 우리 경제하고도 상당히 밀접한 뉴스로, 반사이익을 거둔 측면이 있습니다. 특히 엔고와 태국 홍수는 대지진으로 엄청난 타격을 받은 일본의 기업들에게 치명타가 된 것이 사실입니다. 노다 총리가 정치권의 거센 반발에도 불구하고 전격적으로 TPP 참여 선언을 한 것도, 그만큼 다급해진 경제 위기의식의 표현이라고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이밖에 오자와 전 민주당 간사장 강제 기소나 하시모토 전 오사카 지사의 지역 정당 부상, 스모 대규모 승부조작 사건, 태풍 피해, 도쿄 스카이트리 634m 도달, 일본 아날로그 TV 방송 종료 디지털 전환 등이 10대뉴스에 선정됐습니다.

이 가운데 개인적으로는 우익성향의 하시모토 전 지사의 정치적 영향력 부각이 가장 염려스럽습니다. 희망과 활기를 잃어버린 일본인들의 마음을 우익성향의 포퓰리스트들이 달콤한 말로 파고들지 않을까 상당히 꺼림칙합니다. 더욱이 일본도 우리처럼 내년에 대규모 선거를 치룰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어, 현실 정치에서 이들의 영향력이 커지지 않을까 걱정됩니다. 그리고 이는 한국과 일본 관계에 부정적일 것 같습니다. '길(吉)'보다는 '흉(凶)'이 많아 보이는 내년 한일 관계, 기우로 그치길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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