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SBS 뉴스 상단 메뉴

[취재파일] 광화문 광장의 택시 질주…도대체 왜?

[취재파일] 광화문 광장의 택시 질주…도대체 왜?

어제(29일) 새벽, 한 택시가 서울 광화문광장에 오른 뒤 광화문 역사로 통하는 지하보도까지 질주한 사고가 있었습니다. 다행히 인명피해는 없었고, 공식적인 재산피해도 보도블럭 2개 파손이 전부였습니다. 그런데 사고 소식을 접한 처음부터 끝까지 도대체 이 사람이 왜 들어갔을까가 궁금했습니다. 이 부분이 확인되지 않아 의문의 질주로, 광화문 광장 질주의 미스테리로 남을 것 같았습니다.

지난 2009년 8월, 광화문 광장 개장 이틀만에 택시가 광장 안으로 20여미터 질주해 들어갔던 사고의 원인은 비교적 명확했습니다. 택시가 차선을 변경하다 뒤에서 달려오는 승용차에 차량 옆쪽이 부딪치면서 앞으로 튀어나갔고 그 힘에 의해 택시가 광장 위로 올라가게 됐던 겁니다. 또 당시에는 광장과 도로를 막는 안전장치인 울타리가 설치되어있지 않아 쉽게 올라갈 수 있는 구조였습니다.

그런데 이번 사고 당시에는 대부분 큰 벽돌 화단으로 구성된 울타리가 광장에 설치되어 있었고, 횡단보도 부분만 올라갈 수 있었는데 의도하지 않고서는 올라가기 힘든 구조였습니다. 경찰은 가장 먼저 생각할 수 있는 음주 부분에 주목했습니다. 택시기사가 음주 측정기를 입에 대고 힘껏 불었지만 수치는 전혀 나오지 않았습니다. 경찰이 처음 당황한 순간이었습니다.

이후 택시기사와 조사를 계속 진행했고 그가 횡설수설 말을 하고 눈의 촛점이 흐린 듯한 모습을 본 경찰은 마약 투약 여부를 의심했습니다. 경찰서 마약팀이 측정 도구를 가지고 교통사고조사계에 올라오는 이례적인 풍경이 펼쳐졌고, 여기서 결론이 날 듯 했습니다. 하지만 약물 검사 결과는 음성. 전혀 마약을 하지 않았다는 겁니다. 경찰은 여기서부터 머리를 싸매기 시작했습니다. 졸음 운전, 정신 이상 등 여러가지 가능성이 제기됐지만 그 어떤 것도 딱 떨어지지 않았던 겁니다.

경찰서에 도착해 사고를 낸 택시기사와의 인터뷰를 진행했습니다. 경찰이 말한대로 대화가 순탄치는 않았습니다. 어떻게 하다가 그렇게 되신 건가요? 몰라요. 조신 것은 아닌가요? 네. 그 당시 기억이 전혀 없으세요? 네. 야간 근무 하셨으면 졸려서 그러신 것 아닌가요? 아니요. 그런 거 아니예요.

순간 이 택시기사가 당시 백내장 수술을 앞두고 있다는 취재 내용이 떠올랐습니다. 눈 수술 앞두고 있으시다던데 불편하셨거나 그런 건 아닌가요? 못 보고 들어가신 건지..? 아니요. 그런 건 없어요. (사실 사고 당시는 어두운 시간이었기 때문에 백내장으로 크게 불편하지는 않았을 겁니다. 또 인터뷰를 진행한 시각은 낮이었는데 당시에도 그다지 눈을 불편해 하는 기색도 아니었습니다.)

정말 아무런 생각도 안 났던 건지 질문을 계속했습니다. 사고 당시엔 경찰에 뭐라고 하셨어요? 글쎄요. 잘 모르겠는데요. 그 당시 기억이 전혀 안 나세요? 그렇죠. 기억이 끊기셨어요? 그렇죠. 언제부터 기억이 나세요? 전혀 기억이 없어요. 경찰서 올 때까지도요? 네.

계속 아무런 기억이 없다는 택시기사. 그러면서도 짧게 조금은 횡설수설 답하는 그였지만 순간 순간 이상한 점이 발견됐습니다. 속도는 안 빨랐죠? 네 (당시 기억이 안 난다면서 속도는 빠르지 않았답니다.) 어제 몇시부터 일 하셨어요? 음....여섯시요. 거기가 예전에 도로여서 착각해서 가신 것은 아닌가요? 아니에요. ( 기억이 안 난다면서 당시에 착각하지 않았다는 주장도 하는 겁니다.) 조셨어요? 아니요. (몰라요가 아닌 아니라는 대답들입니다.)

횡설수설 답변하는 부분도 많았습니다. 가끔 가물가물 하세요? 네. 치료는 받으세요? 그런 건 없어요. 평소에도 기억이 없으신 적 있으세요? 아니요. 그런데 오늘 일만 기억이 안 나세요? 네. 그런데 조시지는 않으셨다고요? 네. 기억이 안 나신다고 하셨는데, 깜빡 조셨는데 기억을 못하시는 걸 수도 있잖아요? 그렇죠. ( 졸지 않았다는 말이 번복됩니다.) 

백내장 수술 부분도 조금은 이상합니다. 수술까지 받아야 하는 사람이 전혀 불편이 없었습니다. 백내장이시면 지금도 힘드실텐데요? 아니요. 전혀 안 힘드세요? 네. 하늘도 보실 수 있고요? 네. 마지막으로 물어봤습니다. 혹시 거짓말을 하고 있는 건지. 혹시 벌 받을까봐 그렇게 모르겠다고 대답하시는건가요? 아니에요. 그런 거 없어요.

더 많은 질문과 답변이 오고갔지만 '질주의 이유'는 점점 더 미궁 속으로 빠져 들어가는 듯 했습니다. 주변 취재를 시작했습니다. 이 택시기사는 정신 병력은 없었습니다. 택시기사 일은 1년 반 정도하다가 1년 전쯤 음주운전으로 면허가 취소됐고 지난 15일에 재취득해 일을 다시 시작한 상황이었습니다.

주변 택시기사들은 이 기사가 평소에 상당히 친절하고 성실해서 손님으로부터 칭찬 전화도 자주 받는 사람이었다고 설명했습니다. 지금은 다시 택시 일을 시작한 지 열흘도 채 되지 않아 모르겠지만, 예전에 함께 일하는 동안 어떤 정신 이상 징후도 발견하지 못했다고 설명했습니다.

이 택시기사의 어머니는 그가 부인과 이혼한 뒤 자신과 딸을 데리고 함께 살았는데, 음주운전으로 일을 쉰 지난 1년 동안 말이 횡설수설하는 게 늘긴 했다고 설명했습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특별한 정신 이상 징후가 있었던 것은 아니었습니다.

도대체 이유가 뭘까. 만약 광장에서 누군가를 해할 목적이었다면 사람이 훨씬 많은 낮에 질주를 했겠지요. 또 사회의 불만이 표출된 거라면 뭐라도 부쉈을 걸텐데 그런 것도 아니었습니다. 그 사이 경찰은 고심 끝에 그가 약한 정신적 이상이 있는 것으로 잠정 결론을 내렸습니다. 하지만 뭔가 이상했습니다. 택시 회사에서 파악한 사고 경위는 어떻게 될까. 회사를 수소문해 찾아가 봤습니다.

회사 관계자는 먼저 차량 출고시 그가 음주는 전혀 하지 않았다고 밝혔습니다. 술 냄새가 조금이라도 나면 차량 열쇠 자체를 주지 않는다는 겁니다. 또 정신 이상보다는 평소 성격이 내성적이라고 답했습니다. 단지 부인과 이혼한 뒤 음주운전으로 면허가 취소되면서 일년여 동안 집에서 지내면서 더욱 내성적인 성격으로 변한 것 같다고 덧붙였습니다. 지능에 문제가 있었다면 어떻게 새로 면허를 취득했겠느냐며 그 부분에 대한 추측에도 부정적이었습니다.

그런데 한참을 얘기 나누다 실마리가 나왔습니다. "아침에 야간당직자한테 전화가 왔었답니다. 내가 길이 헷갈려서 잘못 들어가서 사고가 났었다고 그 전화는 왔었대요. 우리 기사가 야간당직자한테 그런 전화가 왔었대요." "그 전에는 그 길이 가는 길(차도)이었는데, 거기로 가도 되는 줄 알고 갔다고 합니다. 찻길로 착각을 했나봐요." "교보문고 앞에서 지하차도 앞에서 세종문화회관으로 가게 되어 있었잖아요. 지금은 그게 없고, 해치마당 만들어서…." "그러더니 다시 연락왔을 때는 아무 것도 기억이 안 난다고 하더라고요."

여기서 '의문의 질주'의 이유를 정리할 수 있었습니다. 결국 차도인 줄 알고 잘못 들어갔을 가능성이 가장 높은 겁니다. 그렇다면 왜 기억이 안 난다고 할까요? 이 질문에 대해서는 여러가지 가능성이 있겠지요. 그에게 물어봤듯 형사 처벌을 받을까봐 두려워서일 수도 있고, 혹시 자신의 큰 과실로 남을 경우 겨우 다시 시작한 택시일을 또다시 못하게 될 수 있다는 두려움일 수도 있습니다. 아니면 사고의 충격으로 인해 잊을 걸 수도 있겠습니다. (실제로 사고 후 찾아오는 기억상실증이 그 사고 고통을 잊기 위해 찾아온다는 연구 결과도 있습니다. )

물론, 교대 시간이 다가와 어서 회사로 돌아가야 했던 택시기사는 우회전만 되는 길에서 좌회전을 하고 싶어서 광화문 광장을 통째로 통과한 뒤 반대쪽 차선에 도착한 것으로 생각했다는 가능성도 남아있습니다. 하지만 그 경우도 길을 잘못 봤다는 것으로 귀결됩니다.  광화문 광장을 질주해 지하보도까지 들어간 '엽기 택시'. 길을 착각해 잘못 들어가 사고가 난 것으로 보이지만 정확한 답은 모르쇠로 일관하고 있는 바로 그 택시기사만이 알고 있을 겁니다.

Copyright Ⓒ SBS.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재배포 및 AI학습 이용 금지

스브스프리미엄

스브스프리미엄이란?

    많이 본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