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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수원 주유소 세차장 폭발, 누구 책임인가?

유사휘발유 팔아서 이득 못 남기게 만들어야

[취재파일] 수원 주유소 세차장 폭발, 누구 책임인가?

"죄송한데요, 사망자 명단에 000가 있나요?"

24일 수원 주유소 세차장 폭파 사건 현장. 피해자 가족인 모양입니다. 초등학생으로 보이는 아들 손을 꼭 붙잡고 있었습니다. 정장을 입고 취재수첩을 들고 있는 제 모습에, 경찰 관계자인 줄 착각하신 모양입니다. 아쉽게도, 그 이름이 명단에 있었습니다.

"예, 있습니다."
"어머, 어떻게 해…."

그리고는 흐느끼기 시작합니다. 기자는 사고 현장에서 절대로 냉철함을 잃어서는 안 된다고 교육을 받았고, 또 그런 기자가 되어야 한다고 누차 되뇌어 왔지만, 마음이 착잡해 지는 건 어쩔 수 없나 봅니다. 사건 현장을 다니면서 유족 취재도 많이 해봤지만 이렇게 당사자에게 첫 비보를 전한 것은 처음이었습니다. 이분 말고도 세 명의 고귀한 목숨이 희생됐습니다.

왜 이런 참사가 났을까요. 사고의 정확한 원인이 밝혀지기까지 어느 정도 시간이 걸릴 겁니다. 다만 유사 휘발유를 제조하다 사고가 난 것으로 굳혀지는 분위기입니다. 세차장 옆 주유소 바닥 부분에 유사 휘발유를 보관한 지하 비밀 탱크가 있었고, 이를 연결한 배관을 통해 유증기가 세차장 지하 기계실로 유입되면서 폭발이 일어났다는 겁니다.

어느 사건이든 원인 분석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책임 소지'일 겁니다. 책임자를 빨리 찾아내라는 시민들의 요구도 있을 테고, 실질적으로는 보상 문제와도 관련이 있기 때문입니다. 일단 유사 휘발유 때문에 이런 일이 생겼다고 결론이 나면, 분명 그 책임은 주유소 사장에게 돌아갈 겁니다. 경찰은 사고가 난 다음 날 주유소 사장 권모씨에게 출금 조치를 내리고 체포해 조사를 벌였습니다.

               



하지만 마냥 주유소 사장에게만 돌을 던지고 싶진 않습니다. 그를 비호할 의도는 추호에도 없습니다. 다만 유사 휘발유로 좀 더 많은 이문을 남기려 했던 사장의 개인적 욕심 외에도 여러 구조적 문제점들이 실타래처럼 얽히고설켜 있는 까닭입니다.

언론에 알려진 대로 사고가 난 주유소는 2009년과 2010년 유사석유를 판매하다 수원시 단속에 2차례나 적발됐습니다. 2번이나 걸렸으면서 왜 또 팔 생각을 했을까요. 법이 만만했기 때문입니다. 현행 석유 및 석유대체연료사업법은 1년 이내, 3차례 유사석유 판매 행위가 적발돼야 등록취소 처분을 받도록 규정하고 있습니다. 2차례 걸리면 과징금만 물면 될 뿐, 영업에 지장이 없다는 얘기입니다.

현장에서는 유사 휘발유를 담을 5만 리터짜리 비밀탱크가 발견됐습니다. 불법을 저지르기 위한 일종의 투자비용입니다. 또 1년에 2차례만 걸리면 영업에 지장이 없으므로 적발될 때 물게 될 과징금도 투자비용에 속할 수 있습니다. 그럼 이 투자비용과 유사 휘발유 판매로 인한 수익을 따져 계산해 보고 업주들은 결론을 내릴 겁니다. 이 주유소 사장은 '유사 휘발유를 계속 만들어 파는 게 이익'이라고 판단을 했겠지요. 그리고 그 판단은 돌이킬 수 없는 참사를 빚어냈습니다.

실제 많은 업주들이 이런 법의 맹점을 악용해 영업을 계속하는 사례가 빈번하다고 합니다. 결국 유사 휘발유와 관련된 규정이 더욱 강력했거나, 사후 지도 감독 규정이 있었다면 이런 일은 없지 않았을까요. 정말 아쉬운 대목입니다.

사건 직후 한국석유관리원이 유사 휘발유에 대한 관리 감독을 강화하겠다고 밝혔습니다. 산업용 내시경이나 전파탐지기 등 첨단 기기를 이용하겠다는 대책도 내놨습니다. 경찰도 집중 단속에 들어간다고 합니다. 소 잃고 외양간 고치지 말아야 한다는 진부한 속담이 떠오르기는 하지만, 지금부터라도 유사 휘발유로 이문이 남지 않는다는 것을 확실하게 보여줬으면 좋겠습니다. 지금으로선 또 다른 참사를 막을 수 있는 유일한 대안이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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