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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누가 이 여인들에게 돌을 던질 것인가

길거리 싸움에서 이웃의 현실을 보다

지난주 목요일(22일) 인천 남동구의 한 대로를 지나던 김상경 씨 눈에 이상한 장면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40대로 보이는 여성이 한 할머니를 윽박지르면서 가방을 빼앗으려고 하고 있던 겁니다. 평소 DSLR 카메라를 가지고 다니면서 사진과 영상 찍기를 좋아하던 김 씨가 이 상황에 렌즈를 들이댔습니다.

(촬영된 영상은 23일 8시 뉴스에 나온 대로 입니다. ※ 23일 SBS 8뉴스 리포트 보기: 생활정보지 몇 장 때문에…할머니·여성 실랑이)

여성은 생활정보지 회사 관계자로 추정됐습니다. 할머니가 가방에 생활정보지 5부를 한꺼번에 챙겨 가져가는 것을 목격하고, 할머니를 쫓아가 이를 회수하는 과정에서 갈등이 생긴 겁니다.

이 과정에서 여성이 자신보다 한참 나이가 많은 할머니를 나무라며 심한 말을 쏟아냈습니다. 뉴스를 보신 분들은 어떻게 젊은 사람이 노인에게 그렇게 심한 말을 할 수 있는지 분개한 분들도 있을 겁니다. 하지만 제가 리포트를 통해 말하려했던 핵심은 '패륜'만은 아니었습니다.

(이 여성은 "광고지에 광고를 내는 사람도 없는 돈 쪼개 먹고 살려고 하는 서민들이다. 그런데 그걸 그렇게 가져가 버리면 그 사람들도 피해를 보는 것 아니냐"고 했습니다. 맞는 말입니다. 그리고 실제 무가지라도 여러 부를 한꺼번에 가져가면 절도죄에 해당한다는 대법원 판결도 있었습니다.)

거리에서 5분 남짓 일어난 이 실랑이는 '패륜' 이상의 것을 말해주고 있었습니다. 남루한 행색의 할머니가 공짜로 나눠주는 생활정보지 5부를 몰래 가져가고, 이를 되찾기 위해 거리에서 악을 써가며 할머니 가방을 뒤져야했던 40대 여성의 모습에서 어려운 우리 이웃의 상황을 그대로 보여준다고 생각했습니다.

요즘 폐지 가격은 1킬로그램에 170원 정도 합니다. 고물상에 가서 직접 확인했더니 일간신문 보름치 정도를 모아야 1킬로그램이 나오더군요. 할머니가 가져간 생활정보지 5부는 채 200원도 받을 수 없는 양이었습니다. 그걸 가방에 우겨넣으면서 할머니는 어떤 생각을 했을까요.

좁은 골목길이 미로처럼 겹친 동네에서 저는 폐지 할머니들을 자주 만납니다. 허리도 곧게 펴지 못하는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바퀴 두 개 달린 손수레에 박스나 신문지를 모으면서 골목길을 하염없이 돕니다. 개중에는 소일거리로 나온 분들이 있을 것이고, 정말 라면 하나 살 돈을 벌기 위해 나온 분도 있을 겁니다. 목적이 무엇이든 우리 어머니, 아버지들이 거리에 내몰리고 있는 것만은 분명한 사실입니다.

폐지 줍는 노인들이 늘다보니 경쟁도 치열합니다. 리어카로 폐지 수집해 손자들 교통비 대주고 있다는 화곡동 장천오 할머니 설명을 들어보면 상황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아휴 사람이 어떻게 많은지, 박스 하나 보면 두 사람, 세 사람 앞에 뛰어가요. 박스도 막 훔쳐가고…. 나도 어제 리어카에다 박스를 좀 넣어뒀다가 잃어버렸는데 기분이 몹시 나빠요. 그래서 그런 사람 보면, 나 직접 잡으면 나 경찰서 넘기고 싶어요. 솔직히…."

지난 2월 화곡동에선 같은 폐지를 차지하려던 노인 2명이 대로에서 다투다가, 1명이 차로로 떠밀려 내려갔다가 트럭에 부딪혀 중상을 입은 사고가 있었습니다. 하마터면 목숨을 잃을 뻔한 아찔한 사고였습니다. 이 일을 계기로 폐지 줍는 노인들의 실태를 조명하는 기사도 여럿 나왔지요.

이 사안을 취재하면서 결국은 노인복지, 노인 일자리 문제가 핵심이라는 생각을 해봤습니다. 아직 육체적으로 건강하고 일도 할 수 있는데, 어느 곳에서도 불러주지 않는 지금 상황에서는 폐지 줍는 노인들이 계속 늘어날 수밖에 없습니다. 노인들에게 저임금이라도 어느 정도의 소득을 보장해주는 일자리를 마련해주는 대책, 인천의 한 대로에서 일어난 싸움이 우리에게 남긴 숙제가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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