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SBS 뉴스 상단 메뉴

[취재파일] 시속 20km 초과, 당신은 과속 자전거

자전거, '여가'가 아니라 '생활'이 되어야

[취재파일] 시속 20km 초과, 당신은 과속 자전거
2년 전입니다. 직장인 4년차. 불현듯 아무리 바빠도 운동은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뭘 할까 고민을 하다 자전거를 한 대 구입하게 됐습니다. 무언가를 새로 시작한다는 흥분 때문인지 사던 날 곧바로 한강 자전거 도로로 나갔습니다.

한 시간 정도 탔을까. 갑자기 뒤쫒아 오던 열 명 정도의 동호회 분들이 경적을 울리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는 “빨리 가요! 빨리! 혼자 타요?”라고 소리를 쳤죠. 갑작스런 상황에 결국 균형을 잃고 넘어지고 말았습니다. 헬멧을 썼는데도 충격 때문인지 한동안 정신을 차리지 못했습니다. 온 몸이 멍 투성이. 찢어진 면바지에 피가 흥건히 묻었습니다.

문제는 그분들의 태도였습니다. 분명 그 분들은 제가 넘어진 줄 알았습니다. 넘어지는 순간 그분들이 놀라는 소리를 들었거든요. 하지만 멈춰서서 “괜찮냐”고 말 한 마디 건넨 사람이 없었습니다. 그냥 그대로 갔습니다. 몸 아픈 건 둘째 치고, 그 분들이 너무 괘씸해 밤잠을 설쳤을 정도였습니다.


물론 이런 것들은 한낱 변명에 불과합니다. 결코 면죄부를 줄 수는 없습니다. 과속 자전거에 대한 취재는 이렇게 속도에 둔감하게 된 제 자신에 대한 처절한 반성(?)에서 시작됐습니다.



한강 자전거 도로의 제한 속도는 시속 20km입니다. 취재를 하면서 느낀 거지만 아는 사람보다 모르는 사람이 더 많았습니다. 설령 알더라도 대부분 라이더들은 “그게 현실적이지 않다”고 입을 모읍니다. “갑자기 뛰어나오는 보행자가 문제다”, “시속 20km로 엄격히 제한하면 누가 자전거를 타냐”는 등의 반응이었습니다. 저도 사람인지라, 계속 그 분들의 말을 듣다보니 고개가 끄덕여지기도 합니다.

하지만 피해 사례들을 모으다보니 그렇지가 않았습니다. 사실 한강 자전거 도로는 ‘사고 도로’로 유명합니다. 이건 대부분의 라이더들이 인정하고 있는 사실입니다. 올해 초에는 사망 사건도 있었습니다. 한 구급 요원의 말로는, 알려지지 않아서 그렇지 대형 사고가 빈번하게 발생한다고 하더군요. 다만 라이더들은 그 책임을 보행자나 어린이, 애완동물 등 때문이라고 주장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틀린 말은 아닐 겁니다. 보행자가 신경을 쓰면 괜찮았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갑자기 뛰어나오는 어린아이에게까지 그 책임을 물을 수가 있을까요. 더구나 일부 구간에서는 보행자와 라이더의 구분이 모호한 곳도 있습니다. 시민 공원을 끼고 있는 자전거 도로는 자전거 도로에 자전거보다 사람이 많기도 합니다. 무조건 보행자에게 책임을 지울 수는 없습니다. 예방 차원에서 라이더들이 속도를 줄이기만 한다면 보행자와 부딪혀도 부상의 정도는 훨씬 덜할 겁니다.

물론 취재에 사용한 것처럼 스피드건을 설치해 시속 20km로 규제하고, 벌금을 무는 방식은 현명한 방법은 아닐 겁니다. 경제적인 비용도 만만치 않고, 라이더들의 반발도 클 테니까요. 더구나 장장 70km 길이의 자전거 도로를 일일이 통제하는 것 자체도 불가능 합니다. 다만 눈으로 확연히 보이는 과속 라이더들, 그래서 시민들에게 불편을 주는 분들에 대한 계도는 확실히 필요해 보였습니다.

뉴스에서 인용하기도 했지만, 한 소방 공무원이 “한강 시민공원은 레이싱장이 아니라 공원이다"라는 말을 했습니다. 한강 자전거 도로가 시민 공원을 끼고 있는 특성상 사람은 북적일 수밖에 없습니다. 강변의 지형을 그대로 따라가다 보니 급 커브길도 많고요. 한강 자전거 도로는 본질 자체가 속도를 보장하기 위해 만들어진 공간이 아니란 얘기입니다.

아직 우리 사회에서 자전거는 ‘여가’에 가깝습니다. 많은 분들이 짜릿한 속도감을 즐기면서 그간 쌓인 스트레스도 풀기 위해 자전거를 탑니다. 고가 자전거를 구입하는 인구가 급증한 것도 자전거를 여가 개념으로 이해하고 있기 때문이겠죠. 하지만 이제 ‘생활’의 개념으로 바뀌어야 할 때입니다. 일반 자가용 승용차처럼 말입니다. 속도를 즐기기 위한 레이싱카와 일반 승용차는 분명한 차이가 있습니다. 여가가 아닌, 생활 속에 자연스레 스며든 자전거 문화를 기대해 봅니다.
Copyright Ⓒ SBS.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재배포 및 AI학습 이용 금지

스브스프리미엄

스브스프리미엄이란?

    많이 본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