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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육상선수권 프레스센터의 황당한 한 순간

[취재파일] 육상선수권 프레스센터의 황당한 한 순간

27일(금) 저녁 7시. 대구 스타디움 메인 프레스센터 스피커를 타고 안내방송이 흘러나왔다.

"지금부터 경기장 보안검색이 실시됩니다. 스타디움 안에 있는 모든 사람들은 즉시 떠나 주시기 바랍니다."

세계육상선수권 개막을 하루 앞두고 전망 기사를 쓰느라 정신이 없던 400여 명의 전세계 취재진은 그다지 동요하지 않았다. 프레스센터 정문에 설치된 안내판에 아침부터 '저녁에 보안 검색이 있을 예정이지만 프레스센터는 정상 운영되니 일하는 데 지장이 없다'는 안내문이 붙어 있었기 때문이었다. 

잠시 후, 자원봉사자들이 사색이 된 얼굴로 나타났다. 방침이 바뀌어 지금 즉시 나가야 한다는 것.

당연히 기자들은 격렬하게 항의했다. 메이저 대회 하루 전날, 사전 예고 없이 메인프레스센터를 떠날 것을 요구하는 건 듣도 보도 못한 일이라고. 한국 기자들에게 자신들이 항의하는 모습을 꼭 찍어 방송해 달라는 외신 기자들도 많았다. 심지어 대구가 한국의 도시인 줄 알았는데 북한이었냐며 비꼬는 사람도 있었다. 

메인프레스센터 운영을 담당하는 자원봉사자 한 분이 한숨을 쉬며 말했다.

"외신들이 난리가 났다고 아무리 위에 설명을 해도 말이 통하지가 않아요. 내일 개막식에 오는 '높은 분' 경호실에서 막무가내로 몰아부친다네요."

대구시민들은 성공적인 대회를 위해 많은 걸 희생하고 있다. 텅빈 스타디움을 세계에 보일 수 없다며, 비싼 돈을 내고 평생 관심을 가져본 적이 없는 종목의 티켓을 구매한다. '새마을부녀회, 바르게살기, 산악회, 동향회, 취미클럽 등의 모임일자를 조정하여 경기일정에 맞춰서 경기장에서 모임을 갖도록 한다'는 웃지 못할 방침을 내놓은 시민 단체도 있다.

아침 8시에 출근해 밤 12시에 퇴근하는 자원봉사자들의 수도 미처 셀 수가 없을 정도로 많다. 그래서 지금까지 만난 모든 외국 선수와 미디어 관계자들이 빼놓지 않고 대구 시민들의 친절함에 감사를 표했다.   

적어도 '높은 분의 경호실' 때문에 멀쩡히 일하다 쫓겨난 어제 밤 7시까지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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