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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6년을 살고 60년을 기다린 여인

6.25전쟁 납북자, 그의 딸을 만나다

[취재파일] 6년을 살고 60년을 기다린 여인

6.25 전쟁 납북자의 딸을 만났습니다. 1950년 8월, 서울 남창동 자택에서 포승줄에 끌려 갔다는 당시 서른살의 하격홍 씨. 그의 막내딸 하영남 씨였습니다.

아버지가 그렇게 떠나던 그 때, 하영남 씨는 생후 4개월이었습니다.

스물일곱 살의 어머니는 세 딸과 그렇게 홀로 남겨졌습니다. 하지만 영영 홀로 남을 거란 생각은 하지 않았습니다. 떠날 때처럼, 꼭 그렇게 예고 없이 돌아올 거라고 어머니는 그렇게 굳게 믿고 살았습니다.

'집에 누가 왔다' 고 하면 바로 어머니는 '아버지가 왔나' 생각하시고는 버선발로 뛰어오셨을 정도였습니다. 어머니는 그래서 이사도 가지 않았습니다. 갓난아기였던 하영남 씨가 고등학생이 됐을 때까지도 어머니는 돌아온 아버지가 행여 집을 못찾을까봐, 남창동 그 동네를 떠나지 않았습니다.

어머니는 화장품이며, 각종 음식이며, 좌판 장사를 하면서 그 시절, 세 딸 모두 대학까지 보냈습니다. 그 역시 어느날 갑자기 돌아온 아버지가 보고 뭐라고 할까봐... 그래서 더욱 이를 악물고 열심히 길렀습니다. 돌아온 아버지에게 자랑스럽게 세 딸들을 보여줄 수 있도록.

외롭고 답답하고 슬프고 미칠 것 같은 그 마음을 어머니는 일기에 남겼습니다. 하영남 씨가 보여준 어머니의 일기... 한자, 한자에 남편에 대한 그리움이 묻어났습니다.

10년, 20년... 시간이 지나고... 어느덧 60년이란 세월이 흘렀습니다. 어머니는 아버지와 단 6년을 같이 살고 60년을 생사도 모른 채 살고 계십니다. 90살이 넘었을 아버지가 이제는 세상에 안 계시겠지, 그렇게 생각만 할 뿐입니다.

하영남 씨의 아버지 같이 6.25 전쟁 중에 납북된, 즉 전시납북자들이 10만 명이 넘는 것으로 정부는 추산하고 있습니다. 그 10만여 명의 가족들이, 저마다 하영남 씨 가족들과 마찬가지로 구구절절한, 가슴아픈 사연들을 지니고 있을 겁니다.

정부가 처음으로 이런 전시 납북자들에 대해 납북 피해를 공식 인정했습니다. 전후 납북자에 대해서는 보상이며, 진상 규명 등이 정부 차원에서 이뤄졌었지만 전시 납북자에 대해서는 그렇지 못했습니다. '납북'이란 것을 증명할 자료가 부족하다는 이유에서였습니다.

그 정신 없는 전쟁 상황 속에서 자기 발로 북한에 갔는지, 억지로 끌려갔는지 구별하기가 힘들다는 것이죠. 가족들은 가족을 한순간에 빼앗긴 것으로도 모자라, 가족이 월북했다는 오해까지 받으며 살아야 했던 것입니다.

이번에 납북자로 공식 인정된 사람은 55명. 10만 명에 비하면 정말 미미한 숫자입니다. 아직도 갈 길이 멉니다. 하지만 어쨌든 지금이라도, 60년이 지났지만 지금이라도 첫발을 내디뎠다는 것에 의미를 부여하고 싶습니다.

어떤 보상으로도 납북자 가족들의 아픔이 완전히 치유될 순 없을 겁니다. 그래도 이같은 정부 차원의 명예회복 작업이 시작된 만큼, 좀 더 속도를 내서 납북자들의 명예가 회복되고, 또 가족들에게도 작은 위로가 됐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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