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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독도에게 외로움을 허하라!

[취재파일] 독도에게 외로움을 허하라!

지난 2005년 일반인들의 독도 입도가 전면 허용됐다. 다행히 운 좋게도 독도를 취재할  기회를 얻었다. 드물게도 2박을 하는 영광까지 누렸다. 넓디넓은 동해바다에 우뚝 솟은 바위 언덕 두 개는 영토와 영해라는 개념을 떠나 그 모습만으로도 충분히 아름다웠다. 3시간을 넘게 스멀거리는 배멀미의 고통을 참고 견뎌낼만한 충분한 값어치가 있는 보물이었다.

독도를 향한 일본 정부의 삐뚤어진 짝사랑은 오래된 일이다. 신파도 반복되면 헛웃음만 난다더니 이미 오래전에 짜증 유발단계를 넘어섰다. 요즘에는 부쩍 몽니가 심해졌다. 아무래도 54년만에 민주당에 정권을 내준 보수정당 자민당의 못된 욕심과 무관치 않아 보인다.

지난달 일본 외무성은 공무원들의 해외 출장 시 대한항공의 이용을 한달 간 금지시켰다. 대한항공이 초대형 여객기인 A380 취항 기념 비행으로 독도 상공을 지나왔다는 게 이유다. 어차피 자국 비행기를 이용해왔지만, 국제적으로 유사한 사례를 찾아보기 어려운 유치한 제재 조치를 내렸다.

당시 일본 자민당은 외무성에게 강한 대응책을 요구했고, 심지어 한 의원은 정부 대책이 미흡하다며 국회에 출석한 외무성 직원의 얼굴에 컵에 담긴 물을 뿌려버렸다. 자민당은 추가적인 대응조치를 끊임없이 내놓으라며 들볶았고, 결국 우스꽝스런 민간항공사 이용금지 조치라는 게 만들어졌다.

한 달도 안 돼 자민당 의원 세 명이 울릉도를 가겠다며 기자회견을 했다. 무명에 가깝던 극우성향 의원들이 군불을 지폈다. 하지만 불길은 매섭게 타올랐다. 여행의 자유를 허락하는 대한민국이 어찌 이들의 방한을 막겠느냐는 외교부도 여론에 밀리기 시작했다. 입국 금지를 놓고 한참을 고민했다. 그래도 설마 막겠느냐는 의견이 많았지만, 결국 입국 금지조치까지 이르게 됐다. 설마 방문하겠느냐 예상했던 일본 의원들도 신이 나서 한국행 비행기에 올라탔다. 그리고 다음날 일본은 독도를 일본 땅이라고 표시한 방위백서를 발표했다.

잠잠하던 국내 여론도 뜨겁게 달아올랐다. 이재오 특임장관은 연일 강경 발언을 쏟아내며 일본 의원들을 내쫓아야 한다고 소리쳤다. 독도를 방문했고, 경비대 옷까지 입고선 날선 퍼포먼스를 선보였다. 독도를 너무나 아끼는 국민들은 또다시 필요 이상의 흥분감을 느껴야 했다.

일본 의원들도 돌아갔고, 방위백서 발표도 끝났다. 흥분도 가라앉았다. 그렇다면 한번 한바탕 소동의 결과를 따져보자. 냉정하게...

무명에 가깝던 일본의원 세 명의 얄팍하고 저열한 정치적 도발 때문에 대통령까지 나서게 됐다. 소 잡는 칼로 닭, 아니 병아리를 잡은 격이 됐고, 대통령의 말값이 헐값이 되버렸다. 대신 그들은 일본에 돌아가서 정치인생에서 단 한번도 겪어보지 못했을 스타급 대우를 받게 됐다.

자민당 간사장까지 그들을 비호하고 나섰다. 그들이 애걸하는 국민들의 표도 늘었으면 늘었지 절대 줄어들지 않았을 것이다. 딱 반나절 김포공항에 머물면서 비빔밥까지 시켜먹고 잘 놀다가 돌아간 결과가 그렇다. 경망스러울지 모르지만 주식투자에 빗대자면 일본 정치인들에게 독도는 수백%에 달하는 이익을 보장해 준 그야말로 대박주가 돼버렸다. 그것도 손만 댔다하면 이익이 나오는 화수분이다.



우리는 어떤가. 울릉도 방문 전부터 시민들을 듣기 거북한 뉴스를 전달받아야 했다. 김포공항에는 천명에 가까운 시위대가 몰려들어와 고춧가루를 뿌려대고 일장기를 찢어댔다. 분노를 삭이지 못하고 울분을 토하는 시위대가 가득했다. 정치인들은 이때다 싶어 잇따라 독도 마케팅에 열을 올리고 시민들은 흔들렸다. 정부에게 속 시원하고 강력한 대책을 내놓으라는 목소리는 더욱 커졌다.

최대한 독도 논란에 말려 들고 싶지 않은 정부지만 그렇다고 시민들에게 참으라고만 말하기도 겸연쩍다. 때문에 국제법적으로 이미 영토분쟁지역화가 돼 있는 상황에서 실효적 지배권을 강화하는데 아무런 도움도 되지 않는 방파제를 짓겠다느니 주민 숙소를 확장했다느니 하는 여론 달래기용 정책이나 내놓게 된다. 그러는 사이 국론도 분열되고 정치권도 갈등하고, 정부 내에서도 혼선을 빚어진다. 독도가 논쟁의 중심에 설 때마다 한판으로 찍어낸 듯 똑같은 모습이 이번에도 그대로 재생됐다.

독도는 외로워야 한다. 방파제를 짓고 건물을 올려봐야 제3국 사람들에게 독도는 분쟁지역일 뿐이다. 정치인들이 찾아가서 이벤트를 해봐야 역효과만 불러올 뿐이다. 하지만, 희망은 보인다. 국민들이 조금씩 독도 마케팅에 대해서 염증을 느끼고 있다. 과거처럼 민족의 투사, 항일 독립군의 이미지를 덧씌워보려고 애를 써도 이제는 한심한 시선으로 바라보는 사람들이 많아지고 있다. 바람직한 모습이다.

독도는 분명히 영토분쟁지역이다. 미국은 독도를 단 한번도 독도라고 부른 적이 없다. 그렇다고 다케시마로 부르지도 않는다. 그냥 '리앙쿠르 락'일 뿐이다. 독도의 국제적 인식 수준이 냉정하게 그렇다. 하지만, 우리가 실효적 지배권을 행사하고 있다는 것도 엄연한 사실이다. 그렇다면 이제는 독도를 영토분쟁지역으로 철저히 부각시키지 않는 전략적 사고가 필요한 시점에 왔다.

일본 의원들이 망언을 쏟아내도 무시하자. 울릉도에 가고 싶다면 포항에서 여객선 타고 울릉도로 보내주자. 아무 일없던 것처럼 조용히 보고 가게 하자. 그들이 무안할 정도로 평온한 모습을 보여주면 다시는 찾아오지 않을 것이다. 그들이 원하는 것은 독도가 아니라 우리의 흥분이고 소란이기 때문이다. 독도가 요란해질수록 국제사회 여론은 자기편이 더 늘어난다고 굳게 믿고 있기 때문이다.

이제 독도를 좀 쉬게 하자. 그게 독도를 지키는 길이요 아끼는 길이다.  속이 훤히 들여다보이는 일본의 정치적 쇼들은 이제 그냥 웃어넘길 때도 됐다. 통 크게 독도에게 외로움을 주자. 독도는 이미 우리 땅이다.

# 첨언. 그렇다고 독도를 놓고 수십 년째 부처간 불협화음이나 내고 있는 우리 정부에 면죄부를 주고 싶은 마음은 없다. 조용하기만을 바라는 외교부, 독도에 뭔가를 깎고, 세우기만 하면 될 거라는 시대착오적인 국토부, 여기에 독도 영유권을 강화하겠다며 내놓은 정책이 고작 사진전시회와 독도 앱 만들기 수준에 머물고 있는 교과부. 다들 칭찬받을 상황은 아니다.

다만,  한일 양국에서 동시다발적으로 벌어지고 있는 독도 사유화 마케팅과 퍼포먼스들이 먼저 꺼야할 급한 불이라는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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