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SBS 뉴스 상단 메뉴

[취재파일] 야신 김성근과 드라마

"나는 선수를 버리지 않는다"

[취재파일] 야신 김성근과 드라마

얼마전 SK의 허웅이라는 포수가 10년만에 1군 무대에 데뷔해 화제가 됐습니다. 허웅은 2002년 현대에 입단한 고졸 유망주였습니다. 하지만 김동수-박경완 등 대선배에 막혀 2군을 전전하다 군에 입대한 뒤 방출되고 말죠.

이후 호프집을 운영하며 홀로 훈련을 한 끝에 지난해 테스트를 거쳐 SK에 신고선수로 입단해 다시 프로가 되는 집념을 발휘했습니다.

그리고 2011년 7월 30일 한화전 6회 대수비로 포수 마스크를 씁니다. 10년만에 꿈에 그리던 1군 데뷔전이었습니다. 열정만 가득했던 비운의 야구인생에 땀의 열매를 맺은 겁니다. 물론 본인이 죽을 만큼 노력을 했겠죠. 아마 김성근 감독이 있었기에 가능했던 드라마였을겁니다. 왜냐구요?

김성근 감독은 예전에 이런 말을 했습니다.

"나는 선수를 버리지 않는다. 선수가 나를 버리면 버렸지... 아들을 버리는 아버지가 어디 있나?"

김성근 감독은 항상 선수를 아들에 비유하곤 합니다. 김 감독은 선수가 원하면 누구든, 언제든 받아 줬습니다. 그리고 항상 기회를 줬습니다. 김 감독에게는 모든 선수들이 주전이었고, 또 후보이기도 했습니다. 붙박이 주전도 만년 후보도 없습니다. 이것이 '벌떼야구'로 불리는 김성근식 야구인 것입니다.

SK에 처음부터 스타플레이어는 없었습니다. 누구나 노력하면 주전이 될 수 있었습니다. 10년간 1군 무대 한 번 밟지 못한 29살 고물(?) 신인 허웅이 감동적인 데뷔전을 가질 수 있었던 것도 김성근식 야구의 산물일 겁니다.

김성근식 야구의 산물을 좀 더 들여다 볼까요? 2002년 김성근 감독이 LG트윈스 지휘봉을 잡던 시절, 김 감독이 공들여 키우던 선수가 있었습니다. 바로 지금 SK의 선발을 맡고 있는 '큰 이승호'(등번호 37번)선수입니다.

김 감독은 당시 LG를 한국시리즈로 이끌며 역사에 남을 명승부로 펼치죠. 비록 이승엽과 마해영에게 홈런을 맞고 패했지만, 김응용 감독이 “야구의 신이 아닌가 싶었다”는 인터뷰가 화제가 되며 지금의 '야신'이 탄생한 순간이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김 감독은 한국시리즈 직후 구단과의 마찰로 결국 해임되고 맙니다. 이 때 김 감독의 마음 속에 깊은 아쉬움으로 남았던 서수가 바로 이승호 선수입니다. 2002년에는 단 2승 밖에 거두지 못한 투수지만, 김 감독은 이승호의 장래성을 높게 평가했거든요.

김성근 감독이 떠난 뒤 2003년 이승호는 최고의 전성기를 맞게 됩니다. 11승을 거두고 탈삼진(157개) 1위에 오르며 LG의 에이스로 거듭났습니다. 다음해에도 9승을 거뒀습니다. 하지만 조금씩 이승호는 약해졌습니다. 부상까지 겹치며 2008년에는 단 1승도 거두지 못했습니다.

결국 LG는 이승호를 버렸습니다. 2009년 LG는 SK에서 FA자격을 얻은 이진영을 거액에 영입하면서 이승호를 보류선수 명단에서 제외했고, SK 김성근 감독은 기다렸다는 듯 당시 33살짜리 노장 이승호를 데려왔습니다.

이적 첫 해 이승호는 3과 2/3이닝만을 던지며 승패 없이 7점대 방어율로 변함 없이 퇴물 같은 활약을 펼쳤습니다. 비전이 없어 보였습니다. 하지만 김 감독은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꾸준히 단련시켰고, 마침내 2010년 구원승을 거두며 3년만에 승리의 기쁨을 맛봤습니다.

그리고 2011년 35살의 나이에 당당히 선발로 돌아 왔습니다. 지난 4월 21일 무려 1,378일만에 선발승을 거뒀습니다. 올 시즌 6승 1패 방어율 2.11로 정상급 투수로 올라 섰습니다. 이승호는 제 2의 전성기를 맞고 있습니다.

김 감독은 나이 든 선수들에게 은퇴를 권유하지 않습니다. 원하는 순간까지 믿어주고 밀어주기 때문이겠죠. 그래서 퇴물 취급받던 선수들이 마지막으로 SK를 찾아와서 마지막 불꽃을 태우는가 봅니다. 최상덕(2009년 38살에 은퇴)이 그랬고, 가득염(2010년 41살에 은퇴)이 그랬습니다.

모두 떠날 때까지 SK 벌떼 마운드의 한 역할을 담당했고, 행복하게 스스로 은퇴를 선택했습니다. 올 시즌 박진만이 왔습니다. 삼성에서 후배 김상수에게 주전 자리를 내주고 설 자리가 없던 차였습니다. 박진만은 3할 2푼대 타율을 기록하며 제 2의 전성기를 맞고 있습니다. 올 시즌 팀이 치른 81경기 가운데 54경기를 뛰었으니 물론 붙박이 주전은 아닙니다. 그런데 후보라도 좋습니다. 언제나 기회가 있으니까요.

냉혹한 프로의 세계에서 기다리는 건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런데 김 감독은 말합니다. 감독은 선수를 만드는 거라고, 버리는 게 아니라고... 그리고...기다리는 건 시간을 버리는 게 아니라고...

Copyright Ⓒ SBS.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재배포 및 AI학습 이용 금지

스브스프리미엄

스브스프리미엄이란?

    많이 본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