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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모피' 패션쇼, 해? 말아?

[취재파일] '모피' 패션쇼, 해? 말아?

요즘 서울시는 '모피'로 곤욕을 치르고 있습니다.

모피를 사전에서 찾았더니, '털이 그대로 붙어 있는 짐승의 가죽'이라고 나옵니다. 털가죽이 사람에게 이용되는 짐승은 '모피수'라고 한다는데 양이나 담비 등을 예로 들고 있습니다.

곧 있으면 삼복더위가 닥칠 텐데 갑자기 무슨 모피타령이냐며 의아해 하시는 분들도 계실거라 생각합니다.

하지만 정말 모피 때문에 서울시는 난리입니다. 서울시는 지난주 목요일 기자들에게 대대적으로 보도자료를 뿌렸습니다. 이탈리아 브랜드인 '펜디'가 다음달 2일 서울 반포대교 남단에 지어진 인공섬 '세빛 둥둥'에서 패션쇼를 연다는 내용이었습니다.

'인공섬 첫 공식행사가 정해졌다',  '명품 브랜드 펜디사의 패션쇼다', '중국 만리장성 패션쇼 이후 또 한 번 세계가 주목할 패션쇼다', '한강을 널리 알리는 기회가 될 것이다' 라는 거창한 선전이 가득 담겨 있는 자료였습니다.

그동안 인공섬을 짓는 것에 대해 '환경오염 논란이다 돈 낭비다' 해서 서울시가 마음 고생이 심했는데, 이번 패션쇼를 통해 확실하게 홍보에 나선다는 거구나 싶었습니다.

그런데, 바로 이 부분. '모피도 선을 보인다'가 큰 문제가 됐습니다. 서울시가 모피 패션쇼를 연다는 기사가 여러 언론에 나가자 동물보호협회를 중심으로 반대 움직임이 커진 겁니다. 서울시 게시판에는 비난의 글이 쇄도했고, 여기저기서 목소리가 나왔습니다.

그러자 서울시가 또 다시 이상한 해결책을 내놓았습니다. "패션쇼를 해도 되긴 되는데, 모피는 빼고 하라"는 겁니다. 펜디사 측은 말도 안 되는 이야기라고 말합니다.



이번 패션쇼는 F/W (가을과 겨울) 신상을 선보이는 자리로, 털 제품이 전체의 절반이라는 겁니다. 모피를 빼고 나면 선 보일 게 없는데 무슨 수로 패션쇼를 하냐며 울상입니다.

서울시는 막무가내입니다.  모피를 안 빼면, 장소를 임대해 주지 않겠다는 겁니다. 패션에 문외한인 저도 궁금해져서 서울시에  '왜 갑자기 모피를 빼라는 건지' 물었습니다.

서울시는 "모피가 패션쇼에 포함돼 있는 줄 몰랐다. 알았으면 허가를 안 내줬을 것"이라고 말합니다.

세상에. 거짓말도 이런 거짓말이 있을까요? 보도자료에 아주 분명하게 '이번 패션쇼만을 위해 디자인 된 20여 점의 모피 한정 컬렉션을 선보인다'며  못을 박아놓고서는, 이제와서 모피가 포함된 줄 몰랐다고 하면 누가 믿겠습니까?

그래도 서울시는 모피는 안 된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습니다.

펜디측은, 이미 외신기자들을 포함해 천2백 명에 달하는 사람들의 호텔비용과 항공권 비용을 결제했습니다. 한강을 주제로 패션쇼를 연다며 사진도 모두 촬영했고, 보도자료도 다 내보낸 상태라고 합니다. 그날 무대에 서게 될 모델까지 모두 정해졌습니다.

예정된 패션쇼 날까지 2주밖에 남지 않았기 때문에 장소를 변경하는 것도 쉽지 않아서 서울시와 밑도 끝도 없는 협의만 계속하고 있습니다.

솔직히 저는 모피를 입어도 되는 건지, 안 되는 건지 잘 모르겠습니다. 모피로 만든 옷을 가지고 있는 건 아니지만,  쇼윈도에 걸려 있는 의상을 보면서 '예쁘다, 갖고 싶다' 생각을 해 본 적도 있습니다.

모피를 입는 일이 '법'에 어긋나는 것은 아닙니다. 누구는 모피를 입는 걸 좋아할 수도 있고, 누구는 싫어할 수도 있겠죠. 그렇기 때문에 모피 찬성론자와 모피 반대론자 사이에 누가 옳다, 누가 그르다 나눌 일은 아니라고 봅니다. 다원주의 세상에서 누구든 자신이 생각하는 바를 표현할 수 있다고 생각할 뿐입니다.

살아있는 동물의 가죽을 벗겨 인간이 입을 옷을 만드는 일이 옳지 않다고 믿는다면, 생각을 같이 하는 사람들과 뜻을 맞춰 시위도 하고 성명도 내는 활동을 할 수 있다는 얘깁니다.

모피에 대한 논쟁은 벌써 몇 해에 걸쳐서 계속되고 있습니다. 저희 회사 프로그램에서도 모피가 어떻게 만들어지는지 고발한 적이 있고, 지난 2007년 파리에서 열린 패션쇼에서는 나체의 한 여성이 무대 위로 올라가 "모피 반대"를 외친 적도 있습니다.

 하지만 서울시의 모피 논란의 본질은 모피를 입어도 되느냐, 아니냐의 문제가 아닙니다. 서울시가 '세빛 둥둥섬' 띄우기에 혈안이 돼서 패션쇼를 추진했다가 예상치 못한 비난이 일자 손바닥 뒤집듯 입장을 바꾼게 문제입니다.

실무진이 몇 차례 만나서 컬렉션에서 선보일 제품 사진까지 보여줬다는데(물론 모피가 들어있는) 안 된다는 서울시. 안 될 거면 진작에 안 된다고 해야지, 패션쇼 연다고 호들갑을 떨며 자료를 내 놓고서는 이제와서 안 된다고 하면 앞으로 어떤 기업체가 서울시와의 약속을 믿고 일을 추진할 수 있을까요?

저는 어떤 과정에서 이번 패션쇼가 이렇게 시끄럽게 된 것인지는 거울 보듯 명확히 알지 못합니다. 단지, 반대의 목소리가 커지자 '대권'을 준비하려는 시장님에게 혹시 누가 될까 싶어 화들짝 놀란 서울시 간부들이 입장을 바꾼 건 아닐까 의심할 뿐입니다.

과잉 충성을 하려다 보니, '특별제작한 모피를 선보인다'며 자신들이 직접 만든 자료조차 아니라고 둘러댔을 거라 추측할 뿐입니다. 결재 과정을 모두 거쳐서 나온 보도자료인데 몰랐다고 우겨대면, 검은색이 하얀색이 되나요?

보도자료 작성한 서울시 직원은 '신기'가 있어서 모피 제품이 포함된다는 걸 안 걸까요?

패션쇼는 열릴지 안 열릴지 아직 모릅니다. 펜디와 서울시가 협의를 하고 있다고는 하는데 워낙 입장이 평행선이다보니 쉽게 결론이 나지 않고 있습니다.

사실 서울시민 입장에서는 봐도 좋고 안 봐도 좋은 패션쇼입니다. 그러나 서울시의 이런 촌극은 정말 다시 보고 싶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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