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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마음으로 보는 연극을 아십니까?

시청각 장애인들이 펼치는 연극 '빵만으론 안 돼요'

[취재파일] 마음으로 보는 연극을 아십니까?

◆ 시각·청각 장애인들의 연극...상상이 되시나요?

연극이나 뮤지컬, 어떤 공연이나 마찬가지이겠습니다만,  관객들의 마음을 움직이게 하기 위해서 다양한 감각들이 동원되지요. 그 가운데서도 시각과 청각은 가장 핵심적인 감각입니다.

시각장애와 청각장애, 그것도 중복 장애를 갖고 있는 배우들의 연극이 언뜻 상상이 되지 않았던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었습니다. 배우들끼리 의사소통하기도 어려운데, 어떻게 연기를 하며, 볼 수도 없는데 무슨 수로 관객과 소통을 할 수 있을까?

아마 대부분 사람들이 이렇게 생각하실 겁니다. 보지도 듣지도 못하는 배우들은 적막한 암흑 속에서 연기를 하는 느낌이겠지요.

무대에는 북소리가 자주 등장합니다. 공기 중의 진동을 느끼며, 약속된 타이밍에 연기를 하는 것이지요. 배우들 간의 소통은 수화를 만지면서 이뤄집니다. 청각 장애가 있어 수화로 이야기를 해야 하는데, 그나마도 눈이 보이지 않으니, 수화를 만지는 겁니다.  70분 연극은 2년 여에 걸친 이런 복잡한 연습의 산물이지요.

◆ "불가능은 없어요"

이스라엘 극단 '날라갓(Nalaga'at)' 소개를 하지 않고 넘어갈 수가 없겠네요. 날라갓은 히브리어로 '만지다(Touch)'를 의미합니다. 오직 만지며 의사소통을 할 수 있는 이들을 상징하는 말이기도 하죠.

날라갓은 2002년 시각, 청각 장애가 있는 다양한 나라의 배우들로 구성된 세계 유일의 프로페셔널 시청각 중복장애인 극단입니다. 미국과 캐나다, 스위스, 지난해에는 영국 런던국제연극제에서 센세이션을 일으키기도 했지요. 이 극단의 예술감독 아디나 탈은 인터뷰 중에 이런 말을 했습니다.

"날라갓 극단과의 작업을 통해 인간 정신에 한계가 없고, 불가능이란 단어가 없고, 심지어는 하늘에 조차 경계가 없음을 느끼게 되었다."

연극이 끝나고 한동안 무대를 바라보던 한 여성에게 소감을 물었습니다. 맨 뒷자리 휠체어석에 앉아 있던 이 여성의 눈에는 이미 눈물이 맺혀 있었습니다.

"저들이 저 무대에서 공연을 한다는 자체가 무한한 감동입니다. 저도 뭔가 할 수 있을 것 같은 생각이 들었어요."

◆ "빵 만으론 안 돼요.(Not By Bread Alone)"

극은 "우리 모두는 비전과 꿈이 있습니다. 우리는 빵만으로 살지 않아요"라는 대사로 시작됩니다. 연극의 제목이기도 한 이 말은 이들의 목소리를 대변합니다. '빵 만으로는 안 된다'말은 그들 자신의 목소리이자, 우리 모두를 향해 던지는 따끔한 메시지이기도 하죠.

70분 간의 공연은 밀가루를 반죽해서 실제로 오븐에 구워 관객과 함께 나눠먹는 과정까지 진행됩니다. 이들은 빵을 만들며, 잃어 버렸던 옛 기억의 조각들을 찾고, 잊고 있던 꿈과 즐거웠던 순간을 떠올리지요. 그것은 우리 각자의 마음 속에 있는 그 무엇일 수도 있겠고요.

장애인이든 비장애인이든 ('장애'라는 말도 다양하게 해석될 수 있지만...) 빵(먹고 사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라는 평범한 답을 내 놓습니다. 다시말해 사회 안에서 자신의 존재를 인정받는 것이 너무나 보편적인 가치라는 것이지요.

아디나 탈의 매체 인터뷰 내용으로 취재파일을 마무리할까 합니다.

"사람들은 이 공연이 좋은 작품이기 때문에 오는 것이지, 선행을 하고자 공연을 관람하는 것은 아닙니다. 처음에는 와서 봐 주는 것이 우리를 도와주는 것이라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었죠.  ....(중략).... 때로 관객들은, 우리에게 도움을 주기 보단 차라리 우리로부터 도움을 받았다는 사실을 깨닫고 화가 날 수도 있어요. 지금 조차도, 시각과 청각 장애가 있는 사람들로부터 선물을 받는다는 사실을 난처하게 여기는 사람들이 있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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