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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고리롱'을 해부한 결과…

[취재파일] '고리롱'을 해부한 결과…

고리롱. 어디서 많이 들어봤다 싶으실 것입니다.

창경원 시절부터 함께한 서울 동물원 원년 멤버이자, 우리나라의 유일한 수컷고릴라였던, 그리고 지난 2월 세상을 떠난 할아버지 고릴라의 이름이죠.

1968년 창경원에 들어와서  40년이 넘는 세월을 지낸 '고리롱'은 간판 스타였습니다.

큰 소리를 치는 관람객이 있으면 딴청을 피우거나 흙을 집어 던지는 짖궂은 장난으로 많은 사람들에게 추억을 안긴 동물이었습니다.

하지만, 고리롱을 더욱 유명하게 했던 건 '발기부전 치료제 먹는 고릴라', '야동 보는 고릴라' 라는 별명이었습니다.

왜 약을 먹고, 야동까지 봐야 했을까요?

고리롱은  로랜드 고릴라였습니다.

로랜드 고릴라는 크로스리버고릴라, 마운틴 고릴라와 함께 심각한 멸종 위기로 분류되는 동물입니다. 고릴라의 생존을 위협하는 요소는 여러가지가 있겠지만, 휴대전화가 가장 큰 원인이라는 데는 이견이 없습니다.

휴대전화를 만들 때 내부 회로에 일정 전압이 유지될 수 있도록 조절하는 물질인 탄탈륨이 들어가는데, 이 탄탈륨은 콜탄이라는 물질에서 추출하고, 이 콜탄의 주 매장지가 고릴라들의 서식지인 아프리카이기 때문입니다.

콜탄을 채굴하는 과정에서 고릴라의 서식지가 불타고,  땅이 파헤쳐지는 바람에 고릴라들의 개체수가 급격히 줄어들게 된 겁니다.

이렇게 귀한 고릴라인데 '고리롱'이 죽었으니 동물원은 말 그대로 초비상이었습니다.

급기야 차병원 비뇨기과 교수와 팀을 꾸려 2세를 위한 인공수정을 추진하고 나섰는데요, 고리롱의 생식기를 떼어 정자 유무를 확인한 뒤 암컷 고릴라 '고리나'의 난자와 수정, 착상 시키기로 한 겁니다. 

아마 여기까지는 많은 분들이 사정을 알고 계실텐데요, 고리롱 사망 두 달이 지난 지금 인공수정 프로젝트는 어떻게 되고 있을까요?

지난 2년간 서울 시청을 출입하면서 고리롱을 여러차례 취재했던 터라 누구보다도 고리롱의 대 잇기 계획이 성공하길 빌었지만...결과는 충격적이었습니다.

고리롱에게는 정자가 한 마리도 없었던 겁니다. 좀 더 정확히 하기 위해 해부에 참여하신 선생님의 말을 옮겨 적으면, 고리롱은 정자를 만드는 기관이 손상을 입은 상태로, 아예 정자를 만들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고 합니다.

고리롱이 원래부터 생식 기능을 제대로 할 수 없게 태어난 것인지, 살면서 손상을 입은 것인지는 알 수 없지만 대를 잇는 것 자체가 불가능한 몸이었던 것이죠.

새끼를 만들기 위한 동물원측의 노력을 생각해보면 눈물이 앞을 가리는 얘기입니다.

암컷 고리나가 나뭇가지를 머리에 꽂고 몸을 부비는 등 애정공세를 해도 마치 돌부처인 것처럼 거부해서 애를 태웠던 고리롱의 행동은, 다 자신의 상태를 알기 때문에 나온 것이었을까요?

취재를 갔을 때마다 본 고리롱은, 앙칼지고 젊은 암컷 고리나에게 밀려 우유도 구석에서 몰래 마시고, 식사도 등 지고 앉아 조심스레 먹는 모습이었습니다.

그보다 더 보는 사람을 가슴 아프게 했던 건,  그 열악했던 창경원 시절, 난방도 냉방도 제대로 되지 않는 상황에서 쥐벼룩이나 회충 같은 벌레에 대한 관리가 안돼 잘라내야만 했던 발가락이었습니다.

인간이 호기심을 충족하려다 애꿎은 고릴라만 다친 것 같아 참 미안하기도 했습니다.

동물원의 역사를 함께 했던 고리롱.

죽은 것만으로도 참 속상한 일이었는데, 해부 결과마저도 좋지 못해 참 씁쓸합니다.

참. 고리롱이 죽은 후 동물원측은 조직 세포는 냉동 보관해 사후 고릴라 연구에 쓰일 수 있도록 하고, 표피와 골격은 박제 처리해 일반에 공개하기로 했었는데요, 평생 동물원에서 고생하다 죽었는데 박제까지 하는 것은 학대라며 비난하는 목소리가 있어 아예 소각 여부를 검토하고 있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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