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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주택을 쪼개는 기술!

[취재파일] 주택을 쪼개는 기술!

종종 집을 직접 지으신 분들을 만납니다. 저는 집을 직접 지어보지 않아서 잘 모르겠지만, 집을 지어보신 분들은 한결같이 '집 한 채 지으려다 늙는다'라는 말을 많이 합니다. 건축과 관련된 각종 허가, 검사 등 절차가 상당히 복잡하고, 지역 민원 등 신경쓸게 한두 가지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땅을 다 사놓고도 건축허가가 나지 않으면 공사를 시작할 수 없고, 힘들게 건물을 다 지어놓고도 이런 저런 조건을 충족시키지 못하면 준공이 떨어지지 않아서 집에 들어가 살 수가 없습니다. 그렇다보니 건축을 시작하고, 입주까지 마치고 나면 머리가 하얗게 샐 정도라고 하더군요.

요즘 집, 특히 다가구 주택을 지을 때 엄격하게 지켜야 하는 것 가운데 하나가 주차장법입니다. 다가구주택을 지을 때, 건축주는 집을 몇 가구로 만들지 자유롭게 할 수 있지만, 반드시 1가구당 1대 분의 주차 공간을 마련해야 한다는 내용입니다. 이렇게 하지 않으면 주택가 골목이 차로 넘치는 등 애초에 계획한 도시의 용량을 초과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집을 짓는 건축주 입장에서는 가능하면 많은 가구를 짓고 싶겠지만, 그렇게 하려면 토지의 상당 부분을 주차장으로 할애해야 하기 때문에 가구수를 무한정 늘릴 수 없습니다. 적당한 선에서 가구수를 결정해야 하는 거죠. 보통 건축주들은 다가구주택을 3가구에서 많으면 5~6가구 정도로 나누고 있습니다.

               



그런데 최근 다가구주택의 가구수를 엄청나게 부풀리는 불법이 많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일단 적법한 절차에 따라서 건축을 하고, 관할 구청 등에서 준공검사를 마칩니다. 그리고 준공이 떨어지자마자 주택의 벽체, 창호, 문짝을 모두 뜯어내고 다시 벽을 쌓고, 개별적으로 문을 만들어서 가구수를 늘리는 겁니다. 준공검사를 받았을 때는 분명 각 층마다 90제곱미터 규모의 주택 1가구인데, 이게 원룸 4가구로 바뀌는 겁니다. 경기도 고양시 일산신도시 근처의 한 주택가를 찾았는데, 이미 공사가 끝난 주택 내부에서 시끄러운 소리를 내며 공사가 한창 진행되고 있었습니다. 이 동네 주택 80채 가운데 무려 23채에서 이런 불법 쪼개기 공사가 진행되고 있었습니다.

관할 구청은 뭘하고 있었을까요? 해당 구청 건축과 직원들과 함께 공사 현장을 찾았습니다. 안에서는 시끄러운 소리를 내며 불법 공사가 벌어지고 있었지만, 현관문은 비밀번호키로 꼭 잠긴 상태였습니다. 단속권을 갖고 있는 공무원은 유리문을 두드리며 소리를 칩니다. 탕!탕!탕! "나와보세요. 단속 공무원입니다". "나와보시라니까요?". 하지만 이 뿐입니다. 안에서 문을 열어주지 않으면 공무원은 특별히 할 수 있는게 없습니다. 한참을 문을 두드려도 문이 열리지 않자, 저희 취재팀과 함께 주변 다른 건물로 이동했습니다. 이동을 하다 아까 문을 두드렸던 건물을 봤더니, 그 사이 인부들이 모두 빠져나와 차를 타고 이동하고 있었습니다. 역시 다른 건물에서도 단속 공무원은 무기력하게 문을 두드리다 그냥 돌아섰습니다.

단속 공무원의 해명은 이렇습니다. 불법 사실이 확인되면 건축주를 경찰에 고발하고, 원상복구하라는 시정명령을 내린다고 합니다. 하지만, 고발을 해봤자 건축주가 내야하는 벌금은 150만 원에서 300만 원 정도이고, 정한 시한까지 원상복구를 하지 않아서 물리는 이행강제금 역시 500만 원에서 1000만 원으로 솜방망이라는 겁니다. 4가구 주택을 16가구로 쪼갰을 때, 보통 임대인이 보증금 500만 원에 월세 50만 원을 받는다고 하면, 대략 계산해도 연간 임대 수익이 1억 원에 가깝습니다. 이행강제금, 벌금을 모두 내더라도 한참 남는 장사입니다. 이렇다보니 일산신도시와 파주 교하신도시, 화성 동탄신도시 등을 중심으로 전국에는 모두 30만 채의 불법 다가구주택이 생겨났습니다.

법이 돌아가는 기본 원리가 뭘까요? 법을 지키지 않았을 때 감수해야 하는 고통이, 법을 지킬 때 드는 수고보다 훨씬 클 때 사람들은 법을 지킵니다. 그런데 이런 경우는 법을 지키지 않았을 때의 열매가 훨씬 크군요. 법을 제대로 지키는 사람만 바보가 되는 세상이 빨리 끝나야 할텐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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