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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소비자 물가지수의 비밀

[취재파일] 소비자 물가지수의 비밀

1년 전보다 배춧값은 배로 뛰었다. 수 십 퍼센트씩 안 오른 먹을거리가 없다는 게 주부들의 하소연. 하지만 지난달 소비자 물가지수는 1년 전보다 4.5% 상승한 것으로 나온다. 이 숫자도 물론 낮은 건 아니지만 체감도에 비하면 훨씬 낮다. 왜 그럴까?

현재 소비자 물가지수를 산정할 때 대상이 되는 품목은 489개. 지난 2005년 전국 도시 가구의 월평균 소비 지출이 기준이 된다. 이 때의 월평균 소비 지출액이 약 185만 원. 이 185만 원의 10,000분의 1, 즉 185원 이상 지출된 품목 중 조사 가능한 품목이 소비자 물가지수를 구성하고, 지출된 비중만큼 가중치가 적용된다.

그런데 소비자 물가지수에서 농축수산물의 가중치는 8.84%. 이게 무슨 말이냐? 다른 품목의 가격이 변하지 않았다고 가정할 때 농축수산물 전 품목의 가격이 100% 올라야 전체 소비자 물가 상승률이 8.84%가 된다는 얘기다.

전세 대란이다. 서울 뿐만 아니라 경기도, 지방까지. 수 천만 원은 기본. 몇 억 원씩 전셋값이 뛰었다고 세입자들은 아우성이다. 지난달 소비자 물가지수 중 전셋값 상승률은? 전년 동월대비 3.1% 상승. 1억 원 짜리가 고작 310만원 뛰었다고? 왜 이렇게 낮게 나올까?

국민은행 등 민간에서 실시하는 주택가격 조사는 호가 방식이다. 즉 10채의 전세 주택이 있고, 여기서 1채만 종전보다 오른 가격으로 거래됐다면 나머지 9채도 비슷한 수준으로 올랐다고 간주하고 지수를 산출한다. 주택 실수요자들에게 제대로 된 정보를 주기 위해서다.

그런데 통계청의 전셋값 조사는? 통계청의 조사는 전월세 포함, 약 1만 가구를 대상으로 이뤄진다. 조사 대상 주택 중 실제 계약이 이뤄진 가구의 가격 변동분만 물가지수 산정에 반영된다. 소비자 물가지수는 국민들이 실제 부담한 물가 수준에 대한 정보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전셋값이 오르는 상황에서는 계약 가구가 적을 수록 전셋값 상승률은 낮게 나온다. 반대로 계약이 이뤄진 가구가 많을수록 전셋값 상승률은 높게 나오는 구조다.

스마트폰의 유행으로 많은 사람들은 통신비 지출이 늘었다고 느낀다. 하지만 실제는? 지난달 소비자 물가지수 가운데 통신비는 1.8% 하락했다. 전체 소비자 물가지수를 낮추는 데 한 몫 단단히 한 셈. 이런 결과는 2005년 기준이다 보니 스마트폰은 아예 조사 대상이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래도 물가 아우성인 최근, 4.5%라는 숫자가 너무 비현실적이라고? 그렇다면 서비스 부문의 비중에 주목해야 한다. 소비자 물가지수 가중치를 크게 3가지로 구분해 보자. 농축수산물 8.84%, 공산품 30.74%, 서비스 60.42%의 가중치가 매겨진다.

여기서 지난달 농축수산물 물가 상승률은 17.7%. 어느 정도 체감에 근접한다. 농축수산물의 약 4배 가중치를 가진 공산품 물가는 5% 상승. 또 공산품의 약 2배 가중치를 가진 서비스 물가 상승률은 2.5%에 머물렀다. 서비스 부문 중 대중교통과 전기, 가스 등이 포함된 공공서비스 분야는 1.2% 상승. 서비스 부문 중 개인서비스 분야 역시 3.0% 상승에 그쳤다. 결정적으로 서비스 부문의 낮은 물가 상승률이 전체 물가 상승률을 체감보다 훨씬 밑으로 끌어내린 것이다.

지난 4일(금요일) 물가안정 대책회의의 결론은? 연합뉴스 제목은 이렇다. ‘정부, 개인 서비스 요금 안정 주력’ 정부가 물가 비상 상황일 때마다 가장 먼저 꺼내는 카드는 공공요금 인상 억제. 그리고 뒤이어 개인 서비스 요금에 주목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 있다. 서비스 요금만 누르면 전체 소비자 물가 상승률 자체를 어느 정도 낮출 수 있는 것이다.

물가지수 자체와 체감도와의 괴리는 심리적으로도 설명할 수 있다. 사람들은 489개나 되는 소비자 물가 지수 구성 품목 모두를 느끼지 않는다. 489개 중에는 오른 것, 안 오른 것, 내린 것들이 혼재돼 있다. 하지만 사람들은 심리적으로 오른 것만 크게 느끼기 마련이다. 자신의 관심사 위주로만 생각하는 게 사람이기 때문이다.

또 소비자 물가지수는 전월비와 전년 동월비, 이렇게 두 가지로 표시된다. 하지만 보통 사람들은 가장 물건 값이 쌌을 때와 최근 비싸졌을 때를 비교하는 경향이 있다.

그렇다고 이런 모든 사실들이 어떤 트릭이나 부정을 암시하는 것은 아니다. 통계적 일관성과 정책적 시사성 때문에 물가지수 자체가 원래 그런 것일 뿐.

사정이 이렇다면? 정부가 인위적으로 억누른, 또 억누르려고 하는 서비스 부문이 문제라는 것이다. 향후 물가 안정의 관건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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