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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내가 만약 장애아를 낳는다면?

[취재파일] 내가 만약 장애아를 낳는다면?

"죄송합니다. 도저히 키울 형편이 되지 않아 이곳에 맡겨요. 용서해 주세요. 애기가 장애가 있습니다. 다운증후군이고 계속적인 관리가 필요한 상태에요. B형 간염 접종 1차 한 상태입니다. 제발 찾지 말아주세요. 너무 두렵고 애기에게 미안해 충분히 고통 받고 있습니다. 가슴 속 십자가를 안고 살아갈 저를 이해해 주세요."

"3시간마다 50CC 분유를 먹어야 해요"

 '새벽이' 가 버려지던 날 새벽, 함께 남겨진 편지 전문입니다. 어떤 생각이 드시나요? 저는 '뻔뻔하다'는 말이 가장 먼저 떠올랐습니다. '자기가 낳아 놓고, 다운증후군이라고 이렇게 버려?', '자기는 못 키우겠다고 버리면서  맡아줄 사람한테는 계속적인 관리를 해달라, 3시간마다 분유를 먹여달라 부탁을 해?', '그래도 엄마라고 간염 접종은 했다는 건가? 하는 생각이었습니다.

이 한 장의 편지가 제가 취재를 해야겠다 마음 먹게 한 결정적인 이유였지만, 내내 불편했습니다. 아마 장애가 있는 아기에 대한 저의 무지와 편견도 불편함에 한 몫을 했을 겁니다. 오만 가지 생각을 하며 새벽이가 있는 주사랑공동체로 향했습니다.

제가 도착했을 때 우유를 먹느라 정신이 없던 '새벽이'는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사랑스러운 아기였습니다. 처음 보는 제가 분명 낯설 텐데도 배시시 웃어주고, 어설프게나마 안아줬더니 잠도 잘 잤습니다.

이렇게 착한 새벽이는 도대체 얼마나 아픈 걸까요? 제가 의사가 아닌 관계로 새벽이 진료를 맡고 계신 서울대학병원 소아청소년과 배은정 교수님의 말을 좀 적겠습니다.

" 새벽이는 전체적인 발육이 느려져 있어요. 10개월이면 9킬로그램이  돼야 정상인데 겨우 6킬로밖에 안 되는 성장 지연이 있고요. 얼굴을 보시면 짐작되시겠지만 다운이 있고, 정신 지체도 약간 있습니다.

여기에 다운에 흔히 동반되는 선천적 심장기형, 즉 심장에 구멍이 있어서 심장 내에서 혈액이 엉뚱한 곳으로 새고 폐동맥과 대동맥 사이에 연결관이 있어서 혈액이 폐 쪽으로 몰리면서 폐기능이 떨어진 상태에요. 폐동맥 고혈압이라고 하는 심한 합병증도 있고.

다운인 경우 면역이 약하기 때문에 보통 작은 감기 폐렴으로 고통 받는데요, 선천적인 심장병이 있으면 더 힘들고 어려워서 지난 겨울에는 굉장히 힘든, 아슬아슬한 위태로운 고비를 넘겼죠. 당시 병원에 실려 왔을 때는 숨을 거의 못 쉬고 꺽꺽거리고 호흡이 되지 않아서 정말 새파랗게 보랏빛이었어요."

아직 돌도 안 된 작은 몸집의 아이가 이렇게 아픈데가 많다니, 세상 참 불공평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새벽이는 병원 치료 후 청색증이나 호흡 곤란이 많이 호전돼서 심장 수술을 할지 말지 기다리는 중이라고 해요. 많은 경우 아기가 성장하면서 칼을 대는 수술을 하지 않아도 심장 구멍의 크기가 저절로 작아진다고 하는데, 새벽이에게도 이런 기적이 일어났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며 병원을 나왔습니다.

모두가 잠든 새벽. 몰래 새벽이를 버리고 갔던 엄마는 새벽이 상태가 어떤지나 알고 있을까요? 취재하면서 수없이 떠올랐지만, 불편해서 외면했던 질문이 있었습니다. '만약 나라면, 어떻게 했을까?' 미혼에 아이도 없지만, 그 상황을 가정해 본다면 저 역시 자신 있게 대답하기 어려웠습니다. 솔직히 '아냐, 나는 정상적인 아기를 낳을 거야'라고 스스로를 위로하는게 전부였죠. 마냥 새벽이 엄마를 탓하기엔 뭔가 찜찜했습니다.

지금 이 순간에도 어딘가 몸이 불편한 아기들이 태어납니다. 사랑 많고 정성스런 부모 밑에서 행복하게 자라는 아기들도 있겠지만, 많은 아이들이 태어나기도 전에 존재가 없어지거나, 태어난 이후 버려집니다. 장애가 있는 아기들이 낳은 부모로부터도, 입양을 원하는 사람들로부터도 외면 받는 가장 큰 이유는 키우는데 들어가는 물질적 정신적 고통이 모두 고스란히 개인의 무거운 짐이 된다는 데 있을 겁니다.

실제로 중증 장애인을 입양할 경우  올해부터 정부로부터 매달 양육보조금 62만 원에 의료비 20만 원 정도를 지급받지만, 장애아에게 꼭 필요한 전문적인 치료나 의료장구를 구입하기엔 충분하지 않습니다. 더군다나 장애아 양육 보조금은 18세까지만 지급되기 때문에 자립이 어려운 장애아의 생계를 부모가 계속 책임져야하는 상황이 되기 쉽습니다.

우리 사회의 갈 길이 참 멀게 느껴지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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