깊은 잠의 유혹

한승구 기자 likehan9@sbs.co.kr

작성 2011.02.05 15:04 수정 2011.02.05 15:18 조회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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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연휴 직전인 지난 화요일, 그 말 많던 수면마취제 프로포폴이 드디어 향정신성의약품으로 공식 지정됐습니다. 전세계에서 처음입니다.

프로포폴은 재작년 초 SBS가 보도하면서 알려지기 시작했지요. 이후 오남용에 따른 부작용 사례가 보고되고, 결정적으로 마이클 잭슨이 프로포폴 과다 투여로 숨지게 되면서 유명해졌습니다. 물론 의료계에서는 알만한 사람은 다 알고 있었고, 이미 적지 않은 사람들이 중독된 상태였습니다.

마약류 취재를 하다 보면 압수해 놓은 대마니 필로폰이니 하는 것들을 만져도 봐야 하고, 냄새 맡는 시늉도 해야 합니다.  하지만 가장 원초적인 궁금증은 해결하기 어렵습니다. "과연 어떤 기분일까?"

다행히 이번에는 식약청 직원의 설명으로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몇 년 전 건강검진 때 수면내시경을 한 적이 있었는데, 바로 그 때 저를 잠들게 한 게 이런 식의 수면마취제라는 것입니다. 기억을 더듬어 보자면 주사 바늘을 꽂자마자 잠에 빠졌고, 몸 속에 내시경이 들락거리는 것도 모를 정도로 깊은 잠이었고, 깨고 나서도 한동안은 몽롱하더라는 정도.

'에이. 그게 뭐야' 싶었지만, 실제로 짧은 순간 깊은 잠에 빠진다는 건 적지 않은 사람들에게 큰 매력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그렇게 마취제가 아닌 수면제로 사용하기 시작하면서 환각과 함께 점점 더 빠져들게 되는 것이죠.

부작용은 엄청났습니다. 병원 직원들이 프로포폴에 중독돼 약을 훔치기도 하고, 프로포폴에 취한 틈을 타서 의사가 성폭행을 하는 일까지 벌어졌습니다. 수억원 씩 탕진하는가 하면, 주사바늘을 꽂는 순간 잠이 들기 때문에 몸에 바늘을 꽂은 채 잠이 들어 뒤척이다 사고가 나는 경우도 있었죠.

지난 화요일 개정 시행령이 공포되면서 프로포폴은 마약류로 지정됐습니다. 이제는 제조,수출입은 허가받은 사람만 취급할 수 있게 됐습니다. 판매 실적도 전부 보고해야 하고, 보관할 때는 별도의 잠금 장치가 있는 시설에 보관해야 합니다. 사용내역은 물론 사용량과 재고량도 모두 기록대상입니다.

그런데 문제가 없진 않습니다. 너무 늦었습니다. 언론을 통해 위험성이 알려졌는데도 그 이후 2년여 동안 수많은 부작용과 중독자가 생겼습니다. 이미 맞을 만한 사람들은 다 맞았습니다. 관련법령에 보면 무슨 성분이 마약류에 해당하는지 하나하나 규정돼 있는데, 프로포폴을 마약류로 지정하는 시간이 그만큼 걸렸다는 것이죠. 프로포폴을 상습적으로 맞은 사람들은 그 동안 근거규정이 없어 처벌도 피했지만 이제는 마약사범이 됩니다.

이번 법령개정을 통해 임시마약류라는 게 생겼습니다. 새로운 환각, 중독 성분이 나오면 일단 마약류와 똑같이 엄격하게 관리해 가면서 천천히 법령에 규정해 나가겠다는 것입니다. 법개정 하느라 단속 공백이 생기는 걸 막겠다는 취지는 좋아 보입니다. 다만 식약청은 임시마약류를 지정할 때 '의료용으로도 쓰이지 않고, 오남용이나 환각목적으로만 쓰이는 경우'로 한정하겠다는 방침입니다. 이 말대로라면 프로포폴은 여기 해당되지 않았을 것입니다. 의료용으로는 쓰여 왔으니까요.

물론 정말 알려지지 않았던 새로운 성분들이 오남용될 때 급속한 확산이 우려되는 건 맞습니다. 하지만 프로포폴처럼 기존에 의료용으로 쓰이던 것들에 대한 감독과 관리도 소홀해서는 안 될 것입니다. 여전히 외국에서는 프로포폴은 그저 의약품일 뿐이지만, 우리는 그 부작용을 너무 많이 목격했습니다. 모르핀이나 필로폰도 처음에는 의료용이었다는 점을 잊지 말아야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