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제가 영국에 사는 동안 '우리 동네 오케스트라'로 불렀던 '버밍엄 심포니' 이야기 전해드립니다. 요즘 강마에가 인기라는데, 강마에 못지 않게 멋진 지휘자가 있는 단체이기도 하고요. 그럼, 조만간 또 찾아뵙겠습니다. 제 블로그(http://ublog.sbs.co.kr/shkim0423)에도 올린 글입니다.
by CBSO/Adrian Burrows
영국에 있는 1년 동안, 내가 가장 많이 갔던 공연장은 워릭 아트센터와 버밍엄 심포니 홀(사진)이었다. 워릭 아트센터는 학교 안에 있었고, 강의실과 학교 기숙사를 잇는 길목 위에 있었으니, 공연이 아니더라도 하루에도 몇 번씩 드나들 수밖에 없었다. 버밍엄 심포니 홀은 내가 살던 곳에서 가까운 버밍엄 도심에 있었다. 버밍엄 심포니 홀은 시티 오브 버밍엄 심포니 오케스트라(City Of Birmingham Symphony Orchestra. 앞으로 '버밍엄 심포니'로 표기)의 본거지로, 연중 버밍엄 심포니의 정기 공연과 함께 다른 유명 연주자들의 초청 공연도 많이 열린다.
나는 버밍엄 심포니를 '우리 동네 오케스트라'로 불렀다. 원래 공연 관람료가 그리 비싸지 않은 데다 (가장 비싼 등급이 보통 40~50파운드 수준이다) 나는 대개 학생 할인까지 받았기 때문에 표 사는 것도 그리 부담스럽지 않았다. 내가 사는 곳 근처에서 이렇게 훌륭한 오케스트라 공연을 쉽게 볼 수 있다는 게 뿌듯했다. 영국 최고의 음향을 자랑한다는 버밍엄 심포니 홀은 어느새 나에게 아늑하고 친근한 공간이 됐다.
사카리 오라모는 마지막 공연에서 베토벤의 '합창' 교향곡을 연주했다. 'FAREWELL NOT GOODBYE’라는 제목으로 열린 이 공연에서 사카리 오라모는 버밍엄 심포니와 함께 했던 10년을 마감했다. 커튼 콜 때 관객들이 기립박수를 보내고 (버밍엄 관객들, 엄청 까다롭다. 기립 웬만해선 안한다) 사카리 오라모의 모국인 핀란드 국기를 흔들며 환호하는 광경을 보며 내가 다 흐뭇해졌다.
버밍엄 심포니를 얘기할 때 현재 베를린 필하모닉의 음악감독인 사이먼 래틀의 업적을 빼놓을 수는 없다. 사이먼 래틀은 지난 1980년부터 무려 18년 동안이나 버밍엄 심포니의 음악감독으로 재직하며 이 단체를 세계적인 오케스트라로 성장시켰다. 심포니 홀이 지어진 것도 이 기간이었다. 이 때문에 상대적으로 무명이었던 사카리 오라모가 1999년 새 음악감독으로 지명됐을 때 우려도 있었던 게 사실이지만, 사카리 오라모는 재임 기간 동안 버밍엄 심포니의 입지를 내실 있게 다진 것으로 평가 받고 있다. 2003년부터 핀란드 방송 교향악단 상임지휘자도 겸해온 사카리 오라모는 2008-2009 시즌부터 로열 스톡홀름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상임 지휘자도 맡는다. 하지만 버밍엄 심포니와도 수석 객원 지휘자로 계속 인연을 맺게 된다.
새 음악감독인 안드리스 넬슨스(옆 사진)의 공연은 내가 한국으로 돌아오기 며칠 전에 열렸다. 논문 마무리하랴, 귀국 준비하랴, 바쁜 와중에도 이 공연만은 가리라 생각하고 미리 예약했다. 안드리스 넬슨스는 1978년 11월 18일생, 이제 막 만 서른이 된 '젊은 피다. 지휘를 하기 전에는 트럼펫을 연주했다 한다. 2007년까지 5년 동안 라트비아 국립 오페라의 지휘자로 재직했고, 독일에서도 활발한 활동을 해왔다. 같은 라트비아 출신의 지휘자 마리스 얀손스가 그의 '멘토'다.
그는 내가 본 지휘자 가운데 가장 지휘 동작이 컸다. 그는 자신의 얼굴과 몸 근육 구석구석을 다 사용해서 지휘하는 스타일이었다. 그의 표정과 몸짓만 봐도 지금 음악이 어떤 분위기로 흘러가고 있는지, 어느 악기가 주로 연주되고 있는지 정확히 알 수 있을 정도였다. 영국 신문 Times가 "the concert was just 12 minutes old when both his feet left the podium for the first time"(연주 시작 단 12분만에 그의 두 발은 지휘대를 떴다.)라고 쓴 것처럼, 그는 펄펄 뛰고, 춤추고, 땀방울을 사방에 뿌리면서 오케스트라를 이끌었다.
하지만 이런 몸짓이 전혀 과장되거나 부자연스럽다고 느껴지지는 않았다. '사람을 감전시키는 듯한' 지휘로 자신이 원하는 음악을 끌어내는 능력이 탁월했다. 오페라 지휘자로 성가를 높인 만큼, 극적인 표현력이 일품이었다. 오케스트라도 이에 100퍼센트 부응해서 펄펄 날아주었다. 바그너의 리엔찌 서곡, 바르톡의 'Miraculous Mandarin Suite’, 그리고 베를리오즈의 환상 교향곡으로 이어진 프로그램은 그의 진가를 선보이기에 안성맞춤이었다.
내 주변의 많은 관객들 역시 흐뭇한 표정으로 지휘대 위에서 펄쩍펄쩍 뛰는 이 젊은 지휘자를 주시하고 있었다. 아마도 이 사람들은 '새로 온 음악감독이 아주 젊다는데, 제대로 할까?' 하는 우려도 안고 공연장을 찾았을 터이다. 그러니 관객의 아낌없는 박수는 안드리스 넬슨스를 버밍엄 심포니의 새 음악감독으로 '추인'한다는 의미도 담고 있는 것이었다.
사실 버밍엄 심포니 홀은 많은 버밍엄 시민들이 나름의 '지분'을 갖고 있는 공연장이기도 하다. 버밍엄 심포니 홀은 지난 2001년 개관 10주년을 맞아 파이프 오르간을 설치했는데, 이는 2년간 버밍엄 시민들을 대상으로 벌인 모금 운동의 성과였다고 한다. 그래서 이 파이프 오르간은 파이프 6,000개마다 각기 다른 주인이 있다. 모금 운동에 참여한 사람들은 자신의 파이프를 증명하는 '증서'를 받았단다. 심각한 표정으로 공연을 보기 시작한 내 주변 관객들의 얼굴에 점차 흐뭇한 미소가 퍼져가는 걸 보면서 이들 중 상당수가 이 때 모금운동에 참여한 사람들 아닐까 혼자 짐작했다.
안드리스 넬슨스는 여러 차례 이어진 커튼 콜마다 지휘대에 올라서지 않고 다른 단원들과 같은 위치에 서서 손잡고 관객의 환호성에 답례했다. 지휘자는 오케스트라 위에 군림하는 것이 아니라, 모두가 '팀'으로 함께 공연을 만든다는 뜻을 나타내고 싶었던 것 같다. 어쩌면 이런 '민주적 리더십'이, 아버지 어머니뻘 단원들과 함께 일하는 '젊은 마에스트로'의 당연한 선택일지도 모르겠다. 요즘 인기라는 '강 마에'의 매서운 카리스마는 없을지 몰라도, '안 마에'는 멋졌다.
한국에 돌아온 지금도 나는 가끔씩 버밍엄 심포니의 홈페이지에 들어가서 공연 일정을 확인하곤 한다. '안드리스 넬슨스가 푸치니 탄생 150주년 기념으로 연 라보엠 콘서트 오페라는 어땠을까. 오페라를 많이 지휘하던 사람이니, 잘 했겠지.' 이런 생각도 하고, 버밍엄 심포니가 안드리스 넬슨스의 후원회로 결성한 'Music Director’s Circle’도 주의 깊게 살펴본다. 이제 더 이상 버밍엄 심포니는 '우리 동네 오케스트라'가 아닌데도 말이다.
아, 버밍엄 심포니 홀이 그립다. 안드리스 넬슨스의 젊음과 패기, 그 열정적인 지휘를 또 보고 싶다. 사카리 오라모도 다시 본다면 정말 반가울 것 같다. 한국에도 오케스트라는 많지만, 나에게 '우리 동네 오케스트라'로 느껴지는 단체는 아직 없다. 내가 살고 있는 지역에 이런 오케스트라가 있다는 게 기분 좋고, 흐뭇하고, 음악감독이 바뀌면 어떤 사람일까 궁금해하고, 언제든 어렵지 않게 찾아가서 연주를 즐길 수 있는 그런 오케스트라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