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SBS 뉴스 상단 메뉴

공간 사라지고 이름만 남은 장충단…비운의 역사

<앵커>

흘러간 가요에도 등장하는 서울 장충단 공원이 대한제국 최초의 국립현충원이었다는 사실, 아는 분들 많지 않으실 겁니다.

장충단이라는 이름이 충성스런 장수를 위한 제단이란 뜻인데, 신성한 공간은 사라지고 공원 이름으로만 남게 된 비운의 역사를 최효안 기자가 알아봤습니다.

<기자>

1970년대 선거 때면 100만 인파가 운집하는 집회가 열렸던 장충단 공원.

그런데 사실 장충단은 공원이 아니라 고종이 세운 대한제국 최초의 국립현충원이었습니다.

고종은 1895년 을미사변 당시 명성황후를 지키려다 희생된 군인들을 추모하면서 일본의 만행을 절대 잊지 않겠다는 결의로 장충단을 세웠습니다.

그러나 1920년대 일제는 장충단 일대를 공원으로 바꿔버립니다.

여기에 그치지 않고 1932년엔 한국 침탈의 장본인인 이토 히로부미를 추모하는 사찰인 '박문사'까지 세우고 경희궁 정문을 뽑아 출입문으로 씁니다.

[안창모 교수/경기대 건축대학원.건축역사학자 : '장충단'이라는 역사적 장소에 침략의 원흉인 이토 히로부미의 추모 사찰을 만들고 그 정문에 우리의 궁궐의 정문을 가져다 놓은 것은, 영원히 이 땅의 지배자로 남겠다는 일본 제국주의의 의도가 있었다라고 볼 수 있겠죠.]

해방 이후 박문사는 철거됐고 그 자리에는 신라호텔 영빈관이 들어섰지만, 장충단은 끝내 복원되지 못했습니다.

[안창모 교수/경기대 건축대학원.건축역사학자 : 우리가 해방 이후 오랜 기간 동안 이곳을 '장충단'이 아닌 '(장충단)공원'이라는 말을 붙여 불러왔다는 사실은, 이곳이 갖고 있는 역사성을 우리가 잊고 지내왔다는 거죠.]

공원 한구석에 세워져 있는 '장충단' 비석.

명성황후 아들인 순종의 친필이 담긴 이 비석만이 우리가 되새겨야 할 비운의 역사를 말해주고 있습니다.

(영상취재 : 황인석)    
Copyright Ⓒ SBS.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재배포 및 AI학습 이용 금지

스브스프리미엄

스브스프리미엄이란?

    많이 본 뉴스